연재 중 15화

컷,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자꾸만 카메라를 쳐다보게 돼

by 적적

행복은 언제나 연습이 부족한 장면이었다. 대본은 존재하지 않았고, 감독의 디렉션도 없었다. 애초에 리허설조차 없었다. 배우는 무대에 서자마자 바로 클로즈업 샷을 마주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표정, 애써 만든 미소, 그리고 자꾸만 렌즈를 향하는 시선. 그런 얼굴로는 좋은 테이크가 나올 리 없었다. 스태프들은 뒤에서 탄식했고, 감독은 컷을 외쳤다. 표정이 너무 의식적이에요, 다시 갑시다. 하지만 그 장면은 다시 오지 않았다. 행복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촬영은 끝났고, 편집은 시작되었다. 그 장면은 삭제되었다.

행복은 자연스러워야 해요. 몰입해야 하죠.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야 해요.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붉은 불빛이 깜빡이는 그 구멍, 그 안에서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조차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환각. 그것은 무대공포가 아니라 생의 구조에 가까웠다. 삶은 늘 어디선가 편집되고 있었고, 누락되거나 왜곡되거나 과장된 기억들로 채워졌다. 행복은 그중 가장 믿을 수 없는 컷이었다. 카메라가 있을 리 없는데도, 계속 카메라를 의식했다.



무대는 달라졌다. 조명은 따뜻했고, 소품은 완벽했다. 대사도 애드립 같지 않았다.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불신을 샀다. 이렇게 아름다울 리가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렸다. 배경이 이토록 완벽하면, 주인공은 더 어색해진다. 어디에 손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장면. 웃어야 할 타이밍은 명확했지만, 웃음은 입술 근육에 배어있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계속 들리던 조연출의 말. 렌즈는 무시하세요. 그냥 몰입하시면 돼요. 그 말은 곧, 당신은 지금 연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행복은 그 자체로 몰입이 아니라 자각이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간, 행복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진짜 행복했던 순간은 항상 나중에서야 이해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쳤던 장면. 나중에 모니터로 다시 확인하면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아, 저 때 내가 웃고 있었구나. 저건 진짜였구나. 하지만 이미 과거의 클립일 뿐이었다. 재촬영은 불가능했다.



렌즈를 자꾸 쳐다보는 조연배우는 미숙함의 아이콘이자, 사실은 가장 솔직한 존재였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상황을 제어하지 못하고, 늘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인물. 그에게는 연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당황했고, 진심으로 웃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연기에 실패했다. 그 실패는 때때로 누군가의 마음을 울렸다. 그가 말없이 정면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관객은 마음속의 어떤 오래된 순간을 떠올렸다. 어릴 적 생일파티. 너무 기뻐서 울어버렸던 날. 기쁨은 무언가를 망가뜨리고, 어색하게 만들고, 때로는 장면 전체를 지워버리는 감정이었다.



행복은 완벽한 구도에서 어긋난다. 고개를 조금만 돌렸어도 예뻤을 텐데,라는 말은 사진 속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의 얼굴은 언제나 조금씩 삐뚤었고, 타이밍은 늘 반 박자 빨랐거나 늦었다. 자연스러운 행복은 결국 관찰되지 않는 곳에서 발생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조명도 꺼지고, 대사도 사라졌을 때. 그때의 웃음은 기록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믿을 수 있었다.

행복을 자꾸 기록하려는 욕망은 오히려 행복을 지워버린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그 감정은 카메라 렌즈 밖으로 도망친다. 그것은 필름 속으로 달아나는 야생 동물 같다. 순간을 붙잡으려다 놓치는 손. 렌즈를 응시하는 표정은 그 사실을 안다. 내가 지금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눈빛. 하지만 확인하는 순간, 그 감정은 현실에서 이탈한다. 남는 것은 어색한 웃음과 뒷배경의 조화로움뿐. 사진 속 행복은 증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순간이 아닌, 연출된 정지다.



그래서 조연배우는 그 장면을 다시 찍고 싶어 했다. 준비된 표정으로, 조명도 더 예쁘게 받고, 대사도 다시 외워서. 하지만 행복은 리테이크를 허락하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그 장면은 이미 지나갔어요. 당신은 그때 그 표정이었고, 그 표정은 진짜였어요. 어색했지만, 그래서 더 진짜였어요. 그 말은 위로였을까, 혹은 단념의 권유였을까. 편집된 영상 속에서 조연배우는 계속해서 렌즈를 응시한다. 관객은 그 시선을 외면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 시선이야말로 이 세계를 가장 정직하게 바라보는 눈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언제나 약간의 비틀림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삶의 앵글이었고, 무대 위에서 소리 없이 울리는 지문이었다. (이 장면은 설명 없이 웃는다) 웃지 못한 배우는 실패한 것일까. 혹은 그 실패가 진짜 감정일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장면은 끝난다. 불이 꺼지고, 무대는 정지한다. 어둠 속에서 조연배우는 여전히 렌즈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감정도 흉내 내지 않으며, 다만 존재한다.

그 시선 속에서 무언가가 느리게 움직인다. 어쩌면, 그게 행복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끝내 연기되지 않는 감정. 결코 완성되지 않는 장면.



그렇게 행복은 자꾸만 카메라를 쳐다보는 조연배우처럼,

우리 곁에 어설프게 머무르고 있었다.



행복은 결국 실패한 연기였다. 감정을 완벽히 표현하지 못한, 혹은 그 감정이 진짜였는지조차 의심되는, 테이크 넘버 원. 하지만 편집실에서 삭제되지 않은 유일한 컷이기도 했다.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조연배우의 장면은 의도된 구도가 아니었고, 감정의 정확한 방향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를 고백하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는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쁨은 종종 경직된 미소로 가장되었고, 자유로움은 늘 약간의 눈치를 동반했다. 그래서 진짜 행복은 늘 이상하게 보였다. 오히려 울먹이는 얼굴,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동자, 손끝에 남은 미열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연배우는 연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실패했고, 기억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편집되지 않은 채 남았다. 연출되지 않은 삶의 순간처럼. 렌즈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사실 질문이었다. 이렇게 웃는 것이 맞느냐고, 이렇게 살면 되는 거냐고, 내가 지금 이 장면 속에서 살아도 괜찮은 거냐고. 그 물음은 관객의 가슴에 남아 천천히 침잠했다. 행복은 그토록 조용하고, 그토록 간절한 것이었을까. 어설프고, 들켜버리고, 장면을 망쳐버리는 감정. 그러니까 진짜라는 건 결국, 실패한 연기처럼 다가오는 게 아닐까. 꾸미지 않고, 눈을 피하지 않고, 말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그 순간. 그것이야말로 가장 생생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렌즈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웃거나, 울거나, 멈춰 서 있다. 그 장면이 연기인지, 진심인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어딘가에 그것을 보고 있는 눈이 있고, 언젠가 그 순간이 다시 떠오를 때-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표정 하나가, 이상하게 오래도록 마음을 건드릴- 그렇게, 행복은 자꾸만 카메라를 쳐다보는 조연배우처럼,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채, 안에 오래 머문다.

말 없는 프레임 속에서, 의심과 불확실함의 얼굴로.


지워지지 않는 표정으로.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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