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16화

잎으로 꽃이 되는 문장

잎이 먼저 말을 걸었다

by 적적

물기를 머금은 흙길을 따라 이른 아침 공원의 산책로를 걷는다. 어젯밤 어둠에 젖은 나뭇잎들이 발밑에서 조용히 바스락거린다. 젖은 흙에서는 비 냄새와 풀잎 냄새가 얽혀 나오고, 공기 중엔 아직 햇살이 스며들지 못한 새벽의 체온이 남아 있다. 바람은 낮은 소리로 지나가고, 하늘빛은 결정을 미루듯 흐릿하다. 그때, 시야 한쪽에 작고 환한 무언가가 피어난다. 언뜻 보기에도 낯선 형상의 나무. 다른 나무들이 초록을 예열하며 숨을 고르는 사이, 유독 한 그루만 시기를 거스른 듯 피어 있었다. 분홍빛과 흰빛이 혼재된 작은 별들, 가지 끝마다 망설임 없이 열리는 그것은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이었다.


산딸나무.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꽃의 이름도, 나무의 속성도 알지 못한 채 매일 같은 시간, 그 나무 앞에 멈춰 섰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꽃잎들은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는 문장처럼 제 존재를 다 해 빛나고 있었다. 설명도 변명도 없이, 그저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중심에 도달하는 기분. 그 기분은 오래도록 남았다.


글을 쓴다는 건, 아마도 그 나무를 바라보는 감각과 닮아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오래 바라보는 일. 무엇이 피어날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그저 기다리는 일. 뿌리도 줄기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절을 지나 어느 날, 말이 피어난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감정이다. 문장은 항상 그 뒤를 따른다. 의식보다, 논리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움직임. 그것은 언어 이전의 떨림이고,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숨결이다.

산딸나무의 꽃은 사실, 꽃이 아니다. 꽃처럼 보이는 네 장의 흰 조각들은 ‘포(苞)’라 불리는 잎의 변형체다. 진짜 꽃은 그 중심에 숨어 있다. 너무 작고 수줍은 얼굴로,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이름 붙여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존재하는 것. 많은 문장은 중심을 감싸기 위한 겹겹의 포엽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완결된 하나의 문장일지라도, 그 속에는 조심스럽고 연약한 중심이 숨겨져 있다. 그 중심이 없다면 문장은 결코 피지 못했을 것이다.

네 장의 잎 가운데 저렇게 작은 꽃이 피어나..


중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일.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며, 그 반복 속에서 문장은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 쓰지 못한 말, 오해받을까 봐 삼킨 감정, 끝내 문장으로 새기지 못한 마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문장은 자란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목격한 이들은 안다. 이것은 감각이 아니라 사건이다. 한 문장이 생겨났다는 것은, 한 생이 기적처럼 일어섰다는 뜻이다.

꽃은 피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기미를 감지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때가 차면, 그 문장은 저절로 피어난다. 하지만 그 ‘저절로’라는 말은 그 모든 축적의 시간을 생략한다. 저절로 피어난 꽃 뒤에는 계절의 온도와 침묵, 바람과 빛과 기다림이 있었다. 들키지 않은 자리에서 조용히 덜어낸 초안들, 부끄러워 감춘 감정들, 끝내 지우지 못한 흔적들이 있었다. 그 모든 실패와 침묵 온도가 한순간의 개화로 이어진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오래 머무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문장이 있다. 잎이 스스로를 감춘 채 중심을 감싸듯, 수많은 문장은 언젠가 피어날 말을 위해 준비된 잎들이다. 그 잎들이 오래도록 포개지고 쌓이면서 마침내 어떤 문장은 꽃이 된다. 피어날 때까지는 모두 잎이었다는 것. 꽃은 잎이 스스로의 경계를 풀어낸 결과라는 것. 문장도 그렇다. 쓰는 이의 내면에서 오래 맴돌던 감정이, 방향을 찾고, 모양을 얻어, 마침내 피어나는 순간.



산딸나무는 여름으로 넘어가며 꽃잎을 하나둘 떨군다. 대신 짙은 초록 잎들이 제자리를 채운다. 마치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나무라는 걸 기억해 낸 듯, 그 잎들은 단단하고 여름을 닮아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였다는 기억을 간직한 채, 나무는 무성한 계절 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 이후엔 열매. 작고 붉은, 쌉싸래한 단맛이 도는 과실. 처음에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입 안에 넣고 오래 굴리면 그 맛은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남는다. 문장도 그렇게 열매를 맺는다. 누군가의 입에 닿고, 마음에 스며든다. 그 쌉싸래한 단맛은, 읽는 이의 기억 속에서 다시 어떤 문장의 씨앗이 된다.



글은 꽃보다 조용하고, 열매보다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감정 위에 한 문장이 조용히 내려앉을 때, 그것은 꽃이 아니라 뿌리에 가깝다. 금방 피었다가 시드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피어나기 위한 어떤 근원의 자리. 한 문장이 어떤 존재의 봄이 된다는 것. 언어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 삶보다 늦게 도착한 진심.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마침내 피어난 문장은 또 다른 마음으로 스며든다.



잎이 꽃이 되고, 꽃이 다시 잎으로 돌아오는 순환은 단순한 계절의 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근본적인 비유이자 문장의 본질적인 구조다. 모든 문장은 처음엔 잎이었다. 방어하고 감추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언어의 외피. 그 잎들이 충분히 시간 속에서 누워 있을 때, 마침내 중심을 향한 꽃이 피어난다. 말하지 못했던 것, 말할 수 없었던 것, 말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것들에 조용히 이름을 붙이는 일. 그것이 문장의 개화다. 누군가는 그것을 고백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기억이라 부르며, 더러는 살아 있음의 증거라 말한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을 지나 문장이 꽃으로 피었다 해도,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꽃은 지고 다시 잎으로 돌아간다. 한 문장이 열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장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의미는 언제나 생성의 현재형으로 존재하며, 글은 쓰이는 동시에 미완의 여백을 간직한다. 가장 빛나는 문장은 그 완성 속에 다음 문장의 시작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장은 읽는 이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걷게 만든다. 멈췄던 생각을 다시 흔들고, 고여 있던 감정을 다시 흐르게 한다. 문장 이후에도 계속 살아 움직이는 어떤 감각. 그것이 잎이 꽃이 되는 문장의 증거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페이지 앞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만이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다. 침묵과 실패와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한 줄의 문장이 피어난다. 그 문장은 누군가의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고, 누군가의 숨을 고르게 하는 바람이 되며,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마음의 첫 번째 단서가 된다. 문장은 멈춘 삶을 다시 걷게 한다. 그러므로 잎이 꽃이 되는 순간은 찰나가 아니라, 삶을 바꾸는 사건이다.


언젠가 나도, 당신도 그 문장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잎이었음을 잊은 채, 조용히 피어나



어떤 봄의 중심이 되는 문장 하나.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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