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18화

틈, 문이 되고

가장 내밀한 순간은 내가 아닌 나를 떠올릴 때

by 적적

거울은 빛을 반사할 뿐, 기억을 반사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얼굴을 들이대는 행위는 그저 익숙함을 확인하는 의례에 가깝다. 날마다 조금씩 다르게 늙는 얼굴, 모양을 바꾸는 피부, 쓸모를 잃어가는 표정들이 표면에서만 요동치고 그 속은 언제나 공백이다. 그런 얼굴이 어떤 자신인지 말해주지 못한다. 다만, 어제의 그림자와 오늘의 틈 사이에서 언제나 비슷한 혼란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어디부터가 자신이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자신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문득문득 자신이 아닌 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에 빠진다. 익숙한 이름이 어색하게 들리고, 오래 쓴 필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어느 저녁, 혹은 누군가가 불쑥 건넨 칭찬이나 비난이 마치 남 이야기처럼 들릴 때. 그것은 내면의 감정이 아니라, 현실의 어떤 틈에서 불쑥 새어 나오는 타인의 숨결 같은 것이다. 삶은 애초부터 자신이 아닌 무언가로 흘러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충동은 그 자체로 자아의 탈피다. 아주 다른 사람, 전혀 다른 이름, 전혀 다른 인생으로의 도약. 다만 그것은 비약이 아니라 이탈이다. 소속으로부터의 이탈, 기억으로부터의 이탈, 관계로부터의 이탈. 이름을 지우고, 출생을 지우고, 얼굴을 지우면 무엇이 남을까. 남겨진 것은 본래의 자아가 아니라, 수없이 미뤄온 어떤 가능성의 알맹이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언어로 말하고 싶다. 낯선 도시의 시장 한복판에서 길을 물어보는 낯선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누군가의 추측에서 벗어나고 싶다. 익숙함은 안락하지만, 안락함은 곧 퇴적이다. 쌓인 삶이란 정체된 감정과 단단한 후회로 굳어간다.

그리움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향해 있다. 자신이 될 수 없었던 수많은 나, 선택하지 않았던 길, 망설이다 놓쳐버린 문. 그것들이 가끔 어깨를 두드린다. 지금이 전부는 아니라는 듯.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지 묻는 듯. 그 물음에는 대답이 없다. 다만 회피와 침묵, 그리고 어설픈 위로만이 겹겹이 덧칠된다.



사람은 평생 자신을 구축해 가며 살아간다. 학교와 직장, 친구와 연애, 책과 취향, 작은 실패와 우연한 습관들이 모여 자아를 이룬다. 그러나 그 구축물은 견고한 동시에 위태롭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구조물,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다리처럼.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 구조물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의 회피 끝에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길을 걸을 때, 문득 저 골목으로 꺾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나에 대한 상상, 그리고 불가능했던 나에 대한 예우다. 모든 가능성은 실현되지 못했기에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잔인하다. 이루어지지 않은 생은 언제나 가장 빛난다.



모든 사람은 두 겹의 존재로 살아간다. 겉의 나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역할로 형성되고, 속의 나는 기억과 욕망, 상처와 망상으로 구성된다. 이 둘은 어긋나 있으며, 충돌한다. 겉의 나는 침묵하고, 속의 나는 분노한다. 겉의 나는 웃고 있지만, 속의 나는 가끔 죽고 싶다. 이 이중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너지지 않음이 곧 고통이다.



‘다른 내가 되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단순한 몽상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견디기 위한, 혹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은밀한 통로다. 모든 문이 닫혔을 때, 상상 속의 그 문 하나만은 열어둘 필요가 있다. 삶은 언제나 하나의 가능성만을 좇기엔 너무 복잡하고, 너무 길다. 그리고 어쩌면 그 통로를 통해서만, 진짜 자신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였을 때의 자신은 어른이 되면 모든 게 명확해질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일과 피하고 싶은 일, 사랑할 사람과 떠나야 할 사람. 그러나 자란다는 것은 명확함이 아니라 모호함을 견디는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된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의 망설임, 선택 이후의 후회, 그리고 그 후회의 연쇄. 삶이란 결국 '다르게 살 수 있었던 나'와 끝없이 대면하는 일이다.



어쩌면 다른 나는 지금, 전혀 다른 도시의 오후 햇살을 맞으며, 다른 언어로 된 신문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다르고, 머리 모양도 다르고, 사용하는 말의 어순과 리듬도 다르다. 그 삶의 시간대는 지금과 어긋나 있고, 바라보는 풍경도 이국적이다. 하지만 그 나 또한 이 나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자신을 상상하며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던 길을 걷는다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길의 바깥에도 수많은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은 하나의 삶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살아지지 않은 수많은 생,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감정이 한 사람 안에 숨어 있다. 그 숨어 있는 것들이 때때로 고개를 들고,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정말 너의 삶인가?"라는.



그 물음은 단호하지 않다. 조용하고, 느릿하며, 다정하다. 아무도 모르게 귓가에서 속삭인다. 하루의 끝, 전등을 끄고 누웠을 때, 미간에 남은 피로 속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문득, 너무 오랫동안 자신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목 안쪽을 타고 내려온다. 익숙함이 지겨워지는 순간, 인간은 다른 자아를 꿈꾸기 시작한다.



다르게 태어났더라면, 다른 가정을 가졌더라면, 다른 언어를 말했더라면. 그 가정법 속에서 현실은 가벼워지고, 환상은 윤곽을 얻는다. 그 윤곽은 때로 더 선명하고 단단하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무언가를 상상하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상상 속에서조차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삶은 조금 더 견딜 만해진다.



가끔은 아주 멀리 도망치고 싶다.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나에게서 멀어질수록, 낯선 내가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낯섦이 삶의 새로운 층위를 연다.

그러니, 때로는 전혀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허락해도 좋다. 그 욕망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근원적 자각이다. 그 자각이 있기에 인간은 오늘도, 자신이 아닌 채 자신으로 살아간다.



전혀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부끄러운 망상이 아니라, 존재의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가장 솔직한 질문이다. 그것은 지금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삶이 결코 전부가 아님을 아는 자만이 품을 수 있는 고요한 인식이다. 세계는 단 하나의 자아로 환원되지 않는다. 인간은 오직 자신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수많은 내가 겹쳐 있고, 그 겹침은 때때로 비명을 지르거나 침묵하거나 어떤 날엔 회한처럼 가슴을 누른다. 이름도 성격도 다른 수많은 자아가 현재의 나를 빙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가능성의 언어로 말한다.



언젠가는 춤을 추고 싶었고, 언젠가는 전혀 말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언젠가는 혼자 깊은 산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수많은 나. 그 각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꿈의 실패는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불발된 삶들 덕분에 현재는 조금 더 무뎌지지 않은 채 지속될 수 있다. 어쩌면 삶은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수없이 흘러나온 분기점의 흔적들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삶을 밀도 있게 끌어안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몸짓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전혀 다른 생들을 그리워할 줄 아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가장 멀리 있지만 비밀스럽고 고요한 울림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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