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에 깃든 감정의 자기장
도시의 밤, 술에 취한 두 사람이 싸운다. 남자는 소리를 높이고, 여자는 눈을 피한다. 싸움의 발단은 간단하다. "왜 나를 자기라고 부르지 않아?" 그 말은 다툼의 겉옷일 뿐이다. 그 속에는 "왜 네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났는지"에 대한 추궁이 숨어 있다.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장이 꺼졌다는 뜻이다. 관계의 중력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자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만을 향해 그 말을 고정시키고, 어떤 사람은 동시에 여러 명을 향해 발화한다. "자기"라는 말은 고유명사가 아닌, 상황에 따라 떠도는 대명사다. 불안정성 때문에 더욱 강한 인력을 가진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무수한 중심성. 자기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끌어당긴다. 서로 엮일 때 기묘한 힘의 대칭이 생긴다.
모든 호명에는 중력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감정이라 부른다. 부르는 순간, 몸이 돌아보고 마음이 돌아앉는다. '자기'라는 단어는 특히 그렇다. 두 글자에 포함된 미세한 진동이 누군가의 심장을 향해 유도된다. 나침반의 바늘이 정북을 향하듯, 물리의 언어처럼 정직하고 감정의 언어처럼 조용히 잔혹하다.
어느 카페에서,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비 오는 지하철 출입문 틈에서 들려오는 그 말. "자기야." 스쳐가는 목소리에 얼굴이 돌아간다. 그 부름은 결코 우연히 허공에 흘려보낸 게 아니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세계를 휘어지게 만든다. 자기라는 말의 앞에는 고요한 지진이 있다.
그 부름 속에는 소유와 의존, 기도와 위협, 설렘과 소멸의 이중나선이 얽혀 있다. 모든 "자기"는 관계의 중력을 생성하는 말이다. 호명된 순간 말한 사람의 자기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기야"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은 상대의 궤도를 일시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 호명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다. 정밀하다.
"자기"라는 호명은 사랑의 이름을 흉내 낸다. 이름이 아닌 좌표다. 지도에 찍힌 별 하나. 자전하면서 누군가의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 중심이 되고자 하는 사람과 중심을 내어준 사람 사이의 궤도. 그 궤도 위에서 말은 돌고 감정은 끌려다닌다. 속도와 각도가 어긋나면 누군가는 튕겨 나간다.
"자기"라는 말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발화자는 종종 특정한 얼굴을 향해 있지 않다. 관계의 깊이를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처음엔 낯설고, 그다음엔 의무가 되고, 어느 순간엔 권태의 서곡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게를 잃고 결국 공기처럼 흐릿해진다. 공기 중에도 전자는 흐른다. 자기장의 본질은 보이지 않음에 있다.
말없이 서로를 향해 돌고, 어긋나고, 다시 접근한다. 그 안에서 말은 점점 줄어든다. 어떤 관계는 서로 "자기야"라고 부르지 않음으로써 유지되기도 한다. 호명을 포기하는 순간 무너지지 않는 거리감이 형성된다. 침묵의 균형. 자기장이 작동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어떤 연인은 헤어진 뒤에도 습관적으로 "자기"라고 부른다. 입에 밴 언어는 이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름은 관성처럼 계속되고 의미는 조금씩 부식된다. 그런 부름은 이별 후에도 잔류하는 자기장과 같다. 사라졌으나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 그 말이 허공에 떨어지면 받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잔향만을 남기고 흩어진다. 잔향은 곧 상실의 진동이다.
누군가는 "자기야"라는 한마디에 웃고, 누군가는 같은 말에 고개를 돌린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고, 어떤 사람은 굴레라 여긴다. 말은 시시각각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다. 사람마다 자기장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끌리는 방식도, 끌리는 이유도 각기 다르다. 공통된 사실 하나. 모든 호명은 누군가의 세계를 휘게 만든다.
"자기"라고 말하는 순간 발화자는 자기도 모르게 권력을 행사한다. 감정의 명명 행위이자 상대를 자기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의식이다. 그 단어는 함부로 쓰여선 안 된다. 관계의 방향을 틀고 감정의 중력을 생성하며, 때로는 그 무게로 상대를 짓누르기도 한다. 호명은 책임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세계가 바뀐다.
누군가 말했다. "자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모두 나의 자기장 속에 있는 거야."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통찰이다. 관계는 중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중심을 만들어주는 사람, 궤도를 유지해주는 사람, 멀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부르는 사람. 그 모두가 자기장의 일부다.
누구의 중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여전히 서로를 부르고 있는가. 자기라는 부름은 사랑의 증거이자 사랑의 흔적이다.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이미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어떤 말은 비가 내려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 보이지 않는 힘의 선들이 남는다.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자기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미 잃어버린 중심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발화되었는가에 따라 누군가는 눈을 돌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준다. 자기라는 말은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 조용히 작동하는 중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라고 부른다. 그 말은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뜨겁고 부드럽게 증발하면서도 누군가의 귓속에 낙인처럼 남는다. 진심인지 습관인지, 미련인지 탐색인지, 아무도 정확히 짚지 못한다. 분명한 건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공기는 미세하게 떨리고 누군가의 궤도가 흐트러진다는 것. 말은 가볍지만 말이 데리고 오는 감정은 무거운 진자처럼 흔들린다. 그 불러냄의 에너지는 뇌보다 먼저 심장을 스치고 의미보다 먼저 감각을 깨운다. "자기야"라는 단어는 사랑의 한복판에서 던져진 파편이자, 헤어진 후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감정의 잔향이다.
그 말이 끝난 자리에 침묵이 떨어지면 침묵마저도 자기장 안의 잔류물처럼 진동한다. 누군가를 자기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중력을 일부 떼어주는 일이다. 그 부름이 반복될수록 관계는 굳어지고 망가지고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말은 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진짜 무게를 갖는다. 떠난 사람의 입에서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자기’는 그 사람의 온 세계가 흘러간 자리다. 사랑은 한 사람의 언어 속에서, 단 두 글자짜리 호명 안에서 천천히 생성되고 고장나고 끝난다. 모든 관계는 결국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 어떤 말은 끝났는데도 아직도 누군가의 궤도를 끌어당긴다. 자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자기장 안에 살고 있다. 그 부름이 계속되는 한.
관계는 완전히 끝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