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되, 흔들고 간 것들에 대하여
편의점 앞,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얼음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한밤의 실온은 그 산을 무기물처럼 다룬다. 한낮에도 비슷한 기온이 지속된다면, 오전 뉴스에서는 기후이상에 관해 짧은 언급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풍경은 기후보다는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았다. 문틈에서 이탈한 냉기는 천천히 열기를 몰아내며, 금속 바닥을 딛고, 도심의 열기를 유예시키는 중이다.
편의점 사장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던 두유를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백마 탄 왕자도 냉장고에 있던 공주를 그냥 두고 도끼질하다 말고 돌아갈 거야.
얼음을 향한 농담이었고, 동시에 성에를 이겨내지 못한 자의 후회였다. 냉장고 안쪽, 유제품은 마치 극지방의 동굴처럼 빛을 품고 있었다. 발효유는 모두 얼어붙었고, 치즈는 조용한 단단함으로 자신의 형태를 버티고 있었다. 얼음과 성에의 덩어리는 우유 팩을 포위했고,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요구르트병이 냉기를 향해 쩍 벌어져 있었다.
사장은 웃음을 흘리며, 성에 덩어리를 깨기 위해 철제 스패튤러를 들었다. 도끼 대신, 하루의 근무 시간만큼 무딘 금속. 얼음을 내리치는 소리는 생각보다 가볍고, 마치 누군가의 기억을 얕게 긁는 것 같았다.
가로수 아래, 떼어낸 얼음 조각들은 무심한 태도로 녹아내렸다. 눈처럼 하얗지만, 눈보다 빨리 녹는 성질. 마치 존재했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결백. 그 얼음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외면당했지만, 동시에 모두의 체온에 관여하고 있었다. 기온은 1도쯤 낮아졌고, 건널목 앞의 공기는 잠시 평형을 잃었다.
무너진 냉장고 안에서 밖으로 밀려 나온 차가운 공기는 은밀한 방식으로 골목을 점유했다. 철제 냉장고 문은 삐걱이며 닫혔고, 사장은 물기를 닦으며 담배를 찾았다. 편의점 안쪽은 그제야 다시 상품 진열의 목적을 되찾았다. 그러나 얼음들은 여전히 바깥에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기억의 밀도처럼, 아무에게도 기록되지 않은 채 증발했다.
정오 무렵, 얼음 더미는 반쯤 사라졌다. 성에의 덩어리도 줄었고, 도시의 열기는 이긴 자의 방식으로 철제 위를 점령했다. 이기고 나서야 의미를 잃는 것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승리. 냉각된 기류의 마지막 흔적은 도로 위 작은 물웅덩이에 남았다. 그것은 조용히 자신을 하늘로 비추고 있었다. 미세한 먼지와 무관하게, 반사된 구름은 단정하고 말이 없었다.
시간은 전진하고, 사건은 발화점을 넘지 못한 채 흐지부지해졌다. CCTV에 기록된 냉장고의 개방은 단 몇 시간의 실수였다. 그러나 그 짧은 실수가 만든 얼음의 산은, 몇 시간 동안 거리의 표정을 바꾸었다. 생긴 자국 없이 사라지는 것. 그것은 물리적인 사건인 동시에 무게가 없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변화. 지워졌지만 분명히 있었던 공기의 흔적.
성에의 부스러기는 하수구 근처에서 작은 시냇물처럼 흘렀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지지하는 이 도시에서, 그렇게 작고 무해한 이탈은 언제나 허용되었다. 그것은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는다.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떤 감정은 발생한다. 그것은 대체로 소모되고, 잊히며, 멀리 흐른다. 그러나 흔적 없는 사라짐은 드물게, 잠깐, 거리의 인상을 바꾼다.
얼음이었던 것들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발에 밟혔고, 차바퀴에 치였고, 태양의 직사광에 눈부시게 반사되다가 끝내 사라졌다. 그러나 낮은 기온은 여전히 공기 중에 남아, 아주 미세한 방식으로 숨결에 관여한다. 편의점 유리문은 여전히 닫히는 데 시간이 걸리고, 사장은 그 틈을 종종 확인한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러나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세로.
산처럼 쌓였던 얼음들은 어느새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다. 편의점 앞은 다시 익숙한 풍경으로 돌아왔고, 아무도 그날의 냉기를 언급하지 않는다. 얼음이 녹는 데 걸린 시간보다, 그것이 존재했던 의미는 더 짧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해가 지고 난 뒤 건널목 앞을 지나는 누군가는, 그 공기의 얇은 경계를 지나며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서늘함이 무릎 아래를 스쳐 지나가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길을 건넌다. 무언가가 존재했었다는 예감만을 남긴 채.
편의점 앞, 철제 냉장고의 문은 여전히 제 속도로 닫히고 있다. 아주 천천히
거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