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로 위로케 하리라.
벚꽃이 질 무렵, 목련이 떨어질 무렵, 튤립이 꽃잎을 버릴 무렵, 장미가 질 무렵, 꽃을 본다. 피어날 때가 아니라, 피어났던 자리에 남은 흔적으로서의 꽃. 그늘처럼 남은 색, 바람에 흩어진 가루, 주워지지 않은 꽃잎들. 흩어짐과 낙하, 끝에 닿은 생은 더 이상 축제의 중심에 있지 않다.
도시는 피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꽃은 장식물이 되었고, 때맞춰 피는 능력은 상품이 되었다. 개화 예보가 늦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일기예보보다 정교한 계산으로 꽃망울의 부푼 정도를 예측한다. 꽃이 피면 사진이 찍히고, 그 사진은 다른 꽃들보다 먼저 피었는지의 경쟁자료가 된다. 화면 속에서 꽃은 만개 상태를 고정당한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은 꽃이 질 때 일어난다.
축제는 피어나는 것들만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찬란한 것들만이 초대받고, 덜 피어난 것들은 철 지난 셔터처럼 잊힌다. 피지 못한 것과 피었다가 진 것, 그 둘은 결국 같은 자리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피지 못한 것에 대한 연민은 존재해도, 진 것에 대한 예의는 없다. 끝난 것에 말을 거는 기술은 대부분 잊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목울대를 긁고 지나가면, 더 이상 꽃의 이야기에서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봄은 끝났고, 공기는 여름의 것을 준비한다. 그 시점에서 피는 것들은 도시의 중심에서 멀다. 이름조차 붙지 않은 것들, 명명되지 않은 것들이 틈새에서 돋아난다. 도로 경계석, 낡은 담벼락, 버스 정류장의 바닥,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만나는 가장 낮고 어두운 곳. 거기에서 들꽃이 핀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높이. 시선은 하강하고, 그 방향의 세계는 생각보다 넓다. 발아래서 열리는 제국. 그 왕국의 꽃들은 높이 자라지 않는다. 보여지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견디기 위해 피는 것들. 뿌리는 얕고, 몸은 가늘며, 바람과 체온, 습도에 민감하다. 그러나 그 민감함 덕분에 버틴다.
이름 없는 들꽃들이 지닌 감각은 정원에서 길러진 꽃들과 다르다. 정원은 제초제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으며, 자라는 순서와 피는 시기를 정해주지만, 길가의 들꽃은 날씨 하나에도 흔들린다. 미세한 공기 진동, 옆을 지나치는 자전거의 바퀴 바람, 신발의 그림자에도 흔들림이 일어난다. 생존은 무감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들꽃은 기념되지 않는다. 무리가 되어 피지 않기 때문에 배경이 될 수도 없다. 눈길을 끌지 않는 자리에서 홀로 피고, 홀로 진다. 제 이름을 스스로 부르지 못한 채. 누군가는 그 꽃들을 ‘잡초’라 부르고, 누군가는 ‘이름 모를 들꽃’이라 부르며, 또 누군가는 아예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익명성이야말로 진정한 생의 방식일 수 있다. 명명되지 않았기에 해석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았기에 지속된다.
과잉된 관심은 꽃을 시들게 만든다. 누군가의 시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주름이 생기고, 플래시가 터진 자리에는 생이 소모된다. 정원의 꽃들은 일정을 따라 피고, 그 피어남은 전시된다. 그러나 들꽃들은 일정을 갖지 않는다. 그들의 시계는 기상청의 자료를 참조하지 않는다. 비가 먼저 피고, 바람이 먼저 진다.
들꽃이 피는 시기의 도시는 분주하다. 계절의 중심에서 밀려난 시간대, 한여름과 장마 사이, 사람들이 더 이상 꽃을 찾지 않는 시간. 그 시기의 골목에는 정적이 깃든다. 침묵이 아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식물들의 발화. 꽃은 핀다. 아무 말 없이, 아무 기념 없이. 그리고 지운다. 피었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흩뿌린다.
누군가는 들꽃을 보고 “왜 거기에서 피었을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런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거기에서 피었기 때문에 피어난 것이다. 뿌리내릴 틈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꽃은 조건이 아니라 틈에서 자란다. 흙이 있는가가 아니라, 흙이 될 만한 것이 있는가로 자란다. 들꽃은 준비되지 않은 땅을 준비된 장소로 만든다.
가장 초라한 꽃들이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피어나는 장소. 그 장소가 바로 들꽃들의 제국이다. 그 제국에는 왕이 없다. 지배도 없고 중심도 없다. 질서가 없고, 법이 없으며, 다만 피고 진다는 사실만이 존재한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한 공동체. 축제가 필요 없는 왕국. 기념되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는 문명.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구축된 형태.
바람이 불면 서로를 건드리고, 비가 오면 서로를 감춘다. 들꽃은 독립체가 아니라 연합체다. 그러나 그 연합은 동의가 아니라 우연의 집합이다. 어떤 이름도 부여되지 않았고, 어떤 정의도 강요되지 않았으며, 함께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그곳에서는 피지 않은 것조차 받아들여진다. 지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 있었던 것으로서 충분하다.
그 위로는 말이 없는 상태로부터 비롯된다. 설명하지 않는 위로, 강요하지 않는 위로, 존재 자체로 작동하는 위로. 피지 않음도, 졌음도, 모름도 모두 허용되는 위로.
그 제국은 늘 낮은 곳에 있다. 무릎 아래의 시야, 시멘트 틈 사이, 계단 아래의 음영. 그곳을 보기 위해선 자세를 낮춰야 한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 그러나 숙인 고개는 항상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들꽃은 고요하게 대기한다. 모든 시선이 지나간 뒤에야 피어난다. 관심이 끝난 자리에서 자라며, 기념이 사라진 시점에서 다시 나타난다.
그 제국은 사람 없는 시간에 활짝 피고, 사람 없는 틈에서 가장 격렬하게 성장한다.
누구도 그들에게 손뼉을 치지 않지만,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지나가던 눈길, 조용한 바람, 오래된 그림자, 무심한 햇빛. 그것만으로 충분한 제국.
모든 축제가 끝난 이후, 이름 없는 것들이 다스리는 조용한 세계가 온다.
그리고 그 제국은 말한다.
지지 않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가장 순결한 존재는 이름을 갖지 않는다. 이름은 소유의 첫 단계이며, 분류와 예속의 시발점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것에 이름을 붙이며, 결국 그 이름으로부터 멀어진다. 들꽃은 자신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다. 불리지 않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으며, 불멸을 꿈꾸지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남는다.
높이 피는 꽃은 중력을 거스르려 한다. 그러나 무게는 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가라앉는다. 존재의
무게는 늘 낮은 곳을 선택한다. 들꽃은 그 무게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식물들이다. 명예의 고지보다 균열 진 틈을 선택한 식물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서야 자신의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들.
들꽃들의 제국에는 기록이 없다. 역사도 없다. 그러나 그 무(無)의 연대기야말로 가장 지속적인 시간의 형태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만이 반복된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사라지지만, 들꽃은 잊힘을 통해 계속된다. 어쩌면 삶은 기억보다 망각에 더 가깝다. 잊히지 않기 위해 남긴 것들은 스스로를 소진하지만,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은 끝내 잊히지 않는다.
빛나는 것은 금방 사라진다. 꽃은, 특히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꽃은, 가장 빠르게 시든다.
누군가의 눈에 들어오지 않은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볼 수 없는 것만이 끝까지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세계가 가진 가장 묘하고 잔인한 법칙이다.
지지 않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피는 순간부터 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들꽃은 가볍고 아름답다. 죽음과 소멸은 예정되어 있고, 그 예정은 구원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그 예정된 끝을 모른 척하며 살아가지만, 들꽃은 그 끝을 알기에 살아남는다. 어떤 싸움도 하지 않으며, 어떤 정의도 외치지 않는다. 생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 제국은 말한다.
사라지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도 좋기에 피어나는 것이다.
그 말은 어느 시인의 문장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