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왼쪽으로 앉는다

균형을 위한 무의식의 기울기

by 적적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큰 뼈는 넓적다리뼈(대퇴골)이며 가장 작은 뼈는 귓속뼈인 등자뻐이다. 등자뼈는 귀속뼈중 하나로, 크기가 매우 작아 약 2mm정도라고한다.



등자뼈는 말을 탈 때 안장을 고정하는 금속 고리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부위다. 말과 인간 사이의 묘한 공존을 가능케 하는 구조물, 그것이 없으면 안장은 쉽게 미끄러지고, 기수는 말의 움직임에 몸을 실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에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것이 등자뼈일 것이다. 단단하고 보이지 않지만, 중심을 이루는 부위.



그녀의 마음속엔 그런 등자뼈가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지탱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흔들림 없는 얼굴, 우아한 움직임, 필요 이상의 침묵. 단어들이 표면에 머물다 사라지는 걸 보며 사람들은 그 침묵을 고요로 착각했다. 그러나 고요란 결국 어떤 파동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에 더 가까운 법이다.


말을 탈 줄 아는 사람은 발을 등자에 올릴 때, 균형과 압력을 모두 고려한다. 지나치게 누르면 말이 불편해하고, 너무 약하게 딛으면 기수 자신이 불안정해진다. 그녀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조율했다. 일정한 거리, 무게, 그리고 힘의 분배. 누군가는 그것을 냉담함이라 불렀고, 다른 누군가는 통제된 우아함이라 했다.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아니었다.



그녀의 방엔 나무로 된 앤티크 거울이 하나 있었다. 유리의 가장자리는 미세하게 휘어 있어, 거울 속 얼굴은 현실보다 약간 더 가늘고 길어 보였다. 매일 아침, 그 앞에 서서 머리를 빗고 입술에 색을 얹고 옷깃을 정리했다. 거울에 비친 표정을 읽는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예행연습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거울 속 그녀는 매일 조금씩 변했고, 그 미세한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무릎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닥, 오래된 찻잔의 이빨 같은 금, 거실 구석의 그림자 속에 잠든 먼지들. 그녀는 사물들이 조용히 늙어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균열과 불완전함, 닳아가는 손잡이와 바래는 커튼의 주름. 삶은 결국 그런 것들로 채워졌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지탱하는 무엇인가를 찾았다.


등자뼈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 그것은 상처이자 구조물이었고, 기억이자 방향성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꺼내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가끔, 비 오는 날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을 때, 혹은 낯선 사람이 건넨 무심한 질문 속에서 그 존재를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단단하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단단함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이었다. 어릴 적 잠든 어머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던 조용한 숨소리,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던 아버지의 구두소리, 그리고 아주 작게 열린 방문 틈새로 보이던 복도의 빛.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음속 구조물을 만들었다.



사람의 기억은 연못보다 얕고, 바다보다 깊다. 그녀의 기억은 물처럼 고여 있었고, 필요할 때면 그 안에서 오래된 장면들을 끌어올렸다. 어린 시절의 바닷가, 유리병에 담긴 편지, 첫사랑의 책상 서랍 속 초콜릿 포장지.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의미란 늘 뒤늦게 찾아오는 손님과 같았다. 그가 오면 자리 하나를 비워줘야 했고, 대신 이전의 해석은 조용히 퇴장해야 했다. 그녀는 그런 손님들을 여러 번 맞았다. 첫 번째 이별, 아픈 친구의 죽음, 도서관에서 마주친 문장 하나. 그 모든 경험이 마음속 어딘가의 등자뼈를 조금씩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자세로 삶에 올라탄다. 어떤 이는 정면을 향해 똑바로 달리고, 또 어떤 이는 약간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다. 그녀는 늘 왼쪽으로 몸을 약간 틀고 앉았다. 균형을 위해서였고,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 자세는 오랜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고, 그것이 주는 안정감을 알았기에 쉽게 바꾸지 않았다.


감정은 조율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 감정의 물결이 지나간 후 남는 침묵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지닌 것의 윤곽을 더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문장, 어떤 음악, 혹은 어떤 그림 앞에서 문득 눈물이 솟을 때, 그것은 어떤 사치도 연기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구조물—등자뼈가 느끼는 고통의 신호였고, 존재의 중심에서 울리는 진동이었다.



그녀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다. 단지 무너질 수 없는 구조였을 뿐이다. 중심을 잃으면 모든 것이 기울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언제나 일정한 힘으로 내면을 조여야 했다. 그 조임은 외부에서 보기엔 강인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피로였다. 누구도 그녀의 그 피로를 읽지 못했다. 그것은 낡은 조명 뒤의 섀도우처럼, 관찰자의 시선 너머에서만 존재했다.


때때로,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그것은 어떤 의식도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언어들이었다. “괜찮아.” 혹은 “조금만 더.” 그런 문장들. 그것들은 그녀가 자기 자신을 붙드는 방식이었고, 무언의 기도처럼 반복되었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그녀에게만은 분명한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마음속 등자뼈는 어떤 확고한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 오래된 집의 문을 여닫는 철제 경첩이었고, 겨울 이불 속에 감춰진 낡은 양철 상자였으며, 도시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 같은 것이었다.이름 붙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이 그녀를 삶 위에 올려놓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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