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 finale

묘사는 감정의 유언장이다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pnhTPeKijdQ

Ozzy Osbourne이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체가 없는 감정이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형체가 있는 사물이다. 벽의 결, 수건의 보풀, 젖은 유리창에 맺히는 물방울의 패턴. 그것들이 먼저 흐려진다. 묘사는 그 흐림을 붙잡기 위한 언어의 창고다. 그러나 창고에도 문은 달려 있다. 세월의 문, 기억의 문, 용기의 문. 묘사란 결국 문이 닫히기 전까지 잠시 열어두는 통풍구에 불과하다.


모든 묘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것은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한 날짜를 갖지는 않지만, 명확하게 끝을 가진다. 바람이 벽지를 스치는 사운드, 늦은 오후 바닥에 드리우는 창살의 그림자, 찻잔에서 피어오르다 금세 사라지는 김. 처음에는 그것들을 고요하게 응시하는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이 언어를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시선은 흐트러진다. 응시는 무뎌지고, 언어는 퇴색한다.



묘사는 기억보다 빠르게 죽는다.

기억은 감정에 묻혀 천천히 삭아가지만, 묘사는 감정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과거의 장면을 다시 불러올 때, 풍경은 남아 있어도 구체적인 온도나 냄새, 질감은 흔적만 남는다. 그러므로 묘사는 생존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저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공기 속에 한 번 흩뿌려지고, 눈꺼풀 아래 한 번 깜빡이며, 어딘가로 사라진다.


가장 먼저 유통기한이 다하는 묘사는 감각적인 것들이다.

여름 오후 4시 반의 햇빛, 체온이 남아 있는 린넨 셔츠의 촉감, 도시 외곽의 고속도로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주파수. 그런 것들은 너무 빨리 끝난다. 감각은 항상 무심하게 무너지고, 묘사는 그 무너짐을 붙잡기엔 늦는다. 모든 촉각은 순간의 것이라서, 언어는 그 자리에 도달하기도 전에 증발한다.



오래 남는 묘사는 정서가 섞인 것들이다.

한 겨울 지하철 창문 너머의 어두운 동굴, 검은 유리벽에 비친 잊은 얼굴, 손끝에서 멀어진 문고리의 온도. 정서는 묘사의 껍질을 한 겹 더 씌운다. 그 껍질은 쉽게 부식되지 않지만, 오히려 부식될 때 더 끔찍하다. 정서가 빠져나간 묘사는 형체만 남는다. 마치 빈껍데기처럼. 의미 없는 가을 낙엽의 디테일, 더는 아무것도 불러오지 않는 골목의 질감.



묘사의 유통기한은 관계의 유통기한과 비슷한 방식으로 끝난다.

처음엔 모든 장면이 선명하다. 무채색이던 거리도 특정한 눈빛 아래선 색을 갖고, 바람도 말투처럼 구별된다. 하지만 익숙함이 몰려오고, 반복이 서서히 눈을 가린다. 그제야 묘사도 무너진다. 처음과 같았던 벽지는 ‘그냥 벽지’가 되고, 향긋하던 향수는 ‘지나간 향’이 된다. 가장 오래 남을 것 같던 묘사일수록 더 빠르게 사라지는 법이다. 기억은 남을지 몰라도, 그 기억을 설명할 언어가 사라진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적적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74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7화묘사 begi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