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 beginning

정지된 장면에 언어의 체온을 불어넣는 기술

by 적적

사진은 정지한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멈추기 직전, 혹은 멈춘 뒤에도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해 기울고 있는, 불완전한 중심 같은 것이다. 그 안에는 언제나 ‘이전’이 있다. 사진 속 웃고 있는 얼굴은 이미 그 표정을 멈춘 이후이며, 휘날리는 옷자락은 몇 초 전의 바람을 품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사진이 간직하는 것은, 언제나 그 장면을 향해 다가오던 사물의 느린 기척, 아직 프레임 바깥에 머물러 있던 것들 미완의 서사다. 묘사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qFfFVSerQo&list=RDEMk8jEIzOyB2trfXZrSEVz_Q&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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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는 장면을 그리는 기술이 아니다. 이미 찍힌 사진의 배경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빛이 그 자리에 도착하기 전의 시간, 얼굴이 돌기 전의 방향, 그림자가 생기기 전의 각도를 복원하려는 몸짓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되짚는 행위이며, 말로는 끝내 잡히지 않는 진동을 끝까지 따라가려는 집요함이다. 묘사는 선명하지 않다. 오히려 선명함을 미루고, 흐릿한 가장자리에 매달린다. 중심이 아닌 여백에서 말문을 트고, 당연하지 않았던 장면의 기원을 캐묻는다. 마치 사진을 찍은 손보다, 사진을 찍히기 직전 고개를 돌린 사람의 시선이 더 궁금한 것처럼.



묘사의 대상은 언제나 부재한다. 사진 속 사람이 입고 있는 셔츠의 주름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 주름이 만들어지기 전의 무표정한 천은 어떤 감촉이었는지, 그 셔츠를 고른 아침 날씨는 어떤 기온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묘사는 결코 '보이는 것'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에 말을 걸기 위해, 보이는 것을 빌려 쓴다. 언어는 늘 한발 늦는다. 그러므로 묘사는 지연된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빛이 닿기 전에 울리는 진동처럼, 도착하지 않은 말을 준비하는 침묵처럼.


사진은 결코 완성된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설명되지 않은 사건이며, 여전히 해석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묘사는 그 틈을 파고든다. 지나간 시간이 남긴 불연속에 머물며, 그것이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대신 이어 붙인다. 사진 속 정적인 순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문장이고, 묘사는 그 문장에 쉼표를 붙이고, 주어를 바꾸고, 잘린 동사를 찾아다닌다. 그렇게 언어는 사진보다 더 오래 머문다. 사라진 것에 대한 경청은, 언제나 묘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사진을 과거의 증거라 말하지만, 묘사는 그 증거가 말하지 못한 진술을 상상한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이의 귀에, 무엇이 속삭였는지를 상상하는 일. 골목 끝의 어둠이 생기기 직전까지 그 골목에 머물렀던 햇빛의 체온을 떠올리는 일. 거기 없었던 것이 거기 있었음을 믿는 방식. 묘사는 늘 회상의 문턱에서 균형을 잃는다. 그것은 감정의 기울기이며, 기억보다 먼저 움직인 감각의 잔상이다.


묘사는 사진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이전의 세계를 얘기한다. 과거형도 아니고 현재진행형도 아닌, 말로 옮기기 애매한 시간대에서 조심스럽게 끌어올린 이야기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남겨진 장면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랑을 위한 몸짓이다. 사진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은, 결국 그 장면의 ‘이전’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말들을 기다리는 사람, 말해지지 않은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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