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거짓의 기하학

말의 끝에서 건네는 국화

by 적적

언어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기 위해 존재한다. 거짓말은 종종 이 둘 사이의 틈에서 태어난다. 어떤 이는 그 틈을 절벽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다리라 부른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곧장 직선 위를 걷는 것과 같지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굽은 곡선을 따라 걷는 일이다. 그러나 곡선은 때로 더 멀리, 더 안전하게 데려다준다.



거짓말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고요한 애정의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체면, 관계, 미래, 혹은 마음속에서만 자라고 있는 어떤 환영. 간절한 마음은 언제나 진실보다 앞서 도착하고, 도착하자마자 현실을 말소시킨다. 그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절박할 때, 진실은 조용히 퇴장당한다.


철학자들은 거짓말의 윤리에 대해 논쟁했지만, 간절함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간절함은 이성의 문장으로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순전하고 고결하게 자라다가, 끝내 비열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모순이라면, 세상의 사랑이란 것 역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진실은 사랑을 매번 낯설어한다.



간절함이란 감정은 항상 현재의 언어를 미래의 서사로 전이시킨다. 거짓말은 그 연결 고리다.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 “사랑해”라는 고백조차 종종 그 밑바닥에서는 진실이 아닌 기원이 깃든 허위이다. 그러나 그 허위는 타인을 속이기 위한 기만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의 말투일 뿐이다.



실제로 이루어진 것보다, 이루고자 했던 마음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면, 그 거짓말은 죄악이 아니라 기도다. 누군가는 신 앞에서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거짓이라도 괜찮으니, 이 마음을 받아달라.” 그런 기도는 신조차 침묵하게 만든다. 거짓이 때로는 기도의 문법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결핍된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모든 기만은 본래 비겁한 행위로 분류되지만, 간절한 거짓은 예외다. 그것은 생존의 기술이고, 마음의 장례식이다. 무언가가 죽어가는 순간,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그것은 그 대상에게 보내는 마지막 예우이기도 하다. 사랑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허위인가, 혹은 장례식의 국화인가.



거짓은 흔히 사실과 어긋난 진술로 정의되지만, 간절한 거짓은 가능성과 충돌하는 진술이다. 그것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선제적 설계이며, 바랄 수밖에 없던 모든 희망의 화석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거짓말은, 어떤 이의 내면에서 오래도록 돌처럼 가라앉는다. 그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미완의 구조물이다.



한 철학자는 진실이란 공기 같아서, 없어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산소통이 된다. 물속 같은 현실에서 허우적거릴 때, 사람은 거짓을 붙잡고 살아남는다. 그 통이 비어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물속에서 입을 벌린다. 그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허위성 속에 진정한 인간성이 숨겨져 있다.


거짓말은 끝끝내 진실을 욕망한다. ‘진실처럼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떤 욕망이 진실을 닮고 싶어질 때, 그것은 인간적인 마음의 증거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거짓말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진실의 조각을 가진다. 완전한 허구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거짓은 어느 순간의 진심에 기대어 버틴다.



누군가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되짚으면, 그 안에는 언제나 최소한의 허위가 포함되어 있다. 이별의 말, 사랑의 시작, 고백, 약속. 모두 그 순간의 감정이 지나간 후에는 다르게 들린다. 그러나 감정은 그 순간에는 진실이었다. 그 순간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거짓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인가. 시간에 취약한 언어일 뿐이라면, 진실 역시 믿음의 일종이다.



간절함은 끝내 인간을 연기자로 만든다. 상대의 아픔을 모른 척하며 위로할 때, 스스로도 고통스럽지만 밝은 얼굴을 할 때,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기대를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그 연기는 누군가를 구하려는 처절한 감정의 연극이다. 그리고 그 무대는 아주 조용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 거짓이면서도 사랑이었고, 기만이면서도 선의였다.



때로 어떤 허위는 타인의 생을 지탱해 준다. 정직한 언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따뜻한 환영이다. 그 환영을 만들어내는 말, 그것이 간절한 거짓이다. 아무도 그것을 비난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거짓이 사라진 세계에서야 비로소 절망은 완전히 도래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거짓말은, 그 마음이 진실이었다면 끝내 용서된다. 오히려 그 거짓말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남기도 한다. 거짓말은 결국 감정의 그릇이다.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가에 따라, 그것은 독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간절했던 순간의 거짓말은, 누군가의 심장 속에서 오랫동안 생명처럼 뛰어다닌다.



진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진실은 때로 잔인하다. 반면 간절한 거짓은 때때로 구원의 옷을 입는다.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모순이라면, 삶이란 원래 그런 균열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그 건축물의 기초에는 진실도, 거짓도 아닌 어떤 흐릿한 감정이 놓여 있다. 그 흐릿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누구도 완전한 진실만으로 삶을 말할 수 없다. 삶이란 필연적으로 일부는 침묵이고, 일부는 과장이고, 일부는 허위다. 그러나 그 허위가 사랑에서, 보호에서, 바람에서 태어났다면, 그것은 도덕의 기준으로만 측정할 수 없다. 간절함은 윤리를 배반할 때조차 가장 조용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 침묵의 얼굴을 마주한 자는, 끝내 묻는다.



그러니 결국, 거짓말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는다. 가령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 잠시 머물던 불안한 망설임, 말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아주 얇고 투명한 침묵, 목소리보다 조금 더 앞서 떠오른 마음의 기류 같은 것. 그것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삶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거짓은 어딘가 늘 진실의 뼈대를 빌려 만든 그림자이고, 간절한 거짓은 그 그림자 속에서도 고유한 체온을 지닌다. 한 번쯤은 그 체온에 속아 넘어가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진실이 아니라, 체온에 끌린다. 말의 온기, 눈빛의 맥박, 머뭇거림의 간격 같은 것들에.



어떤 장면은, 거짓말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하던 이의 눈빛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꺾인 목선, 감추려는 미소, 더듬거리며 흔들리던 손끝. 그런 신체의 기억은 언어보다 오래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모든 감정은 추억이 된다.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단지 지나간 장면으로만 남는 어떤 순정한 순간. 삶은 사실 그런 기억들로 구성된다. 말보다 그 말을 건넨 자세, 의미보다 그 의미가 맴돌던 공기의 진동, 진실보다 진심이었기를 바랐던 숨소리. 간절함은 언어를 거짓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장 생생한 감정의 잔해로 남긴다.



한 사람이 오래도록 떠올리는 문장들은 종종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고통과 기대, 미련과 용서를 오롯이 담고 있기에, 사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런 문장들에 담긴 간절한 거짓은, 현실을 왜곡하기보다는 현실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위한 마지막 도피처였다. 그리고 그 도피처는 결국 기억 속에서 신전처럼 작동한다. 거짓말이었지만,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무엇을 잠시 복원해 주던 조용한 공간.


끝내 진실이었던 말들은 기억 속에서 무채색이 된다. 그러나 간절한 거짓은 오래도록 발화되던 순간의 빛깔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마음의 환상이고,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고결한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은 사실일 수 있지만, 감동은 언제나 허위와 접해 있다. 거짓은 마음의 비밀스러운 기하학이다. 그것은 어떤 곡선을 그리며 감정을 휘감고, 때론 진실보다 더 정확하게 누군가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렇게 거짓은 때로 고백이 되고, 변명이 되며, 찬미가 된다.



마침내 시간이 모든 것을 침묵 속에 묻어버린 후에도, 간절한 거짓은 남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문장도, 목소리도 없이 작게 울리는 공명이다. 부서지지 않고 오래도록 흔들리는 진동. 누구도 듣지 못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평생을 지배하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한 가지를 묻게 된다. 그 순간, 그것은 정말 거짓이었을까.



혹은, 간절한 진심의 가장 조용한 형태였던 건 아닐까.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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