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옛날 어느 마을, 깊은 산 아래의 구리빛 골짜기에는 동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바위처럼 무거운 문을 밀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 기계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고, 무수한 손과 시간의 힘으로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동전을 만들었다. 그 동전에는 학이 그려져 있었고, 한쪽엔 숫자가, 다른 한쪽엔 날개가 접힌 새가 박혀 있었다. 새는 절대 날지 않았다. 눈을 감은 듯 고요했고, 날개는 있었지만, 방향은 없었다.
기계는 사람들의 몸으로 작동했다. 무릎이 닳고, 손바닥이 굳어지고, 마음이 조용해질수록 기계는 더 부드럽게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웃는 일이 드물었다. 말은 필요 없었고, 시간은 벽시계가 아니라 심장으로 흘렀다.
그런 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구리와 아연과 니켈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것들은 한 사람의 하루, 일주일, 일 년이 모여 녹아든 무게였다.
어느 날, 기계 사이를 걷던 한 소년이 종이 한 장을 주웠다. 종이는 낯설게 얇고, 냄새는 잉크 냄새였다. 종이 위에는 무엇인가 인쇄되어 있었고, 왠지 모르게 이 종이 한 장이 동전 수백 개보다 더 소중해 보였다.
소년은 어른들에게 물었다.
이건 뭐예요?
어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스스로 답을 찾기로 했다. 골짜기를 떠나 마을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넓고, 더 다채로웠다. 어떤 사람들은 종이에 색을 입혀 지폐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기계를 돌리지 않았고, 구리도 만지지 않았다. 대신 책상에 앉아, 법이라는 마법을 이용해 종이를 ‘돈’으로 바꾸고 있었다.
소년은 다시 골짜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왜 우린 종이를 만들지 않아요?
어른들은 잠시 조용히 있었고, 결국 가장 늙은이가 말했다.
그날 밤, 소년은 기계 옆에서 동전을 녹이다가, 몰래 한 조각을 남겼다. 그 조각에 학 대신, 연필 하나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연필 옆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새겼다. 언젠가, 학이 진짜로 날 수 있기를.
그날 이후, 소년은 기계 안에서 더 이상 동전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종이와 연필을 들고 다녔다. 그는 매일매일 글을 썼고, 그 글은 동전보다 더 가볍지만 더 멀리 퍼졌다. 사람들은 처음엔 비웃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소년의 글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저 글은 내 마음 같아.
소년은 더 이상 동전으로는 계산되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의 연필은 짧아졌고, 종이는 구겨졌지만, 마음은 점점 맑아졌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그 골짜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기계는 멈췄고, 마지막 동전은 더 이상 학이 그려지지 않았다. 대신 작은 연필과 파란 종잇조각이 함께 새겨졌다.
사람들은 그 동전을 '마지막 동전'이라 불렀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것을 만지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냐하면 그 동전만은, 아주 오래된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삶은 기계처럼 시작한다. 태엽이 감기고, 누군가의 손에 의해 첫 작동이 이루어진다. 그 순간부터 인생은 되감지지 않는 시간의 선로 위에서, 수많은 ‘동전’을 찍어낸다. 그 동전들은 가볍지만 무겁고, 작지만 깊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삶의 어떤 구간은 그 정지된 날갯짓과 닮아 있다. 부드러운 구리의 결을 따라 하루하루가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 반복은 안전하지만, 동시에 침묵의 감옥이다. 구리와 아연과 니켈은 지워지지 않는 체온을 품지만, 결국 그것이 증발하는 방식은 늘 침묵을 동반한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 기억되지 않는 수고, 기록되지 않는 이름들. 금속의 냉정함은 그런 것들을 아주 오래, 조용히 품는다.
모든 기계는 본래 기억을 가지지 않는다.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 쪽이다. 기계는 반복하지만, 사람은 느낀다. 기계는 생성하지만, 사람은 상실한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어떤 존재는 그 불균형을 견디며 동전을 만들고, 어떤 존재는 종이 위에 지폐를 인쇄한다. 누가 더 무겁고, 누가 더 가벼운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연필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연필은 지울 수 있다. 글을 남기되,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그 유연함은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과 기억은, 지워질 수 있기에 더 절실하게 남는다. 연필로 쓴 문장은 언제나 더 조심스럽다. 세심한 터치, 숨죽인 듯한 선들, 멈칫한 곡선들. 지워질 가능성을 안고 있는 언어는, 가장 간절한 언어다.
동전은 실체의 무게를, 지폐는 허상의 넓이를, 연필은 감정의 흔적을 품는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생존 방식의 표식이자, 인간 존재의 세 가지 모순된 방식이다. 어떤 이는 동전처럼 산다. 묵묵히, 무겁게, 반복적으로. 어떤 이는 지폐처럼 산다. 경쾌하게, 넓게, 허상을 믿으며. 또 어떤 이는 연필처럼 산다. 불완전하게, 흔들리며,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흔적을 남긴다.
종이 위에 연필로 쓴 시 한 줄은 기계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어떤 말은 동전보다 단단하고, 지폐보다 고귀하다. 단, 그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신뢰는 지폐에만 허락된 개념이 아니다. 진실한 문장은 언제나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읽는 이의 삶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작동한다.
어떤 동전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학은 그 위에서 멈춰 있었지만, 언젠가는 날아야 한다. 그 비상이 진짜가 되려면, 금속의 결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따라야 한다. 삶은 언제나 외부의 기계가 아니라, 내면의 리듬으로 돌아간다. 동전을 만들던 손이 연필을 쥐게 될 때, 비로소 진짜 무게는 말이 된다.
세상은 기계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늘 기계 밖에 서서, 연필을 쥐고 있다.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쓰는 자, 끝까지 남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표현하는 자, 그들이 남긴 말들은 어느 동전보다 깊고, 어느 지폐보다 넓다.
학은 언젠가 날아야 한다. 그것이 박제된 상징이 아니라면. 그리고 날기 위해선, 반드시 한 번은 기계를 멈추고, 종이를 펴야 한다.
거기서부터 모든 비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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