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것, 차가운 것, 무너지는 것

여름과 감각, 그리고 사과로부터의 저항

by 적적

매일 낮 세 시가 되면 사과를 먹었다. 정확히는 사과를 먹는 여자였다. 찬물에 잠시 담갔다 꺼낸 사과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조심스레 두 손으로 쥐어졌다. 붉은 껍질 아래 희고 단단한 과육이 반사하던 빛은 태양보다도 선명했고, 그녀는 언제나 혀끝을 먼저 대보았다. 상온의 사과는 기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를 품고 있었고, 혀는 그 온도를 읽는 계기처럼 움직였다.



사과가 입안에서 무너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윗입술이 가볍게 들리는 순간, 그제야 씹는 행위가 진행 중임을 눈치채게 되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은 말없이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말없이 거리를 걷는다. 그녀는 말없이 사과를 먹었다.


그 행위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사과가 반쯤 먹혔을 즈음, 어김없이 침묵이 찾아왔다. 더 정확히는, 그녀의 침묵이 공간 전체를 잠식하는 시점이 있었다. 사과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숙이고, 오른쪽 관자놀이 근처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조금 비틀었다가, 다시 펴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붉은 과육 속에서 무언가를 발굴하고 있다는 듯한, 혹은 언젠가 잃어버린 것을 복원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므로.



사과의 씨앗을 보면, 그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다섯 개의 씨방이 있고, 그 안에 검은 씨앗이 담겨 있다. 그녀는 언제나 마지막에 그 씨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종종 사과를 반으로 쪼개놓고, 그 단면을 손톱으로 살짝 누르며 묘한 얼굴을 하곤 했다. 마치 그 구조 속에 숨은 의미라도 있다는 듯이. 혹은 그 대칭이 너무 정확해서 불안한 사람처럼. 사람들은 흔히 균형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대칭을 ‘무서운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해 여름은 기록적인 더위였다. 아스팔트 위의 그림자는 모두 흐릿했고, 사람들의 말투는 짧아졌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잃고 있었고, 무언가를 다시 말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여름의 흐름을, 매일 하나의 사과로 가로질렀다. 붉은 것, 차가운 것, 잘게 부서지는 것. 그 모든 속성을 이해한 사람처럼, 혹은 그 속성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어느 날 사과가 썩기 시작했다. 사과 바닥 쪽, 아주 작은 부분이 물렁해졌고, 그 부위에서 기포 같은 것이 올라왔다. 그녀는 사과를 집어 들고 가만히 바라보더니, 손톱으로 그 부위를 도려냈다. 아주 조심스럽고, 정직하게, 오로지 썩은 부위만을 도려낸 뒤, 다시 혀끝을 갖다 댔다. 마치 상처 난 사물과 화해하는 사람처럼, 혹은 회복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사과는 다시 과육을 드러냈고, 그녀는 그 나머지를 천천히 다 먹었다. 마지막까지 껍질을 남기지 않았다. 버려진 것은 오로지 작고 둥근 씨앗 다섯 개뿐이었다.



그녀는 잔인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감정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고, 무언가를 판단할 때 오래 망설이지도 않았다. 결정의 순간은 사과를 씹는 그 짧은 리듬처럼 단호했고, 누구도 그 결정을 바꾸게 만들 수 없었다. 그녀는 ‘후회’라는 단어를 혐오했다. 그것은 과일을 삼킨 뒤에야 잘못된 선택을 인지하는 것과 같다고, 이미 늦은 감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사과를 입에 넣기 전에 그 단단함을 손끝으로 측정했고, 과육의 밀도에 따라 씹는 방식을 달리했다.



어떤 날은 사과가 너무 물러서, 처음 한 입만 먹고 내려놓았다. 그건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말 한 문장을 남겨두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런 문장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문장이든 과일이든, 한 번 맛이 변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과를 먹던 그 습관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누군가는 그걸 미련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고집이라 말했지만, 그 어느 쪽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일종의 저항이었다.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흘러내리는 계절 속에서, 단 하나의 동작이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시도. 입술과 이 사이를 지나가는 과육의 결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부터 조금씩 시간을 밀어내는 일. 그런 일을, 사람들은 종종 ‘버틴다’고 표현하곤 했다.



어떤 여름은 너무 길었고, 어떤 여름은 거의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모두를 견뎠다. 다만 어떤 여름엔 사과가 너무 빨리 무르기도 했고, 어떤 여름엔 단맛이 전혀 올라오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사과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애착도 아니었고, 중독도 아니었다. 시간과의 약속이었다. 붉은 껍질 아래 무엇이 남아 있든, 그 안쪽으로 한 번쯤 들어가 보는 일이었다.



사과를 다 먹고 난 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오의 열기가 벽을 타고 흐르던 오후 세 시. 땀으로 젖은 뒷목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훑고, 눈을 감은 채 한숨을 쉬는 것으로 그 의식은 끝났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천천히 눈썹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어떤 감정의 잔여 같기도 하고, 설명되지 않는 문장 같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감정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기억은 종종 냄새로 돌아오고, 때로는 소리로 돌아온다. 그녀의 기억은 언제나 맛으로 돌아왔다. 씹히는 순간 흘러나오는 즙의 농도, 혀끝에서 감지되는 미세한 떫음, 껍질과 과육 사이의 경계. 그녀는 그 미세한 감각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은 잃은 것을 기억하지만, 그녀는 감각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잃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방식. 그런 방식은 차갑고 정교했다.



여름은 끝나는 법을 모르는 계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것이 과잉이고, 모든 것이 무르익고, 모든 것이 곧 썩기 직전의 상태로 이끌리는 시기. 그녀는 그런 계절을 사과 하나로 버텼다.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혹은 어디론가 떠나며 견뎌냈지만, 그녀는 늘 제자리에 앉아 사과를 베어 물었다. 사과가 사라질 때까지.



그날도 더위는 극에 달했고, 거리엔 개 짖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냈다. 껍질 위로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언제나처럼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혀끝을 먼저 대고, 작은 입술을 열었다. 과육은 여전히 단단했고, 침묵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 모든 여름의 반복, 그 모든 고요의 시작. 붉고 단단한 사과 하나로부터.



오로지 당도를 더 해 갈 사과만 생각했다.


나는.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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