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지 않으려 애쓴 모든 감정들에 대하여
지하철 3호선 끝자락에서 내려다보던 한강은 늘 넘치지 못한 물처럼 잔잔했고, 어딘가 꾸역꾸역 참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한 번쯤은 떠올리게 된다. 흐르긴 흐르되, 어느 선까지만. 미끄러지듯 물러나되, 결국 그 자리에서 도는. 물이 넘치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물이 모자라면 또 갈증을 토로한다. 정확한 선에서 흘러주는 것, 넘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도시가 강에게 요구하는 예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은 경계의 바깥을 침범하고, 지나치게 슬픈 것은 견딜 수 없는 울음을 낳는다. 지나치게 밝은 빛은 시력을 잃게 하고, 지나치게 조용한 정적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모든 ‘지나치게’는 언제나 삶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지나치게 사랑하고, 지나치게 미워하고, 지나치게 기억하는 마음들. 사람들은 말로는 그 ‘지나침’을 피하려 한다. 차분하게, 적당하게, 조율하며 살자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제대로 해낸 적은 없다. 지나친다는 건 사실 어떤 감정이 고여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오후 두 시, 반사광이 유리벽을 스치고 나무 그림자가 분절된 선처럼 인도에 떨어지던 장면이 있었다. 그날의 그림자들은 모두 지나치게 선명했다. 형체를 또렷이 갖고 있으면서도 실체가 아닌 것처럼 떠돌았다. 그 선명함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았고, 오래전 돌아선 문장의 끝에 머물러 있던 쉼표를 닮아 있었다. 분명 무언가가 끝났으나, 그 끝남이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은, 그런 잔존. 그 지나침을 지우지 못해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서 서성이게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말을 아끼는 사람은 내내 입술을 깨문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자기 손을 먼저 희생시킨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은 새벽 네 시까지 눈을 감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두고 ‘비정상’이라 부르지만, 사실 비정상의 가면을 쓴 감정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반응이 아니던가. 규범은 언제나 평균값을 제시하지만, 삶은 결코 평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사랑도, 이별도, 후회도, 다 지나친 순간들에 의해 비로소 도달되는 어떤 지점. 사람들은 그 '지나침'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넘고자 한다.
벽시계가 오후 여섯 시를 알리던 날, 누군가는 지나치게 오래 손을 흔들었다. 눈물도 웃음도 아닌 표정을 짓고, 가던 길을 서너 번쯤 뒤돌아보았다. 그 장면은 시간의 균열처럼 비현실적이었고, 손을 흔드는 동작이 점차 느려지며, 마치 무언가를 꼭 붙잡고 있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별의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 가장 조용하고 잔혹한 것은 지나치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무심한 손짓, 짧은 안녕, 차오르지 않는 눈물. 그 모든 태연함 속에 들끓는 감정들이, 차라리 울부짖는 고통보다 더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어떤 이들은 삶을 지나치게 기록하고,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삭제한다. 전자는 일기장 속 날짜를 지워버리지 못하고, 후자는 사진첩을 단숨에 비워버린다. 기억을 다루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 지우든, 남기든, 결국은 지나침을 조절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감정은 조율되지 않는다. 편집되지 않고, 미세하게 갈라지고, 불쑥 솟구친다. 지나친 감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집어삼킨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감정을 부러 무감하게 만들고, 애써 무뎌지려 한다. 하지만 감정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어떤 지점을 지나버리는 것이다.
여름은 시작되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맑은 날씨에 어딘가 쓸쓸해진다. 그 쓸쓸함은 날씨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투명한 하늘, 지나치게 뜨거운 햇빛, 지나치게 고요한 오후. 그 모든 지나침은 어떤 부재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라진 사람, 이미 수천번을 불렸던 계절, 다 닳아버린 대화들. 결국 지나친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이 한때는 충만했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지나친 것들만이 삶에 남는다. 적당했던 온도, 무던했던 날씨, 평이했던 관계는 좀처럼 기억에 붙들리지 않는다. 넘쳤던 말들, 과했던 감정들, 통제하지 못한 몸짓만이 되풀이되고,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아버린다. 지나치게 사랑했다는 말은 곧 사랑을 넘어서 존재를 흡수해 버렸다는 뜻이고, 지나치게 아팠다는 말은 이미 고통의 언어를 넘어 몸 그 자체가 고통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감정은 사람을 휘감고, 잠식한다.
길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의 웃음은 지나치게 크고, 움직임은 지나치게 자유롭다. 그 모습은 질서로 포장된 세상에 대한 작은 반항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그 지나침이 시끄럽다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지나침이 부럽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생생한 순간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 살아있다는 건 결국 넘치는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 조절되지 않은 에너지, 가다듬어지지 않은 언어, 계획되지 않은 말과 행동이 삶을 ‘살게’ 만든다.
밤이 깊어지고, 창밖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질 때, 도시의 소음마저 지나치게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고요함은 도리어 귀를 먹먹하게 만들고, 문득 어떤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게 만든다. 그 기억은 대부분 지나쳤던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견디지 못하고 흘려보낸 문장, 꺼내지 못한 말, 다 쓰지 못한 편지. 모두가 ‘지나쳤기에’ 남아 있는 것들이다. 남겨두고 떠났기에 아직도 흐르고 있는 것들.
지나치게란 말속에는 사실, 지나칠 수 없었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은 늘 한 발짝 늦게 도착하고, 결국은 넘쳐서, 어디론가 새어버린다. 모든 것이 넘치는 순간, 삶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들이,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은 애정들이, 눈물로 대신하지 못한 상실들이, 그때서야 조용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삶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지나치게 아름답고, 지나치게 쓸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지나침은 결코 실수나 오차가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가장 진실한 마음의 발현이다. 마음이 제어되지 않았다는 증거, 감정이 방향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 모든 것이 넘치는 순간, 그것은 잠시 삶이 균형을 잃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균형 없음 속에서, 삶은 가장 깊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인다. 그것은 대개 사랑이거나, 회한이거나, 부서지기 직전의 고요함이다.
그 모든 지나침은 그렇게 존재의 밀도를 증명한다. 그 밀도야말로, 말로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의 부피이다. 모두 지나쳤으므로 지나치지 않은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며, 그 지나치지 못한 것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흘러내리는 건.
맥주 거품처럼.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