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던 감정

단 한 번의 무늬가 만들어 낸

by 적적

어느 골목 어귀, 전봇대에 기대어 서성이는 두 사람의 실루엣. 어깨와 어깨가 부딪히지도 않았지만 그 사이에는 고요하고 긴장된 전류가 흐른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누군가의 시선이 먼저 흔들린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규격을 벗어난 방식으로,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이미 정해진 경로를 이탈한 감정으로. 생물학에서 말하는 돌연변이처럼.


도시의 끝자락, 오래된 영화관이 있었다. 붉은 벨벳 의자가 줄지어 놓인 그곳은 이제 더 이상 신작을 걸지 않았다. 오래전 누군가의 추억이 고스란히 쌓인 채, 먼지와 빛이 공존하는 장소가 되었다. 극장은 폐관하지 않았고, 완전히 살아있지도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제 자리를 지키는 돌연변이처럼.



사랑은 애초부터 일탈이다. 평균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은 표본이며, 통계에서 제외되어야 할 극단치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방식과 유전자, 도덕과 관습의 틀 안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마치 그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하듯 새로운 언어와 접촉 방식을 만들어낸다. 어제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 그

비약적인 전환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변화는 너무 감각적이고, 너무 불가해해서.


처음 시작된 사랑은 모두 정상적인 경로를 따른다. 시선을 주고받고, 목소리를 나누고, 어딘가에서 비슷한 박동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경로는 비틀린다. 예측할 수 없던 반응이 발생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자라나며, 기존의 문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순간들이 도착한다. 그때부터 사랑은 돌연변이의 길을 걷는다.



어떤 여자는 실수로 잘못 보낸 문자 한 통으로 사랑에 빠졌다. 어떤 남자는 계절을 잘못 읽고 준비한 꽃다발로 연인의 마음을 얻었다. 실수는 때로 신의 장난처럼, 사랑을 새로운 궤도로 이끈다. 그 궤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그들만의 것이 되었다.



어떤 사랑은 타인의 눈에 불온하게 비친다. 계급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나이 차이가 너무 크거나, 혹은 성별의 질서조차 무시한 형태로 나타날 때. 그런 사랑은 종종 사회적 교란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모든 진화는 비정상에서 시작되었다. 자연은 건강하고 강한 것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비틀린 가지에서 핀 꽃이 더 오래 향기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불완전함에서 시작된 감정이 더 절박하고, 더 격렬하며, 더 기억에 남는다.



감정은 문법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에 이름을 붙이고, 형태를 구분하고, 방향을 정하려 든다. 하지만 정형화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A가 B를 사랑한다고 해서, C가 D를 사랑하는 방식까지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유일하다. 돌연변이는 유전적 오류가 아니라, 자연이 준비한 또 다른 가능성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 가능성을 선택한다. 의식하지 못한 채, 낯선 쪽으로 미끄러지듯이.


돌연변이는 선택이 아니라, 발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스를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다만 관찰될 뿐이다. 사랑이 비슷한 궤도를 그리다가 어느 날 돌연히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것. 그것을 붙잡는 일은 어쩌면 사랑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예정되지 않은 감정에 머무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삶의 한 단면을, 혹은 전부를 걸 수 있는 것.



극장의 오래된 의자처럼, 사랑도 흔들리는 구조를 가진다. 그 불안정한 진동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고, 그 흔들림 속에서 새로운 안정을 찾아간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은 신화다. 사랑은 흔들리기에 존재하고, 흔들리기에 살아있다.



기억 속의 첫사랑은 늘 예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일기장에도 써내지 못한 이름, 친구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상황, 설명할 수 없는 끌림. 그것은 어떤 논리나 구조로도 해명되지 않는 욕망의 첫 형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의 등 뒤로부터, 옆얼굴로부터, 비 오는 날의 뒷모습으로부터 서서히 침투해 온다. 돌연변이처럼, 조용하지만 치명적으로.



돌연변이라는 말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함께 들어 있다. 익숙한 구조를 해체하고 낯선 질서를 받아들이는 일은 위험하지만, 그 위험 속에서만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그것은 존재의 깊은 부분과 맞닿아 있으며, 감정의 가장 내밀한 표면을 관통한다. 돌연변이는 감정이 이탈하는 지점이 아니라, 감정이 가장 충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모든 사랑이 그곳을 지나온다. 그리고 그곳을 지난 사랑만이 오래 남는다. 사랑은 진화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돌연변이하지 않으면 복제된다. 특별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사랑은 때때로 언어를 파괴한다. 말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감정. 그래서 어떤 사랑은 침묵을 선택한다. 한참을 마주 보고 있다가 끝내 아무 말 없이 헤어지는 밤이 있다. 그 밤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어 밖에 머무는 감정은, 더욱 또렷한 잔상으로 남는다. 유전자의 돌연변이처럼, 그 사랑은 말이 되지 않기에 더욱 선명하다.


누군가는 그 감정을 위험이라 부른다. 통제 불가능하고, 불확실하며, 종종 파괴적이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변화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했다. 도심 속 무채색의 일상에 갑자기 침입하는 감정. 그것은 삶을 뒤엎는 혼돈이기도 하고, 무기력한 존재에게 부여된 새로운 정체성이기도 하다. 돌연변이란 본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방식이기도 하다. 사랑도 그렇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사람은 사랑을 택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빨리 타오르고, 너무 쉽게 꺼진다. 그러나 그것이 덜 진실하거나, 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찰나에 발생한 감정도 진화의 과정이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진화를 완성하지 못한 돌연변이조차 생태계의 서사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그 지속성과 무관하게 특별하다.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은 예측을 거부한다. 기존의 삶을 따르던 궤도에서 한 치 비틀어졌을 때 발생하는 섬광. 규칙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불협화음. 하지만 그 불협화음이 없었다면, 세계는 지금의 형태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시켰듯, 어떤 사랑은 인간을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든다. 더 약해지거나, 더 단단해지거나, 더 투명해지는 방식으로.



사랑의 문장은 늘 비문이다.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고, 시간과 인과가 어긋나 있으며, 수미상관이 없다. 그렇기에 독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떤 경우엔 끝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언어가 아니라 감각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예고 없이 피부에 닿고, 눈빛에 머물고, 손끝에서 전해진다. 그 감각은 기존의 해석을 무력화시킨다. 마치 기존의 유전법칙을 거스르는 돌연변이처럼.



기억되는 모든 사랑은 하나의 유전자처럼, 단 한 번의 변이로 존재한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다시는 닿지 못할 그 한 번의 무늬로. 그 무늬는 문장으로 옮길 수 없고, 사진으로 남길 수 없으며, 다만 삶의 결로 배어든다. 어떤 이는 그 무늬를 상처라 부르고, 어떤 이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돌연변이, 그 끝에서 사랑은 완성된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비가 내린다. 사랑은 그 순간의 수증기처럼 피어오른다.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게. 하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고, 서로의 온도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랑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삶의 패턴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돌연변이처럼,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고, 반드시 변화시키는.



그리고 그런 사랑이.....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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