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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흘러드는 타인.

by 적적

혈관을 찾는 마음으로..



하얀 침대에 누운 몸, 눈을 감은 얼굴, 흘러내리는 액체, 그리고 그 액체를 지탱하는 얇은 관. 바늘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투명한 의식.


그것은 시간의 혈관 속으로 흘러드는 또 하나의 생명, 즉 타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체액으로 변해 들어오는 순간이다. 수혈은 피의 교환이 아니라 기억의 이식이며, 정서의 이주다. 바늘은 살을 찌르지만, 실은 그보다 깊은 곳, 마음의 가장 어두운 정맥을 뚫고 들어간다.



투명하거나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동안, 세상은 놀랍도록 느려진다. 방 안의 시계가 초침을 옮길 때마다 심장은 마치 낯선 리듬을 강제로 배워야 하는 피아니스트처럼 당혹스러운 속도로 뛰기 시작한다. 피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울음, 사라진 계절의 공기, 무심히 흘려보낸 말들의 잔해, 아직 누군가에게 도착하지 못한 편지까지, 온갖 정념과 흔적을 함께 운반한다. 누군가의 피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리적 결핍을 보충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낯선 사람의 기억을 자기 몸의 은밀한 창고에 보관하는 일이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처와 기쁨을 불시에 흡수하는 사건이다.



마음은 혈액처럼 옮겨지지 않고, 한 사람의 세계는 타인의 몸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혈이라는 은유는 그 믿음을 비틀어 놓는다. 마음은 언제나 체액과 같은 방식으로 흘러 다니며, 예기치 못한 경로로 스며든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새벽에 날아든 짧은 문자, 버스 안에서 잠깐 마주친 눈빛 같은 것들이 사실은 작은 수혈의 관들이다. 그것들은 피부를 찌르지 않고도 혈류를 바꾸어 놓는다.



같은 혈액형끼리만 피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수혈은 언제나 이 규칙을 배반한다. 전혀 호환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오히려 가장 깊이 스며들고, 불가해한 차이가 몸속에서 새로운 합성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사랑이란 호환되지 않는 마음을 무모하게 이식받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낯선 항체들이 몸속에서 충돌하고, 때로는 열과 통증을 일으키며, 오래도록 저항을 남긴다. 그 혼란 속에서만 새로운 생리,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진다.



수혈받는 동안의 몸은 무방비하다. 팔을 움직일 수도 없고, 바늘을 뽑을 수도 없다. 오직 흐르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만 남아 있다. 그 시간은 수동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능동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연장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마음 역시 그렇다.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이 상처든 위로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혈은 시작된다. 받아들인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이식된 피는 곧 몸의 일부가 된다. 처음에는 이물감으로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경계는 지워지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로 변한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생각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타인의 마음에서 흘러들어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방식으로 웃고, 누군가의 말투로 슬퍼하고, 누군가의 리듬으로 걷는다. 수혈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은밀히 변형시킨다.



그 변형은 위태롭다. 수혈이 실패하면 몸은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열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지며, 결국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식을 파괴한다. 마음도 타인의 감정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흘러들어오면,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능이 반발을 일으킨다. 무심한 거절, 차가운 침묵, 도망치듯 사라지는 발걸음은 일종의 면역 반응이다. 그 거부의 과정조차 이미 수혈의 일부다. 몸이 흔적을 지우듯, 마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타인의 정념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수혈이 끝나는 순간, 바늘은 뽑히고 흐름은 멈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몸속의 액체는 오랫동안 순환한다. 이미 섞여버린 피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일 수 없다. 변화는 미세하고 느리게 다가오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어떤 사랑도, 어떤 만남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순간의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그 여파는 오랫동안 피처럼 순환하며 새로운 몸을 만들어낸다.



결국 마음의 수혈은 생존을 위한 행위이자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는 의식이다. 타인의 피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순간처럼, 타인의 마음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수혈받는 동안의 고요와 긴장, 그 미묘한 경계 위에서 인간은 타인에게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에 의해 변형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병실의 불빛 아래, 떨어지는 액체의 그림자가 천천히 벽에 스며드는 동안, 사람은 비로소 알게 된다. 생존이란 독립이 아니라 교환이라는 것을. 마음이란 고유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인의 체액을 닮아 변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수혈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관은 연결된 채 남아 있다는 것을.



그 연결은 단순한 의학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서로의 피와 마음을 끊임없이 수혈받으면서, 동시에 거부하고 또 받아들이면서,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간다. 결국 그 변형이야말로 삶의 증거다.



사람은 스스로를 하나의 단단한 존재라 믿지만, 실은 수많은 타인의 흔적이 흘러들어와 겹겹이 퇴적된 퇴적층 같은 존재다. 숨결 속에는 이미 오래전 누군가의 언어가 머물고, 손끝의 떨림 속에는 사라진 얼굴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 그 흔적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아는 결코 이 모양을 하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혈은 단순한 생리적 사건이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빌려 몸속에 새기는 의식이다. 인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흘러 다니는 파편들이 잠시 머물러 조율된 불안정한 화음에 가깝다.


그 불안정은 삶을 위태롭게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빛을 품게 한다. 낯선 마음이 흘러들어올 때마다 균열은 생기고, 그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이 이전에 보지 못한 색을 만들어낸다. 거부 반응이 남기는 발열과 통증조차 또 다른 기억의 문양이 되어 몸에 새겨진다. 그렇게 수혈은 인간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며, 잃어버린 것과 새로 얻은 것이 동시에 뒤섞인 정체성을 남긴다.



삶은 결국 수많은 수혈의 흔적 위에 세워진다. 타인의 마음은 어떤 날에는 몸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어떤 날에는 무너뜨리는 비수가 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정 속에서 인간은 자아라는 신화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존재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자아란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타인의 피와 기억이 잠시 머물다 남긴 흔적들의 합주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수혈이 멈추는 순간, 인간은 알게 된다. 지금 이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수많은 타인의 계절과 숨결, 미처 닿지 못한 고백과 오래전 흘린 눈물들이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누구도 자신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 다만 잠시 빌려 쓰고, 잠시 견디며, 잠시 증명할 뿐이다. 삶이란 이 잠시의 증거들이 이어 붙여 만든 연약한 연속이며, 그 연속은 비록 쉽게 꺼지지만.




황혼 같은 아름다움을 남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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