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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그 스노우 볼

자유, 구속이 뒤섞인 우주

by 적적

유리 구 속에서 흩날리는 것은 단순한 눈송이가 아니다. 그것은 빗방울이 기억을 흉내 내며 굳어진 조각, 시간이 응고된 채 흩날리는 투명한 파편들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계절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진실은 그보다 훨씬 간단하다. 단 한 번의 손목의 흔들림, 무심한 회전, 혹은 장식 위로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는 순간의 사소한 동작. 그 모든 것이 내부의 폭설과 호우를 불러왔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창문 밖의 계절도, 그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오직 구체 내부의 작은 집과 나무, 인형 같은 인물들이 그 공간의 전부다. 구슬 안쪽에서는 바깥을 볼 수 없지만, 바깥은 언제나 안쪽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그 시선에는 감정이 없다. 장난감을 쥔 손에 있는 것은 호기심도, 연민도, 심지어 관심조차 아니다. 단지 무심한 반복, 한순간의 장난, 습관처럼 이뤄지는 움직임뿐이다.


작은 집의 불빛은 언제나 같은 밝기를 유지하고, 나무의 그림자는 영원히 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인물들은 걸음을 멈춘 채 포즈를 유지하며, 흐르는 강물은 결코 바다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 정지된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것은 빗방울 모양의 조각들이다. 그것들은 손길이 닿을 때마다 흩날리고, 중력을 따라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듯 보이는 존재가 바로 그것들이다.



빗방울은 자유롭게 춤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궤적을 반복한다. 아무리 불규칙해 보일지라도 일정한 밀도, 중력, 점성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인간이 자유를 향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도 결국 사회와 제도의 구속, 보이지 않는 질서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과 닮았다.



볼을 바라보는 외부의 눈은 그 사실을 안다. 내부의 자유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나 내부에 있는 존재들은 그것을 모른다. 가끔 갑작스러운 폭우 같은 빗방울의 소용돌이가 시작되면 그것을 운명의 개입으로 여긴다. 누군가는 축복으로, 또 다른 이는 저주로 해석한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손목의 무심한 회전일 뿐이다. 삶의 격변이란 언제나 그렇게 무의미한 외부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내부는 여전히 같은 계절을 반복한다. 멈춘 눈송이는 녹지 않고, 불빛은 꺼지지 않으며, 나무의 잎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의 존재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멈춘 시간이야말로 영원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 착각이야말로 이 세계가 유지되는 비밀이다.



바깥에서 내려다보면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안쪽에서는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조차 세계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된다. 한순간의 폭우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다시 찾아온 고요가 안정을 제공한다. 그것은 현실보다 더 서정적이고, 실제의 계절보다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제한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연극이기 때문이다.



유리벽은 투명하지만 절대 뚫을 수 없는 경계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고, 외치려 해도 들리지 않는다. 빗방울은 아무리 흔들려도 볼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듯, 내부의 존재들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인간이 평생을 살아도 세계의 근본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도 손대지 않는 시간이 찾아오면 그때 내부의 존재들은 긴 정적 속에 잠긴다. 빗방울은 흩날리지 않고, 모든 풍경은 고요하다. 그것은 축복이자 저주다. 폭우의 소용돌이가 없으니 평온하지만, 동시에 삶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한다. 변화 없는 삶 속에서 영원은 무의미한 반복이다.


바깥 세계의 누군가가 다시금 볼을 흔드는 순간, 그 정적은 깨진다. 내부의 존재들은 또다시 그것을 운명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진실은 여전히 같다. 그 모든 격변은 단순한 외부의 움직임에 불과하다.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빗방울의 춤과 닮아 있고,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누군가의 무심한 손짓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닫힌 공간이 만들어낸 환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환영에 매혹된다. 제한된 아름다움이야말로 더욱 강렬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은유, 자유의 기만, 영원의 흉내를 담은 작은 우주다. 유리벽 너머로 바라볼 때, 그 안에서 흩날리는 빗방울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과 우연, 자유와 구속, 아름다움과 기만이 뒤섞인 존재의 파편이다.



흩날리는 순간, 마치 세상 전체가 한순간 흔들린 듯 보인다. 바깥의 손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단지 장난처럼 한 번 흔들었을 뿐인데, 내부의 존재들은 그것을 삶 전체의 사건으로 기억한다. 그 간극 속에서 세계는 유지된다. 바깥의 무심과 안쪽의 서정 사이에서, 빗방울은 오늘도 흩날린다.



한쪽에서는 무심한 손길이 삶의 모든 격변을 지배하고, 다른 쪽에서는 닫힌 세계 속의 존재들이 그 격변을 운명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간극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비밀스러운 균열이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면서도, 동시에 구속된 질서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빗방울의 흩날림이 현실보다 더 서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제한된 조건이 우리를 속이면서도 위로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투명한 벽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존재의 비극이라면, 그 벽 너머의 무심한 시선을 알지 못한 채 춤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존재의 은총일지도 모른다. 빗방울은 오늘도 흩날리고, 그 흩날림 속에서 세계는 잠시나마 영원을 흉내 낸다. 그리고 바로 그 흉내 속에서만.



존재는 빛을 발견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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