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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의 문법

계절의 초대장.

by 적적


가을은 언제나 불시에 다가온다. 알람을 맞춰둔 것도 아닌데, 새벽 공기가 먼저 바뀐다. 같은 방, 같은 시각인데, 침대 위 공기만은 낯설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사소한 소름을 불러내는 순간, 이불장의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거운 직물의 존재가 불쑥 떠오른다. 그러나 손은 쉽게 가지 않는다. 가을 이불을 꺼내는 일은 단순히 몸을 덮을 천을 고르는 게 아니라, 계절의 시간표에 항복하는 일이며, 체념을 수반한 의식이기도 하다.


여름 이불은 공기와 다르지 않다. 얇디얇아 그 위에서 몸은 거의 벌거벗다시피 놓인다. 몸과 공기 사이에 남겨진 최소한의 경계일 뿐이다. 얇은 천 아래에서는 꿈조차 가볍다. 흩날리다 사라지는 모래처럼 금세 흩어지고,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가을 이불은 무게가 있다. 직물의 무게는 단순히 체온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층위를 누른다. 꿈은 더 깊어지고, 그 안의 장면은 오래 머문다. 이불이 바뀌는 순간, 인간의 무의식은 다른 결을 품는다.



꺼내 든 이불에는 묵은 냄새가 있다. 햇볕에 바래고 세제에 씻겼지만 여전히 직물의 틈새에는 지난 계절의 체온이 남아 있다. 그 냄새는 단순히 직물의 것이 아니라, 지난가을의 외로움, 지난겨울의 긴장, 지난봄의 고독이 겹겹이 포개져 나온다. 이불은 말 없는 연대기다. 체온과 비밀을 기록한다. 꺼내는 순간, 오래 봉인된 기록이 한꺼번에 방 안에 풀린다.



사람은 늘 꺼내기를 늦춘다. “아직 괜찮다”라는 말로 며칠을 버티고, “오늘 밤은 춥지 않겠지”라는 핑계로 이불장을 닫는다. 그러나 새벽의 몸은 속이지 못한다. 얇은 여름 이불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차오를 때, 결국 체념처럼 무거운 이불을 꺼내게 된다. 가을 이불은 인간의 고집이 아니라 공기의 칼날이 불러내는 물건이다.


꺼낸 이불을 침대 위에 펼쳐놓는 순간, 방은 즉시 바뀐다. 공기조차 달라진다. 그 무게는 단순히 직물의 것이 아니라, 방 안의 기억을 눌러두는 압력처럼 작동한다. 몸 위로 내려앉은 중력은 곧바로 감각을 전환한다. 여름밤의 꿈은 산란하고 얕았다면, 가을밤의 꿈은 눅눅하고 진득하다. 꿈속 장면은 쉽게 흩어지지 않고, 아침에도 잔향처럼 남아 있다. 가을 이불은 무의식의 문을 조금 더 깊게 닫는다.



이불의 결은 살아 있는 피부처럼 느껴진다. 손끝으로 쓸어내리면 직물의 기복이 은밀하게 파동을 일으킨다. 여름 이불이 단순한 공기였다면, 가을 이불은 몸과 몸 사이의 제3의 피부다. 혼자 덮으면 요새처럼 단단하게 몸을 감싸지만, 누군가와 함께 덮으면 이불은 관계의 무게로 바뀐다.



그 무게 속에서 체온의 균열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쪽은 뜨겁고, 한쪽은 식어간다. 서로 다른 체온이 충돌하며 이불속 공기를 흔든다. 가까워지면 체온은 겹쳐지지만, 멀어지면 냉기는 거짓말처럼 빈틈을 찾아든다. 이불은 은밀한 거울이다. 낮에는 애써 숨길 수 있는 간극이, 밤이 되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은 살과 살 사이에 놓이는 가장 정직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불 아래에서 체온은 은밀히 합쳐지고, 그 합쳐짐은 때로는 쾌락으로, 때로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불은 체온을 가두는 동시에, 두 몸의 진심을 폭로한다. 사랑은 이불속에서 드러난다. 몸의 언어는 숨길 수 없다. 차갑게 굳은 손끝, 혹은 억지로 가까워지는 허리의 곡선. 이불은 그 모든 것을 기록한다.



겨울 이불은 생존을 보장하지만, 가을 이불은 망설임이다. 그것은 아직 완전히 차갑지도, 아직 완전히 따뜻하지도 않다. 경계와 유예의 계절. 덮는 순간, 인간은 동시에 보호받고 노출된다. 가을 이불은 애매한 감정과 닮았다. 끝나가는 사랑의 마지막 체온, 시작된 사랑의 서툰 떨림. 가을 이불속의 체온은 늘 명확하지 않다.



이불은 가장 은밀한 순간을 보관한다. 흐느낌, 신음, 웃음,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침묵까지. 이불은 모든 것을 덮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충직한 증인이자, 가장 잔혹한 기록자다. 새로운 계절의 이불을 꺼낸다는 것은, 새로운 기록의 장면을 열겠다는 의미다.



가을은 창밖의 낙엽이나 하늘의 낮아진 각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외부의 증거일 뿐이다. 진짜 가을은 방 안에서, 침대 위에서, 이불속에서 시작된다. 몸과 체온이 직접 계절을 확인한다. 이불은 계절의 가장 은밀한 초대장이다.



결국 이불은 꺼내야 한다. 그러나 늘 늦다. 꺼내는 순간, 여름은 완전히 끝나고, 여름의 자유와 무심함은 사라진다. 대신 깊고 무거운 잠, 차갑고 날 선 새벽, 그리고 낯선 기억의 회귀가 시작된다. 이불은 직물이 아니라 계절의 문지기다.



가을 이불은 한 장의 천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다. 손끝에 남은 직물의 결, 몸 위에 얹힌 무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체온의 간극, 꿈의 깊이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다. 꺼내는 순간 방 안의 공기는 더 이상 여름이 아니며, 인간의 무의식조차 계절에 맞게 조율된다.


가을은 이불로 완성된다. 창밖의 단풍이 아니라, 이불속의 체온이야말로 계절의 진짜 시간표다. 한 장의 이불이 인간의 하루를 바꾸고, 관계의 거리를 바꾸며, 무의식의 깊이를 바꾼다. 그렇기에 가을 이불을 꺼내야 한다. 그러나 그 행위는 언제나 오래 망설인 끝에야 도달하는.



늦은 고백 같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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