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의 자리를 기억하는...
가을은 사람의 얼굴을 침묵 속에서 천천히 갉아먹는다. 누구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지만, 거울 앞에 서는 순간 알게 된다. 피부에 스민 공기, 낮게 깔린 햇빛, 지나가는 바람이 한 사람의 표정을 점점 비워내듯 깎아내린다는 것을. 어느 해 가을이 특히 그렇다. 지나치게 긴 여름이 모든 에너지를 끌어당겨간 뒤, 몸은 제 속도를 잃고 버려진 껍질처럼 남는다. 얼굴 위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눈두덩이다. 밤마다 짙어지는 어둠이 그곳에 웅덩이처럼 고이고, 아침이면 더 깊게 파인 자국이 확인된다. 눈두덩이의 꺼짐은 계절이 인체에 새기는 가장 은밀한 서명이다.
사람의 피로는 다른 곳보다 눈두덩이에 가장 먼저 드러난다. 웃음을 억지로 지어도, 옷을 아무리 단정하게 걸쳐도 그곳만은 속이지 못한다. 눈빛의 생기는 퇴색하고, 가을의 건조함은 눈 주위의 혈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누군가 밤새도록 누른 듯 깊게 꺼진 눈두덩이는, 하루의 무게를 이미 다 감당한 얼굴처럼 만든다. 그래서 가을은, 한 해 동안의 모든 긴장을 이 계절에 풀어놓고 있다는 듯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든다.
도시의 거리는 오후가 되면 금빛에 가까운 빛으로 가득하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못한다. 땅거미가 내리는 순간, 사람들의 얼굴은 더 빠르게 늙는다. 가을의 저녁에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부서져 있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눈두덩이는 서로 닮아 있다. 각자의 삶과 사연이 달라도, 그들의 눈꺼풀은 똑같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고, 눈두덩이는 그림자처럼 파여 있다. 그것은 피곤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 오래 감춰온 진실이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눈두덩이가 꺼지는 것은 단순한 신체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와 기억의 잔여물이 얼굴 위에 새겨진 흔적이다. 사랑했던 시간이 지나가면, 웃으며 바라보던 눈빛은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공허가 고인다. 미워하던 기억조차 시간이 지나면 색을 잃고, 그 무게는 얼굴 위로 내려앉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뜬 눈으로 새운 밤, 그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눈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눈두덩이가 움푹 꺼지는 것은, 그 기다림이 얼굴의 구조를 바꿔놓았다는 증거다.
가을의 바람은 유난히 오래된 기억을 불러낸다. 한때는 생생했던 웃음소리, 계절과 함께 떠나간 목소리, 아무도 모르게 남겨둔 편지. 이 모든 것들은 낮에는 잘 숨어 있다가, 해가 기울면 눈 주변으로 몰려든다. 피곤이 아니라, 기억이 눈두덩이를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은 얼굴의 지형을 바꾼다. 눈 주위의 움푹 꺼진 음영은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를 말해준다. 거짓말로 가려지지 않는, 가장 정직한 기록이다.
그녀의 어깨 위로 부드러운 그림자가 흘러내렸다. 빛은 눈두덩이를 훑고 지나가면서, 그곳의 움푹 꺼진 음영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냈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호흡은 여전히 깊었다. 방금 전의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 욕망이 소진되고 난 뒤 남는 공허가 눈 주변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것은 지친 흔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관능적인 기록이었다.
손끝이 그녀의 이마에서 눈가로 천천히 내려갔다. 매끈하던 피부는 눈두덩이에 이르러 미묘하게 움푹 들어갔다. 그 패임은 단순한 피곤이 아니라, 욕망이 스쳐간 자리에 남은 웅덩이 같았다. 낮은 불빛이 그곳을 감싸자, 그녀의 눈두덩이는 마치 오래된 비밀처럼 더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가만히 눈을 뜨자, 눈동자는 여전히 맑았지만 그 주변의 그림자가 모든 것을 배신했다. 아직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와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의 잔해가 동시에 거기 있었다. 그 꺼진 자리는 방금 전의 뜨거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욕망의 끝은 눈동자가 아니라 눈두덩이에 남았다.
침묵 속에서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리자, 시트가 바스락거렸다. 그 미세한 소리조차 방 안에선 크게 울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두덩이는 더 짙은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그 부분은, 오히려 몸의 다른 어떤 부위보다도 더 은밀해 보였다. 가슴보다, 입술보다, 허벅지보다도. 왜냐하면 거기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와 고독, 그리고 사랑의 사체가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호흡은 아직 뜨거웠지만, 눈 주변의 그림자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눈두덩이 위의 음영을 따라가면, 마치 한 사람의 지난 시간을 더듬는 듯했다. 그곳에는 모든 밤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긴장을 견뎌냈는지, 얼마나 몸을 주고받았는지가 그대로 패여 있었다.
그녀가 눈을 감을 때마다 속눈썹 아래의 그림자는 더욱 길어졌다. 눈꺼풀은 얇게 떨렸고, 그 움직임은 방금 전의 잔향처럼 은밀하게 흔들렸다. 그 작은 떨림 속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욕망의 파편이 숨어 있었다. 눈두덩이는 더 깊게 패이고, 어쩐지 성적인 긴장처럼 보였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이불을 흔들었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리칼이 흘러내리며 눈두덩이를 살짝 가렸다. 하지만 손끝으로 그 머리칼을 젖히자, 다시 그 음영이 드러났다. 그곳은 이미 침묵의 중심이자, 욕망이 끝난 뒤의 종착지였다.
가을은 눈을 더욱 솔직하게 만든다. 여름에는 강렬한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에 눈물이 고여 흐려지지만, 가을에는 그 어떤 방해도 없다. 눈동자는 날카롭게 드러나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꺼진 눈두덩이는 도망치지 못한 채 모든 감정을 드러낸다. 이 계절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보다 눈 주변의 공허를 먼저 읽는다. "괜찮다"는 대답 뒤에, 눈두덩이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아본다.
어떤 사람은 눈두덩이의 꺼짐을 노화라 말하고, 어떤 이는 피로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세월이나 생활습관이 남긴 흔적이 아니다. 그곳에는 살아온 계절의 깊이가 고인다. 봄에 감당하지 못한 설렘, 여름의 지나친 소란, 가을의 사유, 겨울의 고독이 모두 차례로 쌓여 있다. 그래서 눈두덩이는 가장 정직한 계절의 얼굴이다. 다른 어디보다 가을에 더욱 두드러지는 이유는, 이 계절이 결산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낙엽이 흩날릴 때마다 사람들은 한 해 동안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 묻는다. 그 질문은 말로 꺼내지 않아도 이미 얼굴 위에 답을 쓰고 있다. 눈두덩이가 꺼진 얼굴은 단순히 지친 얼굴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감당해 낸 얼굴이다. 어쩌면 그것은 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진실일 수도 있다. 꾸며낸 웃음이나 화려한 옷보다, 푹 꺼진 눈두덩이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가을의 저녁, 불빛이 켜진 카페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모두 눈 주변이 어두워져 있다. 각자의 삶을 잠시 내려놓은 채 마주 앉아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들이 눈에 고여 있다. 피곤이 아니라, 사랑의 실패와 미련, 아직 끝나지 않은 기다림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눈두덩이가 꺼진 얼굴들은 서로 닮아가면서도, 동시에 전혀 닮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그 그림자 속에는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가을은 결국 눈두덩이의 계절이다. 낮게 깔린 햇빛과 차가운 바람은 사람들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고, 그 침묵은 눈 위에 흔적을 남긴다. 눈두덩이가 푹 꺼진 얼굴은, 지나온 계절을 온몸으로 견뎌낸 자의 얼굴이다. 그것은 지쳐 무너진 흔적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표식이다. 가을이 끝나면 다시 다른 계절이 오겠지만, 눈두덩이에 남은 그 음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 계절에도, 또 그다음에도 이어질 것이다. 마치 시간이 얼굴에 새겨놓은 문신처럼.
눈두덩이가 푹 꺼지도록 가을을 살아낸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생애가 그만큼 더 깊어졌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피곤과 고독, 기억과 상실이 모두 스며든 자리에만 진짜 시간이 놓인다. 그 꺼짐이야말로 인간이 시간을 통과해 왔음을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징표다.
그렇게 얼굴 위에 사유의 음영을 새기며 지나간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