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씹는 상상 미각을 삼키는 기억.
낙엽을 입에 넣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가을날 길모퉁이에 흩어진 낙엽을 한 장 들어 올려 혀끝에 올려놓는 상상을 하면,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감각이 있다. 그것은 음식이라기보다 종이 조각에 가까운 질감일 것이고, 혀 위에서 부서지는 순간 비로소 미각이 아닌 후각의 연장선 같은 향이 번져올 것이다.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쓴맛이 퍼지고, 흙의 흔적과 태양에 오래 구워진 공기의 잔여물이 고개를 든다. 그 맛은 아마도 기억과 직결된 감각일 것이다.
낙엽의 맛을 떠올리는 순간, 그것은 실제 경험이라기보다 언제나 기억 속 ‘비슷한 것’을 통해 불려온다. 종이에 입을 대었을 때의 먼지 맛, 오래된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배어드는 종이의 냄새, 어릴 적 운동장에서 넘어졌을 때 입안으로 들어온 흙의 맛. 낙엽은 그 모든 잔여의 기억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미각적 은유처럼 존재한다. 그 위태로운 혼합은 혀끝에서 잠시 머물다 곧 목구멍으로 흘러내리겠지만, 삼키는 순간 그 맛은 더 이상 미각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로 변한다.
낙엽을 먹는다는 상상은 결국 계절을 먹는 행위다. 가을을 씹는다는 것은 어떤 기묘한 통찰을 낳는다. 낙엽은 본래 잎사귀였고, 빛과 바람을 받아 생을 유지하던 기관이었다. 그것이 제 역할을 다하고 땅으로 내려앉는 순간, 더 이상 생을 유지하지 않는 껍질로 남는다. 이 껍질을 입에 넣는 일은 사라진 시간을 다시 불러내는 행위와 다름없다. 낙엽은 이미 사라진 생의 흔적이며, 동시에 흙으로 돌아가려는 예고편이다. 그 맛을 삼키는 순간 혀끝은 묻는다. ‘죽음은 이런 맛일까?’
실제로 낙엽을 씹는다고 가정하면, 혀는 먼저 질감을 기억할 것이다. 바스라지는 얇은 막은 비스킷의 바삭함과는 다르다. 그것은 건조한 종잇조각의 저항 없는 파괴에 가깝다. 이때의 소리는 귀로 들리기보다 두개골 안에서 울리는 진동으로 전달된다. 부서진 낙엽 조각은 미세한 가루가 되어 혀와 잇몸, 그리고 목구멍에 달라붙는다. 그 순간의 맛은 정확히 ‘쓸쓸하다’라는 형용사에 가까운 감각을 남긴다. 낙엽은 단맛이나 짠맛 같은 명확한 맛을 내지 않는다. 오직 공허와 비어 있음의 맛을 제공한다.
쓸쓸하다는 맛은 모호하다. 그것은 단순히 맛의 결핍이 아니다. 낙엽은 혀끝에서 오래된 흙냄새와 불에 그을린 듯한 잔향을 동시에 전한다. 여기에는 불완전한 향이 숨어 있다. 바람에 마찰된 먼지, 비에 젖었다가 말라버린 수분의 흔적, 그리고 태양에 그을린 표면의 고소함. 마치 한 번도 정식으로 조리되지 않았지만, 세월이라는 조리 과정 속에서 은근한 향을 띠게 된 것이다. 이 향은 곧바로 뇌 속에 저장된 ‘가을’이라는 단어와 결합한다. 그렇기에 낙엽을 먹는 상상은 언제나 계절 전체를 먹는 상상과 이어진다.
낙엽을 씹는다는 행위는 문득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계절이 음식이라면, 봄은 어떤 맛일까. 아마도 어린 잎의 신선한 풋내와 같은, 약간의 떫음이 남은 맛일 것이다. 여름은 태양에 달궈진 과육의 과즙처럼 터져 나오는 단맛과, 피부에 맺힌 땀방울의 짠맛이 섞인 복합적인 맛일 것이다. 겨울은 차갑고 건조한 공기의 무미함, 혹은 얼음을 씹을 때의 날카로운 시린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맛은 필연적으로 낙엽일 수밖에 없다. 쓸쓸하지만 은근한 향, 아무 맛도 없는 듯하다가도 끝내 잊히지 않는 여운.
낙엽의 맛은 또한 삶의 어떤 국면과 닮아 있다. 모든 열정을 소진한 후 남는 껍질, 모든 열매가 수확된 뒤의 빈 가지, 한때 불타올랐으나 이제는 재로 남은 불길. 그 잔해를 씹는 일은 무력감을 주지만 동시에 이상한 평온을 안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사물은 언제나 확실하다. 낙엽은 이미 끝을 맞이했기에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다. 그 확실성은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혀끝에 남는 가루 같은 맛은, 삶의 파편들이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확실한 운명을 일깨운다.
어릴 적 누군가는 장난삼아 낙엽을 입에 넣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음식으로 인식하기는 어렵다. 음식은 조리되고 준비된 대상이지만, 낙엽은 아무도 요리하지 않은 재료다. 요리되지 않은 재료의 맛은 원시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문명을 통해 피하고자 했던 맛, 즉 자연 그 자체의 미각이다. 낙엽의 맛을 상상하는 것은 곧 문명 이전의 맛, 가공되지 않은 세계의 원형을 떠올리는 일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낙엽을 먹는다는 상상은 결국 존재의 본질을 씹는 상상에 가깝다. 생의 절정이 지나고, 더 이상 소용 없는 껍질로 떨어진 것. 그러나 그 껍질마저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순환. 낙엽의 맛은 단순한 건조함이 아니라, 사라짐의 완벽한 서술이다. 그것은 미각의 차원에서 들려오는 무언의 철학이다.
한 장의 낙엽을 입에 넣는 행위는 그래서 질문으로 남는다. 먹어본 적이 있나요? 이 질문은 단순히 경험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특정한 국면을 통과해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은유적 질문이다. 낙엽을 먹는다는 것은 생의 황혼을 직접 맛보는 일이며, 덧없음과 쓸쓸함, 그러나 동시에 순환의 안도감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모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먹어본 적이 없더라도, 누구나 언젠가는 그 맛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의 맛은 결국 살아가는 동안 조금씩 삼켜온 시간의 맛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떠올리는 쓸쓸한 오후, 이미 지나가버린 계절의 여운, 다가오는 겨울 앞에서 느끼는 텅 빈 공기. 그 모든 것이 낙엽의 맛과 같다. 먹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모두가 이미 먹어버린 맛.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들어올려 잠시 망설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