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발톱이 세상을 버티는 방식.
어둠 속에서 고양이는 발소리를 지우며 걸어간다. 마치 공기와 섞여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눈동자에 반사되는 불빛만이 존재의 증거처럼 남아 있다. 그 고요 속에서 숨겨진 것은 단순히 부드러운 발바닥의 솜털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게 접혀 들어간 발톱,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날카로움이 그 안에 숨어 있다. 섬세하고 예민한 존재란 결국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는 준비를 품은 채.
겉으로는 조용하고 유약해 보인다. 작은 소리에 놀라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모르는 바람에도 눈동자가 잔물결처럼 떤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강도가 감춰져 있다. 마치 누군가 손끝으로 쓰다듬다 무심코 건드린 순간, 은폐된 발톱이 번뜩이며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섬세함과 예민함은 부드러움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사실은 철저히 자기 방어적인 갑옷에 가깝다.
고양이는 언제나 두 가지 세계를 동시에 산다. 한쪽 발은 따뜻한 햇살 위에 얹혀 있지만, 다른 발은 어둠 속 위험을 감지한다. 부드럽게 몸을 늘이고 눈을 감은 순간에도 귀 끝은 세상 모든 소리를 수집한다. 이런 모순적인 자세는 삶을 버티는 방식이다. 그 모순 속에서 생존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피어난다. 예민한 자들은 언제나 발톱을 감추고 있다. 발톱을 드러낸 채 사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예민함은 흔히 약점처럼 여겨진다.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필요 이상으로 사소한 신호에 반응한다. 그러나 그 민감함은 실제로는 가장 탁월한 탐지기다. 눈에 띄지 않는 틈, 보통 사람은 지나치는 기류, 말끝에 걸린 작은 떨림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런 자들에게 세계는 언제나 과잉으로 다가온다. 빛은 조금 더 눈부시고, 소리는 더 날카롭게 파고들며, 냄새조차 선명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발톱이 필요하다. 동시에 그 발톱은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숨김과 준비, 이것이야말로 예민한 존재가 세계와 맺는 비밀스러운 계약이다.
어느 날 카페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책장을 넘기는 손동작이 유난히 조심스럽다. 페이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활자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치 종이가 가진 숨결까지 존중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그 눈매에는 분명 어떤 날카로운 선이 숨어 있다. 상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깊게 베일 수 있는 눈빛. 동시에, 그 눈빛은 단 한 번의 날카로움으로 상대를 영원히 잊게 만들 수 있다. 발톱은 드러나지 않지만, 그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이다.
섬세한 이들은 관계 속에서 쉽게 지쳐간다. 그러나 그 피로는 대개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물러나며 거리를 둔다. 마치 고양이가 귀찮은 손길에서 벗어나려 소파 아래로 몸을 숨기듯. 이때 사람들은 종종 오해한다. 왜 갑자기 차갑게 변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힘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민한 이들의 세계는 표면이 아니라 미세한 균열에서 움직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긴장, 드러나지 않아도 느껴지는 적대감, 미세하게 기울어진 눈빛 속에서 이미 싸움은 시작되고 끝난다. 발톱은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꺼내지 않은 발톱의 존재감이 오히려 더 큰 무게를 지닌다.
모든 예민함이 방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때로 그 발톱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도구로도 작동한다. 과도한 예민함은 내면을 할퀴고, 스스로 만든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며 더욱 예민해진다. 마치 고양이가 자기 발톱에 긁혀 피가 배어 나오는 것처럼.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이미 내부에서 너무 많은 상처가 만들어진다. 섬세하다는 것은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세상에 더 많이 다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밤은 이런 성질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도시의 불빛이 줄어들고, 사소한 소음까지 또렷해지는 순간, 예민한 감각은 끝없이 확장된다. 시계의 초침 소리조차도 심장 가까이에 박힌 못처럼 울린다. 창밖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그림자는 내면의 균열처럼 커져 간다. 그러나 동시에, 그 밤은 가장 순결한 아름다움을 품기도 한다. 누구도 듣지 못하는 작은 속삭임, 누구도 보지 못하는 별빛의 흔들림이 그들의 눈에 포착된다. 세계는 더 잔혹해지지만, 동시에 더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어준다. 그것이 예민한 자들의 비밀스러운 축복이자 저주다.
발톱을 감추고 있는 고양이는 결코 무해하지 않다. 다만 그 무해함은 선택된 것이다. 섬세한 존재는 결코 순진하지 않다. 오히려 모든 것을 감지하고,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며, 스스로의 한계까지 끊임없이 응시한다. 그래서 종종 불필요하게 피로하다. 그러나 그 피로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하는 균열과 진실이 그들에게는 보인다. 그것은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진실이야말로 삶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다.
발톱은 결국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 감추어진 채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타인은 긴장을 느낀다. 그리고 섬세하고 예민한 자들은 언제나 그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손끝의 작은 떨림, 숨결의 느린 흐름, 눈동자의 가벼운 흔들림 속에 세계는 이미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양이가 눈을 감고 있는 순간조차, 발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섬세하고 예민한 자들은 스스로 발톱을 감추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변의 누군가는 이미 그 숨겨진 발톱을 보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 날카로움은, 어쩌면 가장 투명하게 세상에 비친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 감춘다는 행위 자체가 곧 드러냄이 된다. 결국, 그 발톱은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가 창가에 웅크려 있을 때, 햇살은 발톱 끝에 작은 빛을 남긴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도, 그 빛은 존재를 드러낸다. 섬세하고 예민한 당신은 발톱을 감추고 있는 고양이처럼. 그러나 결국 감춘 발톱은.
세상이 가장 먼저 알아채는 광채로 드러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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