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문장의 마지막 숨

by 적적

새벽의 공기는 투명하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입자가 떠 있다. 검룡소의 물이 사라진 뒤에도, 공기 속에는 여전히 젖은 냄새가 남는다. 그것은 물의 흔적이자, 사라진 문장의 잔향이다. 문장은 쓰여진 순간보다 지워지는 순간에 더 깊은 의미를 품는다. 지워진 자리의 공백은 단순한 비어 있음이 아니다. 그곳엔 아직 닿지 못한 세계가, 아직 발화되지 않은 감정이 잠들어 있다. 언어의 끝은 결국 침묵의 시작이고, 그 침묵이 언어를 다시 잉태한다.


검룡소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며 자신을 잃듯, 문장도 독자에게 닿는 순간 자신을 내어준다. 문장은 읽히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그러나 그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라 흡수다. 한 사람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그 사람의 체온, 시선, 기억의 형태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문장은 육체를 얻는다. 언어는 머무르지 않는다. 존재의 형태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감각의 장소를 찾는다.



검룡소가 하늘의 빛을 품어낸 후 다시 땅속으로 사라지듯, 문장 또한 빛을 흡수한 뒤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그 어둠은 부재가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다. 문장은 어둠 속에서 익는다. 말해지지 않은 말들이 발효되며, 서서히 다음 문장의 형태를 예비한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이런 발효의 과정을 거친다. 빛 속에서 태어나, 어둠 속에서 다시 자신을 완성하는 일. 언어의 진정한 생은, 드러남보다 잠김에 있다.



검룡소의 물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누구도 같은 물을 본 적이 없다. 문장도 그렇다. 같은 문장은 다시 쓰일 수 없고, 다시 읽힐 수도 없다. 모든 문장은 읽히는 순간 새롭게 변형된다. 그 변형이야말로 문장의 생명이다.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두려워한다. 뜻이 단단해질수록, 문장은 죽어간다. 언어는 항상 미끄러진다. 미끄러짐 속에서 새로운 감각이 피어난다. 검룡소의 물이 돌 틈을 따라 부서지고 흩어지며 자신을 새롭게 하듯, 문장도 부서짐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문장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의미를 완성하기보다는, 의미를 흔들기 위해. 언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에서 비로소 진짜 울림이 생긴다. 침묵은 언어의 반대가 아니다. 침묵은 언어의 내부에 있다. 말이 스스로를 잠재울 때, 언어는 가장 투명해진다. 검룡소의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들며 완전한 투명함을 되찾듯, 문장도 말해지지 않을 때 그 본래의 형태를 회복한다.



저녁의 산그늘이 검룡소를 덮을 때, 물은 더 이상 빛을 비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물의 깊이가 드러난다. 언어도 그렇다. 밝은 의미 아래서는 결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말의 그림자 속에만 존재하는 감정들이 있다. 언어의 밝기가 사라질 때, 문장은 감각으로 남는다. 냄새로, 온기로, 혹은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



세상에 닿지 못한 문장들은 어디로 가는가. 검룡소의 물처럼, 언어에도 지하의 강이 있다. 발화되지 못한 문장들은 그 강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잠든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혹은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의 여백에서. 언젠가 그것들은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언어의 발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은 끝없이 되돌아오고, 다시 시작된다. 검룡소의 물이 그랬듯, 문장도 언젠가 다시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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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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