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아래의 언어
https://www.youtube.com/watch?v=05jKxv8ApuI
빛으로만 남은 점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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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어루만져보세요. 손끝으로 도드라진 모양이 느껴지나요.
방금 읽어낸 활자는 문장이라는 이름의 점자다. 언어는 손끝을 대신해 뇌 속에서 만져지고, 그 표면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잔상은 있다.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인체는 일시적인 점자의 체계를 형성한다. 촉각의 환영. 의미를 닮은 미세한 진동.
점자는 언제나 느리다. 그것은 빛보다 느리고, 호흡보다 느리다. 단어가 손끝을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문장은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만져진다’. 활자는 돌출된 감정의 표면이고, 의미는 손끝으로 번역된 그림자다. 이때 감각은 시각을 배신한다. 보는 일보다 만지는 일이 먼저였던 시대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금 이곳의 화면은 유리로 덮여 있다. 매끈한 표면 위에 점은 없다. 오직 환한 빛의 진동만 있다. 그것을 문장이라 부르는 건 어쩌면 잔혹한 착각이다. 점이 사라진 자리에서 언어는 더 매끄럽고, 더 빠르게 미끄러진다. 사람들은 읽는 대신 스크롤한다. 의미는 체험되지 않고, 정보로만 스쳐간다. 손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은 아직 남아 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도시의 플랫폼 어딘가에 놓여 있다.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끄는 사람의 손에서 비롯된 진동. 한 줄의 금속음이 콘크리트 바닥 위를 따라 미세하게 번진다. 그 소리는 들리는 것보다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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