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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아포리즘Ⅱ

숨결, 거친 호흡이 시작될 때

by 적적

행동과 가능성이 겹치는 시간의 세계


https://www.youtube.com/watch?v=HR1oVvDQ97Q&list=PLfodbX682Ls0IapFPNYOFBqhlSORZvsUN&inde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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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언제나 현재형으로 숨 쉰다. 그러나 동사는 다르다. 동사는 그 자체로 미래를 품고 있다. 어떤 움직임이 시작되기 전의 미세한 떨림, 아직 세계가 반응하지 않은 찰나의 숨, 그게 동사의 본질이다. ‘걷는다’는 말이 완성되기 전,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는 그 0.1초 동안, 동사는 가장 눈부시게 살아난다. 그것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행위의 약속이며, 움직임의 씨앗이다.


정지된 명사는 세계를 고정시키지만, 동사는 세계를 흔든다. 흔드는 과정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동사는 항상 불안정하다. 그러나 그 불안정 속에 생의 진동이 깃든다. 완성된 행동은 이미 과거형으로 굳어버린 기억에 불과하지만, 예비된 동작은 여전히 미래를 향해 열린 통로다. ‘달린다’는 말이 끝나는 순간, 그것은 죽은 문장이 된다. 그러나 ‘달리려 한다’는 말의 끝에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세계가 깃들어 있다.



모든 움직임의 기원에는 머뭇거림이 있다. 그것은 불완전한 예열, 혹은 아직 자신을 의심하는 의지의 그림자다. 어떤 손이 컵을 들어 올리기 직전, 손끝에는 결정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깃든다. 들지 않을 수도 있었던 손, 흘릴 수도 있었던 물, 멈출 수도 있었던 순간. 동사는 바로 그 가능성들의 교차로에 서 있다. 세계가 움직이기 직전,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그 찰나의 공백 속에서, 동사는 살아 있는 시간의 형태로 존재한다.




사람의 몸은 언어보다 먼저 알고 있다. 근육은 문장을 쓰기 전에 이미 의도를 알아차린다. 누군가의 눈빛을 보고, 발끝이 아주 미세하게 반응하는 그때, 동사는 아직 발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다. 언어로 옮겨지기 전의 동사는 침묵 속에서 태동한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감각, 그것이 동사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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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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