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히, 그러나 무심히
https://www.youtube.com/watch?v=xwtdhWltSIg&list=PL3VThLTzm0cl4q3GI280jk-i1loLH2PMT&index=1
언어에는 속도가 있다. 문장은 리듬으로 흐르고, 단어들은 가속과 감속을 반복한다. 그러나 진짜 속도를 결정하는 건 동사가 아니다. 동사는 단지 방향을 제시할 뿐, 속도를 주는 건 부사다. 부사는 문장에 마찰과 온도를 부여한다. 한 문장은 달리고, 또 다른 문장은 미끄러지고, 어떤 문장은 정지한 듯 있다가 서서히 움직인다. 부사는 그 모든 흐름의 비밀스러운 조종자다.
언어학자들은 흔히 부사를 ‘보조적인 품사’라 부른다. 하지만 부사는 결코 보조가 아니다. 부사는 문장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다. “사랑했다”라는 문장은 정지된 진술이다. 그러나 “맹렬히 사랑했다”는 문장은 불길의 형상을 띤다. 부사 하나가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완전히 소거할 수도 있다. “무심히 사랑했다.” 그 짧은 부사 하나
가 감정의 전체 구조를 비틀어버린다. 언어의 세계에서 가장 교묘한 속임수는 언제나 부사로 이루어진다.
그날 저녁, 남자는 카페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벽에는 나무로 짠 시계가 천천히, 그러나 잔인할 만큼 일정하게 초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주 보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부사를 잘못 쓴다. “어쩐지”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궤적이다. 그 단어는 이유 없는 예감과 닮아 있다. 남자는 그날, 어쩐지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문장이 무너질까 봐.
그녀가 말했다.
그냥, 이제 그만하자.
‘그냥’이라는 단어가 문장 앞에 붙었다. 부사의 세계에서 ‘그냥’은 무책임과 보호의 경계에 있다. 그녀는 그 경계 위에 서 있었다. 남자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만하자’라는 명령보다 ‘그냥’이라는 부사가 더 깊이 박혔다. 그것은 이유를 포기한 말이었다. 사랑의 종말이 언제나 이토록 조용하고도 서늘한 이유는, 부사가 모든 감정을 대신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날의 대화는 부사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는 좀 지쳤어.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 했잖아.
조금은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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