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흙이 되어 마음을 키우는 일에 대하여.
가을은 나무가 자신을 버리는 계절이다. 그러나 그 버림의 방식은 늘 다르다. 어떤 나무는 마지막까지 잎을 움켜쥐며 서리를 맞고, 어떤 나무는 바람의 첫 손짓에 이미 자신을 내어준다. 도로의 은행잎들은 집단적인 퇴색 속에서도 각자의 타이밍으로 떨어진다. 그 무수한 타이밍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망설임과 결심이 숨어 있다. 마치 한 인간의 이별이 모두 다른 시간차로 이루어지듯.
어느 오후, 오래된 골목을 지나던 발끝에 바스러지는 잎사귀 하나가 닿는다. 그것은 무겁지 않은 소리로,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발밑에서 깨진다. 그 찰나의 감각 속에 시간의 퇴적이 스며 있다. 빛을 머금고 자라던 시절, 비에 젖어 반투명해지던 계절, 태양의 뜨거운 살결에 반짝이던 여름을 지나, 결국 남은 건 건조한 질감과 부서짐뿐이다. 그 잎은 스스로의 퇴락을 견디며 땅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완결이었다.
나무가 잎을 떨굴 때, 그 결심은 조용하다. 어떤 의식도 없고, 눈물도 없다. 단지, 더 이상 붙잡을 이유가 사라졌을 뿐이다. 낙엽은 그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증명한다. 인간의 마음도 그와 닮아 있다. 관계의 온도가 서서히 식을 때, 마음은 먼저 색을 잃는다. 그 퇴색의 순간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문득, 같은 대화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않는 날이 온다. 그때의 침묵은 바람이 낙엽을 떨어뜨리는 순간과 닮았다.
거리의 나무들은 각자의 이별 속도를 갖는다. 느티나무는 끝까지 버티다 한 번에 우수수 떨어지고, 단풍은 그보다 먼저 조심스럽게 자신을 흘려보낸다. 은행나무는 황금빛으로 자신을 태워버린 뒤, 매캐한 냄새로 마지막 존재를 남긴다. 그렇게 나무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놓는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잡고, 누군가는 미리 포기한다. 그 차이는 생의 품격이 아니라, 생의 리듬이다.
어떤 관계는 단풍처럼 붉게 타오르다 순식간에 재가 된다. 또 어떤 관계는 느티나무의 잎처럼 한동안 잊힌 채 매달려 있다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세상에는 언제나 두 가지 종류의 이별이 있다. 천천히 식는 것과, 갑자기 꺼지는 것.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이 어떤 낙엽을 떨구고 있었는지를 모른다.
색은 기억의 형태다.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오랜 시간 타올랐는지,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는 그가 남긴 색으로 드러난다. 초록의 시절은 충만함의 시간이지만, 그것이 지나면 모든 색은 변질된다. 노랑은 포기의 색이고, 붉음은 열정이 식는 직전의 몸부림이다. 갈색은 체념이며, 회색은 완전한 무감의 상태다. 낙엽은 단순히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색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증언한다.
바람이 불면 그 증언은 땅 위에 흩어진다. 한때 마음을 채우던 감정들이 퇴색하고, 바람 같은 사건들이 그것을 흩뜨린다.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문득 다시 떠오를 때, 그것은 마치 늦가을의 바람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낙엽처럼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춘다. 바람이 잦아들면, 낙엽은 비로소 자신이 누워야 할 자리를 찾는다. 그곳이 흙 위든, 도로 위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멈춤’의 상태다. 인간의 마음도 결국 그 평온을 향해 흘러간다.
가을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그 아래의 공기는 냉정하다. 나무와 낙엽 사이에는 더 이상 교감이 없다. 그것은 이미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떠난 관계다. 그들의 침묵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어떤 해방감이 있다. 붙잡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관계. 그것이 가을이 주는 가장 잔인하고도 고요한 교훈이다.
도시의 인도 위에 쌓인 낙엽들은 더 이상 하나의 생을 기억하지 않는다. 바람은 그들을 섞고, 구분을 지우며, 하나의 무늬 없는 층으로 만든다. 한때 뚜렷하던 감정의 색이 섞이고 희미해져, 결국 ‘그때 그랬다’는 말 한마디로만 남는다. 그러나 그 희미함 속에야 비로소 진실이 있다. 너무 선명한 기억은 살아 있는 상처이고, 희미해진 기억만이 비로소 회복의 징후다.
공원 벤치 위에 앉아,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다 보면 그것은 마치 오래된 대화의 잔향처럼 느껴진다. 말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남아 있던 공기의 울림, 다 말하고도 전하지 못한 마음의 잔여. 그것들이 모두 바닥에 쌓여 간다. 시간은 그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긴다. 낙엽은 밟히고, 부서지고, 결국 사라진다. 그러나 그 사라짐이야말로 완성이다.
어떤 낙엽은 유난히 오래 공중에 머문다. 작은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한참 동안 허공을 떠돈다. 끝까지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 그러나 결국 모든 낙엽은 바닥에 닿는다. 그 종착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단지, 각자의 낙하 곡선이 다를 뿐이다. 사람의 감정 또한 그렇게 떨어진다. 누구는 조용히, 누구는 소란스럽게, 누구는 한참을 맴돌다가. 그러나 결국,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다.
가을 끝에서 나무는 비로소 가벼워진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가지는 그제야 본래의 형태를 드러낸다. 초록으로 가려져 있던 구조가 나타나고, 생의 등뼈가 드러난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라, 정직함이다. 인간의 모든 꾸밈이 벗겨지고, 감정의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남는 것은 한 줄기의 형태뿐이다. 그 형태가 비틀려 있든, 곧게 서 있든, 그것이 진짜 자신이다.
가끔, 눈이 내리기 전의 마지막 바람 속에서 낙엽 하나가 공중을 맴돈다. 그것은 아직 결심하지 못한 어떤 마음의 형상 같다.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붙잡고 있을 이유도 사라진 마음. 그 흔들림 속에 계절의 진실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떠남은 없다. 언제나 약간의 망설임과 남은 온기, 그리고 끝내 다 닿지 못한 손길이 있다.
결국 모든 낙엽은 색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그 색은 사라지며 또 다른 흙이 된다. 인간의 감정도 그렇게 퇴색하며 다음 계절의 밑거름이 된다. 버려진 감정 위에서 새로운 마음이 자란다. 그것이 삶의 순환이며, 존재의 은밀한 윤리다.
어느 계절의 끝자락에서 흩어지는 이 마음은 어떤 색일까. 노랑처럼 단념의 빛일까, 붉음처럼 미련의 잔광일까, 아니면 이미 모든 색을 잃은 투명함일까. 바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무와 낙엽, 하늘과 땅이 서로의 거리를 조율하며 고요히 흔들린다. 그 사이에서 남는 건 하나의 질문뿐이다.
나는, 어떤 색의 낙엽을 떨구고 있었나.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