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 45도 경사진 곳까지 끌고 올라갑니다. 발바닥이 조금 찢어지고 발등은 흙먼지로 더럽혀집니다. 느리게 네모난 바퀴가 빠르게 마모되며 굴러 내려갑니다. 뒤따라오는 단어 하나가 첫 문장에 힘차게 걸려 바퀴의 힘을 전해줍니다. 두 번째 단어가 연이어….
기차 한량의 문장이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속도는 기다리면 체온처럼 오를 것입니다.
거울은 틀어놓은 물줄기로 이내 뿌옇게 흐려집니다.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면 그토록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한 번도 거울 속의 나를 또렷하게 본 적이 없습니다.
흐려진 거울 뒤편을 손으로 닦아내면 뒤편의 내가 거울 앞 남자의 수염을 면도기로 밀기 시작합니다. 밀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건 조금 불명확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몇 번 턱선을 따라 지나가고 목과 턱의 경계를 지나며 마무리됩니다.
어릴 적엔 수염 자국이 멋지게 얼굴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성적으로, 누가 뭐라 해도 남자답게. 어릴 때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그런 수염 자국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때로 간절하기도 하였으며 또 실망스러웠던 적도, 그리고 이제 귀찮아져 버린 구역 같아져 버렸습니다.
간절했던 구역에서 실망으로 혹은 귀찮아져 버린 구역들을 생각합니다.
손거스러미가 생겨납니다.
머리를 쓸어 넘길 때, 옷깃에 쓸렸을 때, 혹은 차가운 바람에 닿을 때마다 혓바늘을 혀로 쓰다듬듯이 손거스러미를 다른 손가락으로 만져봅니다.
손거스러미에 대해 완벽한 비유를 했던 여자친구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입안의 음모(陰毛) 같은 거야.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한 하나가 내 입안에 머물고 있어. 혀끝으로 만지면 입 안에 있는 게 분명한데 손가락을 넣으면 마술처럼 사라지는 것. 그리고 가래침을 뱉듯이 캑캑거려도 입술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입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그런 것. 삼켜버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해본 적도 없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 통증이 느껴지는 것.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되는 것.
들여다보면 흔적이 사라지는 것.
돌아서면 다시 나타나는 것.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도통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것.
어쩌면 나는 그 수많은 축축한 거스러미가 겹겹이 싸여 있는 존재라는 것.
밤이 깊어 가도록 손톱깎이를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