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은 준비되어있지 않습니다.
비가 올 듯, 아니 눈이 올 듯한 예보는 밤의 끝자락에서 천천히 식어가는 냄비처럼 묵직한 기척을 남기고 있었다. 예보는 늘 정확하지 않고, 오차는 예보의 몸을 이루는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지만, 이 계절의 빛은 그 오차마저 무력하게 만들었다. 눈을 감고도 창밖이 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할 수 있었다.
어둠에 적응해 있던 방은 먼저 몸을 뒤척였고, 벽지 가장자리에는 서늘한 빛의 금이 조용히 번졌다. 얇은 은박지 같은 눈꺼풀은 작은 흔들림에도 금방 뜯겨 나갈 것 같았다. 겨울이 더 깊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밤이 아침을 오래 씹다 삼키지 못하고 그대로 입 안에 머금고 있는 상태인지도 몰랐다. 씹히지 않은 밥알처럼, 삼켜지지 않는 시간의 작은 알갱이가 방 안에 유영하고 있었다.
토요일의 아침은 대개 풀린 리듬으로 오지만, 이 집의 토요일은 다른 길을 통해 다가왔다. 알람 없이 깨어난다는 자유보다 먼저, 난방 배관에서 묵은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고, 먼지와 철 냄새가 뒤섞인 뜨거운 공기가 방바닥 아래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겨울의 새벽은 사골국이 식어가는 과정과 늘 닮아 있었다.
겉은 여전히 뜨거운 듯 보이지만 손대면 금세 미지근해지는 표면, 그 아래에서 희뿌연 온기가 흐르고 기름의 잔막이 흩어지는 순간. 부엌에는 소리도 냄새도 흐릿하게 남아 있었고, 사내는 그 흐림의 촉감을 한동안 그대로 껴안듯 머물러 있었다. 움직임이 하루를 공식적으로 여는 일이라면, 이런 아침에는 굳이 열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창가에 맺힌 이슬은 낡은 거울의 얼룩처럼 빛을 흩뜨려 놓고 있었다. 이슬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순간마저도 흐리멍덩해서, 마치 빛이 자신을 잃어버린 채 겨울의 피부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다. 부엌의 나무 식탁은 이슬의 반사에 비친 덕분인지 처음 본 사물처럼 보였다. 나뭇결 사이에 오래 눌린 손의 자국들이 계절의 무게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고, 갈라진 틈에는 눅눅한 밤의 냄새가 굳은 채 남아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뚝배기 안에서는 하얀 국물 위에 삭은 밥알이 떠 있었다. 그것들은 움직임을 잃어버린 생각처럼 표면에 정착해 있었다. 사내는 뚝배기 안에서 겨울의 단면을 들여다보듯 오래 바라보았다. 이 국물의 하얀 흐림은 마치 어떤 기억의 골격이 다 드러나기 전에 끓임을 멈춘 듯한 형태였다.
밖에서는 눈인지 비인지 식별되지 않는 입자들이 공중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들은 떨어질 듯 멈추는 동작을 반복했고, 아래층 베란다 난간에는 물기와 흰 가루가 동시에 붙었다. 서로 다른 계절이 한순간 겹쳐졌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이질적인 조합이었지만, 이 아침에서는 그 이질감마저 겨울의 자연스러운 조화처럼 보였다.
먼지는 겨울에만 피는 작은 꽃처럼 바닥에 스며들었고, 보일러의 낮은 떨림은 이 계절만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찬 공기에 닿아 갈라지는 손등의 얇은 피부는 어떤 말보다 명확하게 계절을 드러냈다. 사내는 이런 것들이 모여 아침의 시간대를 훨씬 크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숨을 내쉬자 입김이 얇게 피어올랐다. 입김은 실체 없이 잠시 떠오른 뒤 다시 방의 공기 속으로 희미하게 녹았다. 그 흐림 속에서 사내의 손등에는 오래된 목도리 실밥 하나가 붙어 있었다. 진녹색의 실밥은 이미 색이 빠져 겨울의 냄새를 닮아 있었고, 세탁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장면의 잔여처럼 보였다. 실밥은 떼어낼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실밥이 붙어 있다는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방 안의 시간 감각이 조금 달라지는 듯했다. 그 작은 존재는 계절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변명 같았다.
스탠드조차 켜지 않은 방은 겨울의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바닥에 누운 빛은 사내의 발끝에 닿아 천천히 스며드는 듯했다. 그 빛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오직 ‘빛’이라는 사실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빛이 방의 상태를 바꾸고, 그 상태가 다시 사내의 숨을 바꾸었다. 예보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계절이 아니라, 계절이 방 안에 만들어 놓은 이 미세한 ‘상태’였다.
주전자에 물을 채워 불에 올리자 금속의 얇은 벽이 미세하게 울렸다. 겨울의 물은 늦게 끓는다. 온기가 닿기까지 더 많은 단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이 끓기 직전의 미세한 파동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사내는 그 소리가 방 전체의 귓가를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람을 들이기 위해 창문을 조금 열자 금속을 벗겨낸 듯한 날카로운 공기가 실내로 스며들었다. 찬 공기는 사내의 손등과 실밥 위를 지나갔다. 놀랍게도 바람은 실밥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바람은 변화의 신호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지나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끓는 물에서 피어오른 김은 겨울의 입김과 닮아 있었다. 잠시 떠오른 뒤 증발하여 사라지는 과정 속에서, 아침의 상태는 한층 더 뿌연 층을 만들어냈다. 컵을 감싼 손의 온기만이 또 하나의 작은 중심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서 뭔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흔들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이런 아침에서는 의미가 움직임보다 늦게 따라오곤 했다.
아침은 끝나지 않았다. 끝나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이 계절이 남기는 잔여들은 결론을 향해 걷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쌓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방 안의 공기와 몸의 온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사내는 이 변화가 방향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빛은 여전히 방의 한쪽에 기울어 누워 있었고, 김은 창가에서 희미하게 흩어졌으며, 어디로 갔는지 모를 실밥의 작은 그림자가 여전히 손끝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사내는 그 모든 것들이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름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겨울의 토요일 아침은 어떤 결론도 품지 않은 채, 다만 지금의 상태로 천천히 확장되고 있었다. 확장되면서도 동시에 흐려지고, 흐려지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 상태 속에서, 아침은 여전히 식지 않은 채 약한 온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온도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충분히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아침은, 오늘도 조용히 눈을 뜬 채.
아직 다 말해지지 않은 세계의 가장 얇은 막 위에 머물러 있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