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셋째 주가 지나가며 아침은 더욱더 쌀쌀해져 갑니다. 이제 따스한 날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S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지녔습니다. 손가락매듭도 거의 없어서 여자 손이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S는 공부를 아주 잘했습니다.
언젠가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S에게 어떻게 그토록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샤프심 6개를 써. 6개를 다 쓸 때까지 문제를 풀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잠들지 않아.
넌 미쳤구나
모든 방법들은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S의 방법은 맹목적이고 무식했지만, 엄마는 S의 방에 꺼지지 않는 불빛에 관해 얘길 하셨습니다. 일류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S를 볼 때마다 불빛이 들어오는 안전모를 쓰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흑연 광산의 광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연 학교를 자퇴한 S는 일주일 남짓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공사판을 찾아다니며 일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파트 현장을 어떤 때는 새로 신설되는 전철역 쇼핑몰을 그때마다 시공사에서 주는 조끼를 입고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S가 결혼을 한다고 하자 친구들은 S의 아내를 보기 위해 다들 모여들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앳된 모습에 잔뜩 긴장을 한 채 S의 팔을 붙들고 있었는데 우리가 짓궂은 질문을 할 때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S의 아내는 모든 질문을 모두 받아냈습니다.
S가 아파트 현장에서 일할 때 당시 공사장마다 함바집이 따로 있었는데 그녀는 고3이었고 엄마를 돕기 위해 여름방학 때 잠시 일을 도와주러 왔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S의 하얗고 긴 손가락에 반했다고 손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S가 밥을 먹으러 오면 S의 몫으로 달걀 프라이 2개씩을 건네주었다고 했습니다. 눈치 없는 S는 한동안 자신에게만 베풀던 따스한 마음을 알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S의 소문을 듣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샤프심 얘기를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녀가 그 얘기를 믿고 공부를 해서 S가 다녔던 학교에 입학을 한 뒤 다른 현장에 있던 S를 찾아와 사귀자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S의 손을 여전히 하얗고 손 매듭도 없고 가늘고 깁니다. 손바닥은 이제 거칠어졌지만, 손등은 여전히 매혹적입니다.
언젠가 매일 샤프심 6개를 다 쓸 때까지 글을 쓰고 퇴고를 한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법 용기를 주는 일화입니다.
한 번도 그렇게 써본 적이 없으니 오늘 아침도 그 생각은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