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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Mar 08. 2019

세상에 둘도 없는 독일인의 맥주 부심

 

독일 맥주는 어쩌다 세계 최고가 되었나 

나는 맥주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온 몸이 토마토가 되는 알코올 해독 능력 제로인 탓에 맥주는 물론, 술과는 참 이렇다 할 친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내게 맥주란 것은 10대엔 마시면 안 되는 금기지만 환상이 가득했던 어른의 음료였고 막상 성인이 된 이후에는 처음 마신 맥주 맛에 크게 실망해버린 보리술에 불과했다. 광고에 나오는 쿨한 사람들이 행복에 젖은 얼굴로 ‘캬아-‘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마시던 맥주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이 시큼 텁텁하고 끝 맛은 씁쓸하기까지 맥주란 놈을 왜 이렇게 모두가 좋다고 마셔대는지 왠지 나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 패배 의식마저 들었다. 


그래서 독일의 맥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내게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에 온 이상, 특히 맥주 자부심으로는 세계 으뜸가는 뮌헨에 살게 된 이상 맥주를 예전처럼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이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뮌헨에 있는 Top 6 맥주는 마셔봐야 하고, Top 5 비어가든도 가봐야 하며 옥토버페스트에 가서 1리터짜리 마스(Mass)를 두 잔은 가뿐히 들이켜야 뮌헨 산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소박한 마음 가짐으로 독일 맥주에 입문했다. 물론 대단한 반전은 없다. 나는 여전히 맥주 전문가가 아니고 맥주를 끔찍이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끔 땀을 빼고 나면 ‘아~ 시원한 필스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동독 끝자락에 있는 괼리츠 지역 흑맥주는 다른 것보다 훨씬 달다, 설탕을 엄청 넣었나’ 하는 정도의 추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맥주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맛없다고 하는 건지 공감할 수도 있게 되었다. 


독일인들의 맥주 자부심을 들어보면 어쩐지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국인의 소주 사랑과도 비교가 안될 것 같은 이들의 거대한 맥주 부심은 독일이 맥주의 기원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 Beer purity law)의 존재에 큰 바탕을 둔다. 이는 독일 맥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 순수령이라니! 그 이름에 괜히 손발까지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이 세상은 온갖 불순물로 오염이 되었지만 맥주만큼은 깨끗하게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만 같다. 적어도 이 순수한 맥주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우리도 때 묻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듯 말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온 길에, 회사에서 상사에게 실컷 터지고 울며 돌아오는 길에 들이킨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주는 해방감을 떠올려보면 맥주의 순수함이란 것이 온몸으로 이해가 된다. 맥주 순수령은 맥주 양조에 쓰이는 재료를 엄격히 규제하는 법이다. 즉, 맥주에 사용되는 재료가 맥아, 홉, 물과 이스트로 제한된다. 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는 이스트가 알려지기 전이라 보리 맥아, 홉, 물까지 세 가지 재료만 명시되었다. 이외 재료가 들어간 맥주는 독일 맥주로 인정받을 수도 판매될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양조장은 이 법을 무척 존중하고 따르는 편이다. 그리고 매년 이 법이 공표된 4월 23일 많은 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몇 천 개가 넘는 독일 맥주는 그 지역의 얼굴 

독일의 각 지역을 거닐다 보면 식당이나 바 간판 위에 그곳에서 판매하는 맥주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표시하는 작은 간판이 추가로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게 식당들은 지역이나 그 주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를 우선적으로 판매한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 또한 다른 도시를 방문, 여행할 때는 그곳의 맥주를 맛보며 비평하는 것을 즐긴다. 프랑크푸르트 출신 친구가 뮌헨에 놀러 와 저녁 식사 차 함께 식당에 갔을 때였다. 친구는 음료로 ‘필스(Pils)’를 주문했는데, 웨이터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친구에게 ‘필스(Pils) 아니면 ‘헬레스(Helles)?’ 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맥주 역사가 바이에른주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 바이에른 사람들에게 필스는 역사가 가장 짧은 순해 빠진 모던 맥주에 불과하여 종종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필스를 주문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조롱을 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유명한 맥주를 마셔줘야 예의다. 


독일의 각 지역의 맥주 중 독일인에게 인기 있는 맥주 종류를 꼽자면 밀맥의 대표 주자는 단연 뮌헨의 바이젠 비어와 앞서 언급한 베를리너 바이스비어(Berliner Weissbier)가 있다. 라거 부분에서는 크롬바흐의 필스너(Pilsner), 쾰른의 쾰시(Koelsch), 바이에른 지역의 헬레스(Helles), 도르트문트의 엑스포트(Export)가 잘 알려져 있다. 흑맥 분야에선 무척 진한 맛으로 유명한 동독(코트부스, 괼리츠 지역)의 슈바쯔비어(Schwarzbier), 뒤셀도르프의 알트비어(Altbier) 그리고 아인벡 지역의 복비어(Bockbier)가 무척 유명하다. 이런 맥주들은 당연히 알코올 함유량도 다를 뿐 아니라 그 맥주 본연의 맛을 가장 오래 보존해주는 맥주잔도 각기 다르다.  


쾰시나 알트 비어는 그 지역에 가면 보통 200ml짜리 일자형 유리잔에 제공된다. 맥주가 미지근해지기 전 신선한 맥주를 얼른 마셔버리기 위함이다. 금세 비워지는 맥주잔에 자꾸 주문을 하기도 귀찮은 법! 그래서 이 곳에선 종업원들이 아주 많은 양의 맥주잔을 끊임없이 들고 다니며 주문을 하지 않은 테이블에도 맥주잔이 비어있는 곳에 자동으로 새 맥주를 가져다준다. 처음 쾰른에 갔을 때, 함께 간 독일 친구는 “앗, 안 주셔도 돼요!”를 외치는데도 내 말을 무시하고 맥주잔을 빠르게 놓고 가는 웨이터를 보며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웃어댔다. 맥주를 더 마시고 싶지 않으면 다 마신 잔에 받침대를 올려놓으면 된다는 것을 한참 뒤에나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덕에 나는 그 날 만취상태 아시아 여자애가 되어버렸지만 아, 이 합리적인 시스템이란! 

맥주를 썩 좋아하지 않거나 쉽게 취해버리는 이른바 나 같은 알코올 쓰레기들을 위한 혼합 맥주도 존재한다. 바로 라들러(Radler)이다. 필스(Pils) 또는 바이젠비어(Weizenbier)에 레모네이드를 6:4 비율로 섞어 만든 것으로 레모네이드의 청량감과 단 맛이 맥주와 잘 어우러져 꿀꺽꿀꺽 금세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낮술을 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운데 시원한 맥주 한잔에 갈증을 해소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것이 이 라들러다. 남녀노소 모든 독일인에게 사랑받는 혼합 음료인지라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동일 브랜드의 라들러도 생산한다. 드물게 필스나 바이젠 비어가 아닌 에일과 레모네이드를 섞은 라들러를 파는 양조장이 있다. 맥주 자체에 과일 향이 많이 나는 에일과 레몬 향이 섞여 훨씬 더 상큼한 맛이 짙어지는 덕에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진정한 바이에른 사람이라면 펍에 가서 가장 먼저 500ml의 헬레스를 마셔 급한 갈증을 해소하고 두 번째로 라들러를 마시며 더위를 이겨내며 마지막으로 1l의 바이젠비어를 굶주린 배를 채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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