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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Mar 15. 2019

독일인이 맥주를 즐기는 방법  

맥주를 마시는 곳, 비어가든의 자격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나 바덴뷔텐베르크 주를 날 좋을 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비어가든(Biergarten)이다. 비어가든에서 방금 뽑은 생맥주 1마스(1리터) 한 잔을 들이키지 않으면 독일인들에게 “에이 여행 마무리를 제대로 못했네!” 라며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이름만 들으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가 싶다. 우리나라만 해도 산장가든, 초원가든 등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 마실 수 있는 식당이야 많지 않은가? 가든은 그저 야외에 있는 펍, 레스토랑 따위를 부르는 사소한 이름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남부 지방 사람들에게 비어가든은 역사가 깃든 공간이자 문화의 장이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무척 부러워 하는 유산과도 같았는데 이는 누구든 원한다고 해서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비어가든이란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규칙을 좋아하는 독일인답다.


비어가든이 생겨난 것은 16세기라고 한다. 당시는 유럽의 기후가 무척 건조하여 산불이 잦은 때였다. 남부 지방의 대부분의 건물은 나무 조각을 안팎으로 덧댄 목골조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특히 불에 잘 타버리는 약점이 있었다. 게다가 맥주 양조에 사용되던 석탄 불은 화재 위험을 더 높였다. 바이에른 주 알브레시트 V 공작은 이런 화재를 우려하여 건조한 봄부터 가을까지 맥주 생산을 제한했다. 양조장들은 겨울 내 맥주를 많이 생산하여 여름 내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차가운 곳에 대량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땅 속 깊이 지하 저장고를 만들었고 점점 그 크기를 넓혀갔다. 특히 이때 정부는 뮌헨 한가운데를 지나는 이자 강을 따라 맥주 양조장을 짓고 저장고를 넓히라고 명령 했다. 구글 지도에서 뮌헨 비어가든을 검색하면 우리가 잘 아는 파울라너(Paulaner) 브랜드 양조장을 포함해 10곳이 넘는 양조장이 이자 강을 따라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이유다. 맥주 저장고의 낮은 기온을 보다 잘 유지하기 위해 이파리가 무성해 그늘이 잘 지는 카스타니아(밤나무 종류)나무를 많이 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조장들은 밤 나무 그늘 아래에 자갈 돌을 깔고 긴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맥주를 팔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술집, 식당 주인들의 반발이 워낙 심해 맥주 판매가 잠시 중단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비어가든이 맥주를 팔도록 허락하는 대신, 술집이나 식당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빵 외에 다른 어떤 음식도 판매할 수 없다는 제약을 두었다. (참고로 이 제약은 19세기 들어와 다시 삭제되었다.) 비어가든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내 직접 먹을 음식들을 싸와 맥주만 시켜 먹었고 이것이 비어가든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 남부 지방 사람들에게 무엇이 비어가든을 규정하냐고 물으면 앞서 말한 몇 가지를 섞어 이야기한다. “비어가든에는 카스타니아 나무가 있어야 하고, 자갈 돌이 바닥에 깔려 있어야 되죠. 긴 나무 테이블도 있어야 하고요. 아 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외부 음식을 가져와서 먹어도 되요!.” 라고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프로스트


독일의 연간 맥주 생산량은 단연 세계 1위지만 인당 맥주 소비량은 놀랍게도 세계 1위가 아니다. 인당 맥주 소비량 1위는 언제나 높은 차이로 체코가 차지하고 고작 2-4위를 놓고 폴란드, 오스트리아와 자리 싸움을 하는데 불구하고 유독 맥주! 하면 독일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맥주를 삶의 일부로 녹여 버리듯 언제 어디서나 맥주와 함께하는 문화와 마케팅 덕일 것이다.


공공장소의 음주가 법으로 규제되는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독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는, 그것도 대 놓고 마시는 독일인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공원이나 산책로, 호수, 거리 벤치는 특히 독일인이 좋아하는 음주 장소다. 특히 축제가 있는 기간에는 마을 사람 전체가 거리에 나와 맥주 병을 들고 건배를 외치는 것 같다. 점심 시간에 회사 근처 식당을 가보면 멀끔한 양복차림의 회사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으며 맥주 한 두 병을 마시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불법도 아닌데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는 근무 시간 중 음주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근 전과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에 각 Gute-Morgen-Bier(굿모닝 맥주) 그리고 Feierabendbier(종결 맥주)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며 긍정적 이미지를 부여했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 몸과 마음을 깨우기 위한 청량한 맥주 한 첨과 오늘 하루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만끽하는 자유로운 독일인. ‘어둡고 칙칙한 날씨 속에서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생존 전략의 하나로 맥주를 마시는 독일인이구나.’ 라며 괜히 거리에서 술마시는 독일 사람들을 감싸게 되곤 한다. 


비어라들러(맥주 자전거)와 비어라틀론(맥주 철인경기)


독일인이 어떻게 맥주를 놀이 문화로 만들었는지 보면 투박하고 무뚝뚝한 독일인의 모습은 싹 잊혀지고 그들의 깜찍함과 귀여움에 웃음이 난다. 독일에 와 처음 맞이하는 아버지의 날이었다. 뮌헨 동네를 걷는데 거대 등치의 중년 남성 10명이 요란하게 생긴 버스 같은 차 위에서 신나게 맥주를 들이키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맥주 자전거(Bierradler)라 불리는 이것엔 트럭같이 생긴 커다란 오픈카와 비슷하다. 앞에는 핸들을 조종하는 운전자가 앉아 있고  바로 앞에 거대한 맥주 통이 설치 되어 있다. 운전자 뒤 양 옆으로 맥주 탭이 설치된 긴 테이블이 있는데 그 뒤에 일렬로 탑승자들이 앉아 발로는 열심히 페달을 밟고 손으로는 맥주를 따라 마시며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다. 큰 통에 맥주가 다 비워질 때까지 자전거 위에서 천진난만한 시간을 보낸다. 미국의 파티 차가 고급스럽게 꾸며진 리무진이라면, 독일의 파티 차는 필요한 것만 완벽히 구비되어 있는 이 소박한 맥주 자전거 인 것 같다. 카네이션 하나 가슴에 걸고 가족을 위해 일하고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대한민국 아빠들의 어버이날과는 달리 가족, 집과 떨어져 친구들과 온종일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본인들의 기념일을 자축하는 독일 아빠들의 모습이 참으로 웃프다.

맥주와 함께하는 스포츠도 있다. 등산을 무척 좋아해서 독일인 직장 동료들에게 함께 등산을 가자고 조르던 때였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등산이면 안가고, 비어라틀론(Bierathlon, 맥주와 철인삼종경기의 합성어)면 갈게!” 였다. 도대체 비어라틀론이 뭐란 말인가 알고 보니 술 못 먹는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스포츠였다. 이는 지역에 따라 카스텐라우프(맥주박스달리기), 비어라우프(맥주달리기), 비어레이스(맥주레이스)로 불리기도 한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맥주 한 박스를 들고 결승점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 박스에 있는 맥주를 모두 마셔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박스에 보통 맥주 20~25병이 들어있으니 실은 엄청난 양이다. 심지어 반칙을 예방하기 위해 참가자는 자신이 마신 맥주의 병뚜껑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예리한 규칙도 추가했다. 이 게임은 결혼, 졸업, 취업 등 누군가를 축하해줄 때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데 뮌헨처럼 공식 행사를 여는 곳도 더러 있다. 처음 친구들과 이 비어라틀론을 하다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내가 산을 오르는 건지 산이 나를 당기는 건지, 맥주가 내 몸을 꼭대기로 흘려 보내는 건지 알 수 없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4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맥주를 너무 마셔 30분마다 소변을 보고 싶다는 것인데 독일 남자들이야 본인들 뒷산에 양분 준다 치고 노상방뇨라도 할 수 있지만 여자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러 차례 끙끙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 아무래도 음주 게임은 가만히 앉아 진행하는 눈치게임이나 369가 최고인 것 같다.


건배할 땐 눈을 보고 프로스트!

독일인들에게 중요한 맥주 에티켓이 있다. 바로 건배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꼭 쳐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잔을 쳐다보다 건배 후 얼른 고개를 돌려 조심스레 술을 마시는 우리 모습과는 무척 다르다. 펍이나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독일인 그룹을 보면 인원이 몇 명이 되었든 건배 시 한 명 한 명 각각의 맥주 잔을 부딪히면서 상대방의 눈을 자신 있게 바라본 채 “Prost!(프로스트)”라고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로스트트으으으! 이 크고 우렁찬 함성에 왠지 기분이 마구 업이 된다.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건배를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을 피하고 잔을 처다 보았다. 그럴 때면 이 독일인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시 짠을 요구하며 눈을 억지로라도 마주친다. 그냥 넘어 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마냥 말이다. 물론 이유가 있다. 눈을 보고 건배를 하지 않으면 무려 7년 동안이나 좋은 섹스를 하지 못한단다. 모든 독일인이 알고 있는 이 눈보고 건배하기 관습은 언제, 어디서 정확히 유래되었는지는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만 들었던 중 가장 흥미로운 가설이 있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권력 싸움이 심했던 중세기에 시작되었단다. 당시, 상대가 마시는 음료에 독을 타 살인을 하는 일이 잦아 상대 잔에 독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강하게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는 것이다. 잔을 강하게 부딪히면 각 잔에 있던 음료가 그 충격으로 조금씩 튀고 상대 잔 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 행여 상대의 잔에 독을 넣었다면 내 잔에도 그 독이 들어갈 수 있으니 아무래도 건배를 할 때 조심하게 되고 상대의 눈보다는 술 잔을 더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술 잔을 부딪힐 때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는 것이 자신감이나 정직함을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이 가설에도 7년의 나쁜 섹스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유야 어찌됐든 부케를 넘겨 받은 사람이 3개월 안에 결혼을 못하면 3년 동안 결혼을 못한다는 우리나라 미신에는 콧방귀를 뀌며 웃는 독일인에게 서툰 건배가 불러올 7년의 나쁜 섹스는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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