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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Mar 29. 2019

독일의 또 하나의 자부심 - 슈납스(Schnapps)

한국인에게 소주가 있다면, 독일인에겐 슈납스라 불리는 증류주가 있다. 독일에서 회사원으로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거래처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은 날이었다. 맥주로 시작하여 저녁과 후식을 먹고 입가심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배가 너무 불러 숨을 헉헉대는 중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거래처 파트너는 “소화가 잘 안 되는구나! 이럴 때 마시는 전통 술이 있지- 기다려봐” 하더니 길고 날씬한 잔에 나오는 높은 도수의 술을 한 잔 주문해 주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둥 주로 독일 권 나라의 사람들이 주로 음식을 다 먹은 뒤 소화를 위해 마시는 것이라는 설명도 함께 덧붙여주었다. 의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높은 도수의 술이 장기 운동을 더 활발히 자극해 위에서 더 많은 미즙이 생성되고, 그 미즙이 장으로 흘러 소화를 돕기는 한다니 이 술의 효과가 다행히 완전 거짓말은 아닌가 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술이 어디있을까만은..) 


슈납스 종류는 크게 배, 사과, 체리 같은 과일로 만든 옵스틀러(Obstler, 과일주), 허브로 만든 크로이터리코어(Kräuterlikör,허브주)가 대표적이다. 보통 식당에서 슈납스를 달라고 주문하면 옵스틀러를 주거나, 어떤 종류의 슈납스를 원하는지 물어본다. 처음 내가 마신 슈납스는 남부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배로 만든 옵스틀러였다. 그 슈납스를 마셨을 때의 기분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온몸이 그 강한 술맛에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소주처럼 뒷맛이 빠르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뒷맛이 참 오래도록 입안에 머물러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술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고민하고 음미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았다. 특히 슈납스는 대게 실온에 보관하여 미지근한 상태의 술로 마시는데 그래서인지 더 그 고유의 술맛이 금세 입안에 퍼진다. 시원하고 상큼하게 마시는 우리 매실주를 독일인에게 소개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궁금함이 남는다. 매실이야 말로 소화에는 으뜸인데! 


멕시카너(Mexikaner) 

멕시카너는 내가 마셨던 슈납스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이었다. 어찌 됐든 술맛이 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들이킨 그 한 잔의 샷에는 상상하지 못한 타바스코의 향이 깊게 배어 있었다. 토마토와 칠리를 으깨어 브랜디와 섞어 끓여낸 것 같이 걸쭉한 알코올 수프의 맛이랄까, 한 모금을 어렵사리 삼키고 나서야 왜 이름이 멕시카너인지 이해가 되었다. 어떤 친구는 멕시카너를 이렇게 묘사했다. '마시고 먹다 남은 인스턴트 스파게티가 그릇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알코올을 부어 닦아낸 뒤 마시는 것 같다'라고. 


킬러피취(Killepitsch)
독일에 있는 슈퍼를 가면 계산대 종업원 바로 옆으로 담배를 뽑는 기계와 200ml짜리의 작은 술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 번에 딱 마실 수 있는 샷 용량으로 클럽에 가기 전 젊은이들이 얼른 사서 홀짝 마시는 술이다. 이 중에서 어딜 가든 아주 자주 볼 수 있는 술에는 킬러피취(Killepitsch)라는 뒤셀도르프 출신 슈납스가 있다. 이 킬러피취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만들어졌는데 이름은 전쟁 중에 지어졌다고 한다. 폭탄이 하늘 여기저기서 떨어질 때, 바 주인장이 ‘우리가 여기서 죽지 않고(killed) 살아남는다면, 그걸 기념하기 위한 술(pitch)을 만들어 팔 거야’라고 한 데서 유래했단다. 이 술이 처음 팔린 곳은 뒤셀도르프 알트슈타트(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Et. Kabüffke이다. 지금도 아주 뒤셀도르프 지역 주민 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작은 펍으로 원조 그대로의 샷을 맛볼 수 있어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클럽에서 그렇게 마셔대던 예거가 독일 술이었다니 
처음 예거마이스터를 접한 것은,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그렇듯 클럽이었다. 예거는 2000년 초반부터 파티 술로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예거마이스터라는 술과 에너지 음료를 합쳐 만든 예거밤이라는 혼합주의 돌풍은 엄청났다.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달콤 쌉싸름한 외국 술이 어떻게 우리나라까지 이렇게 온 건지는 몰랐지만 샷 몇 잔이면 쏟아지는 잠도 물리치고 심지어 술에 빨리 취할 수도 있다는 기쁨에 이런 술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생각으로 참 많이도 마셨더랬다. 오늘날까지 예거마이스터는 단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허브 주이다. 


독일에 온 뒤 처음으로 예거마이스터가 독일 술이라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예거마이스터를 마시는 독일인을 한국이나 미국처럼 흔하게 볼 수 있지도 않았고, “예거마이스터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독일인도 참으로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런 걸 도대체 왜 마셔?”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실제로 예거마이스터의 총판매 중 고작 20%만이 독일 내에서 팔린다고 하니 이렇게 세계적 인기를 끄는 술 치고는 자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빠르게 센 술을 마셔 취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 많은 양의 맥주를 마시며 파티를 즐기는 독일인의 문화와 예거마이스터의 우리가 그동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거마이스터를 샷으로 마셔 본 사람이면 이 찐득거리는 한약재 같은 술이 도대체 어떻게 20대, 30대의 파티용 술이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독일인들이 가장 언급하기 싫어하는 나치의 역사도 담겨 있다. 사실 예거마이스터의 초기 타겟층은 젊은 파티인들이 아니었다. 예거마이스터(사냥마스터)라는 이름이 증명하듯 첫 타겟 고객은 사냥꾼이었다. 예거마이스터가 출시되던 시절 볼펜뷔텔에는 나치 당의 높은 권력층이 사냥을 위해 즐겨 찾던 언덕이 있었다. 그중, 헤어만 괴링이 특히 사냥을 좋아했는데 나치가 권력을 잡은 1933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뒤 각 지역의 뛰어난 사냥꾼들을 불러 호화 파티를 열었다. 영리한 쿠르트 마스트는 이런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이 허브 주의 이름을 사냥 전문가로 짓고, 사냥 수호신 후버투스를 연상시키는 사슴을 로고로 만들어 시장에 진입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쿠르트가 나치를 후원했다고 비난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 다시 고비를 맞은 예거마이스터. 이번엔 쿠르트의 조카인 귄터 마스트가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침으로서 이 허브 주를 다시 한번 살려낸다. 지역에서 매우 유명한 축구 클럽을 후원하며 독일에서 처음으로 스포츠 마케팅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었다. 대중에게 예거마이스터를 알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예거마이스터는 중년 이상의 남성 고객이 찾는 술이었다. 젊은 층은 여전히 예거마이스터를 외면했다. 


이를 젊은 사람들의 파티 술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명망 높은 무역가, 프랑크라는 사람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나이 든 독일인들이 이 녹색 병의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어떤 잠재력을 본 건지 1974년 처음 예거마이스터를 수입하여 뉴욕과 뉴올리언스에 있는 바에서 팔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국적이고 새로운 문화를 찾던 뉴요커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보드카나 위스키에서 보지 못한 짙고 희한한 색의 술, 녹색의 네모난 병, 그리고 뿔 사이의 십자가를 빛내고 있는 사슴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신기했던 모양인지 술 안에 엘크 피가 들어간다는 등의 소문까지 퍼지며 대학생들 사이에 더욱 인기 있는 ‘새로운’ 술이 되었다. 그리고 레드불이라는 에너지 음료가 나온 1997년 이후, 언제 어떻게 발명된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이 레드불과 예거마이스터를 섞어 마시기 시작한 것이 캘리포니아를 거점으로 미국 전체에 퍼져 다른 나라까지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 예거밤의 출생 스토리이다. 회사의 마케팅 전략과 전혀 관계없이, 생각지도 못한 미국에서 일어난 작은 움직임이 오늘날까지 회사를 성장시킨 비결이 되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전 03화 둘도 없이 유명한 옥토버페스트의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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