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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pr 05. 2019

맥주만큼 대단한 독일 소시지 이야기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음식 중에는 에센뽀득과 프랑크소시지가 있었다. 독일이란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 지도 잘 모르던 때였지만 밥상에 올라오는 소시지 반찬에 붙어 있는 이 맛있는 음식 포장지에 ‘독일 고유의 조리 공법을 쓴’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그저 ‘아~독일은 소시지를 잘 만드는 나라구나’ 정도로만 인식했었다. 그리고 독일에 간 뒤 지인 하나가 “독일은 소시지가 유명하죠? 에센뽀득, 프랑크소시지 그리고 비엔나소시지는 뭐가 다른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그 소시지 브랜드의 이름이 독일의 도시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 이름들이 부르기 좋은 도시 이름이라 붙여진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다른 소시지 조리 방법, 재료, 크기 등의 특징이 녹아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소시지는 맥주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식문화가 분명했다. 


한국인에게 치맥이 있다면 독일인에겐 단연 소맥이 있다. 짭조름하고 포동포동한 소시지에서 터져 나오는 육즙과 고기를 씹고 있으면 별 수 없이 맥주 생각이 난다. 우리가 닭을 조리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듯 독일인들도 소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다. 소시지 하나에 들어가는 칼로리가 식사 한 끼나 마찬가지라고 소시지를 되도록 멀리하는 독일인들도 있지만, 거리를 걷다 그릴에서 구워진 소시지 냄새를 맡고 주문하지 않을 대단한 의지의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느 독일 식당이나 축제, 파티를 가든 소시지는 마치 기본 값처럼 준비되어 있다. 


1200개가 넘는 종류의 소시지   

독일에만 존재하는 소시지 종류가 무려 1,200개라고 한다. 세계 어떤 나라에 이렇게 한 가지 음식에 천 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숫자다. 소시지 종류는 기본적으로 조리 방법, 소시지 가공에 들어가는 고기와 양념 재료 그리고 소시지가 만들어진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중 기본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한다. 

복부어스트(Bockwurst). 우리가 가장 흔히 먹는 에센뽀득같은 녀석이다. 짧은 시간 끓는 물에 데치거나 수증기로 찌는 방식으로 조리되는 소시지다. 독일인들은 이 소시지에 신선한 머스터드소스를 듬뿍 발라 먹는다. 이 머스터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것처럼 단맛이 강하지 않고 알싸한 맛이 훨씬 강해 소시지의 느끼함을 단번에 잡아 주어 굉장히 궁합이 좋다. 또한 이 소시지를 잘게 썰어 병아리콩과 함께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코흐부어스트(Kochwurst). 직역한 대로 한 번 조리가 되어 나온 소시지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레버부어스트(Leberwurst)다. 레버 부어스트는 돼지나 손의 간을 넣은 소시지인데, 스프레드처럼 부드러운 형태로 판매되기도 하고 어려서 도시락에 싸먹던 분홍 소지처럼 동그랗고 기다란 모양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간 특유의 냄새를 잡기 위해 양파 혹은 허브 다진 것을 섞어 만들기도 한다. 베이커리에서 파는 샌드위치에 연분홍의 얇은 소시지가 여러 장 들어가 있다면 바로 레버부어스트일 확률이 높다.  


브랏부어스트(Bratwurst).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시지는 바로 그릴에 구워 고기 육즙과 풍미가 온데 퍼지는 이 구운 소시지다. 날이 따뜻해지면 비어가든에서는 야외 가든에 커다란 그릴을 놓고 소시지를 구워대며 엄청난 냄새로 행인들을 유혹한다. 바게트 식감의 작은 빵을 반으로 잘라 빵의 두세 배쯤 되는 길이의 소시지를 넣어 핫도그처럼 먹는 것이 가장 흔히 브랏부어스트를 먹는 방법이다. 온갖 소스와 채소, 피클을 넣어주는 다른 나라의 핫도그와 달리 들어간 것이 고작 빵과 소시지뿐인데, 소시지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인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길이 없다.  


독일의 대표 거리 음식 - 커리부어스트(카레 소시지)  

한국에 온 뒤 며칠이 지나면 가장 생각나는 음식은 다름 아닌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다. 그릴에 잘 구운 소시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카레 케첩 맛이 나는 소스를 듬뿍 부어 먹는 독일의 대표적 거리 음식이다. 한 때는 이 감칠맛 나는 소시지에 중독이 되어 점심때마다 동료와 회사 근처에 있는 키오스크(간이 상점)에 달려가 사 먹었는데 그 덕에 한 달 만에 3킬로가 불어 나 후회했었다. 고작해야 단 맛이 강한 토마토소스에 카레 가루를 넣었을 뿐인데 어찌나 중독성이 강한지 한국에서 술을 마실 때면 그 맛이 자꾸 그리워졌다. 

베를린에는 이 음식을 파는 키오스크나 패스트푸드 식당에 가면 간판이나 메뉴에 ‘우리가 원조 커리부어스트’라고 주장하는 곳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원조 보쌈', '진짜 원조 보쌈' 하는 것처럼 베를린 사람들도 원조로 경쟁하는 것이 재미있다. 어찌 됐든 커리부어스트가 이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이 적어도 베를린 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베를린에서 여행을 하다 허기가 져 잠시 들린 작은 비어가든에서 맥주를 시켜 놓고 담소를 나누는 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통에 ‘커리부어스트의 역사’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1949년, 2차 대전 이후 한 영국 군인이 독일에 카레 가루를 가져온 것이 시초가 되었다. 당시 베를린의 샬로텐부르크(Charlottenburg)라는 지역에서 키오스크를 운영하던 헤르타 호이베어라는 독일 여성이 있었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소시지에 뿌려먹는 토마토 소스에 카레 가루를 뿌렸는데 맛을 보니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최적의 배합을 만든 뒤 소시지에 부어 먹는 소스로 ‘Chillup’이란 이름을 붙여 상점에서 팔기 시작했고 큰 인기를 끌며 작은 식당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현재는 많은 식당에서 각자의 레시피대로 카레 소스를 만들어 팔고, 슈퍼에서도 병에 담긴 카레 소스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국민 간식이다. 

최근 커리부어스트 트렌드는 매운 레시피다. 베를린의 유명 커리부어스트 프랜차이즈는 이 매운맛을 3-5가지 정도로 구분했는데 이 것이 인기를 끌자 프랑크푸르트에는 매운맛을 10가지로 구분해 판매하는 커리부어스트 매점이 생겨 이목을 끌었다. 물론! 불닭볶음면을 신난다고 먹어대는 한국인에게 그저 칠리 파우더를 잔뜩 추가한 커리부어스트는 제 아무리 매운맛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다. 당당하게 아마추어 독일인들을 제쳐두고 가장 매운맛을 선택 후 한 접시 싹 비워내면 살짝 뿌듯하기까지 하다. 베를린의 커리부어스트가 독특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커리부어스트를 하나 달라고 주문을 하면 그곳에서는  “창자가 있는 것을 드릴까요 없는 것을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즉 소시지 겉을 둘러싼 창자 껍질이 있는 것과 없는 소시지를 선택할 수 있다.  


아무리 커리부어스트를 예찬해도 ‘그래 봤자 케첩 소시지인걸!’ 하고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있을까 노파심이 들었던 모양인지 베를린에는 커리부어스트 박물관까지 생겼다. 솔직히 소시지, 특히 이 커리부어스트에 대해 말할 것이 얼마나 많다고 이런 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우스웠다. 처음 방문했을 때 심지어 무료도 아닌 11유로씩이나 받는 입장료에도 충격을 받았다. 입장권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차 문 앞에 놓인 소시지 그림의 기계를 보았다. 스크린을 보니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커리부어스트 종류를 알려 드립니다.’라고 쓰여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엄청나게 영리한 소시지 심리테스트인가 보다 하는 마음에 스크린이 묻는 질문에 차근히 대답을 해 나갔다. 결과가 나오기 전! 기계는 나에게 말했다. ‘5유로를 넣어 주시면 결과를 알려 드립니다.’. 엄청난 배신감이었다. 내 자존심에 고작 내 성격과 잘 어울리는 소시지를 알아보겠다고 5유로를 낭비할 수 없어 뒤돌아 박물관을 빠져나왔지만 이 박물관을 지은 사람의 열정만은 인정해야 했다. (몇 년 뒤 결국 이 박물관을 입장하게 된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소시지 박물관보다는 공장을 견학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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