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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pr 12. 2019

독일인들의 인생 거리 음식

독일인들에게 소시지를 빼면 감자만 남는다는 말. 과장이 아니었다!  

사실 독일 거리 음식의 대표주자는 단연 감자튀김이다. 찐 감자, 구운 감자, 감자 뇨끼, 감자 빵까지 매끼 감자를 먹고도 감자튀김을 주전부리로 먹는 독일인들을 보면 우리만 탄수화물 중독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든다. 독일에서 감자튀김은 포메스(pommes) 또는 포메스 프리테스(pommes frittes)라고 불린다. 어원대로 직역하면 튀긴 사과라는 뜻인데, 아마도 유럽의 감자가 너무 부드럽고 달콤하여 땅 속의 사과 같아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독일인들은 이 감자튀김에 케첩보다 마요네즈를 찍어 먹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이 감자튀김은 케밥과 독일의 거리 음식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이토록 흔한 음식인데, 최근에는 이 감자튀김을 주 메뉴로 하는 감자튀김 전문 프랜차이즈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특별하다. 어느덧 Frittenwerk, Pommesfreunde, Bobby&Fritz, Pommesfrites까지 브랜드가 많이 늘었다. 본인들이 개발한 다양한 소스를 제공하거나, 감자튀김 위에 잘게 다진 고기 또는 치즈를 얹어주는 등 기존의 단순한 감자튀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물론, 가격은 그 덕에 일반 감자튀김보다 조금 비싸다. 게다가 감자튀김은 본래 간이음식점에서 사서 서서 먹거나 돌아다니면서 먹는 그야말로 거리 음식이었는데 이 프랜차이즈들은 카페나 일반 레스토랑처럼 공간을 멋스럽게 꾸미고 여러 개의 테이블도 구비하여 앉아서 편하게 먹고 가는 고급 간식으로 감자튀김을 대하는 인식마저 바꾸고 있다.   


본래 독일은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비즈니스가 미국, 영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공항이나 기차역에 미국 패스트푸드나 커피 전문점이 하나씩 있을 뿐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들이 아주 오랜 시간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행인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그런데 어느덧 감자튀김부터 시작하여 빵, 이탈리안 레스토랑, 케밥, 햄버거 가게까지 조금씩 프랜차이즈가 거리를 점령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많은 독일인들도 프랜차이즈로 음식의 맛이 획일화되고, 도시의 거리가 어딜 가든 비슷해지는 데다 무엇보다 지역의 작은 식당들이 점점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것을 많이 우려하고 있지만 이런 프랜차이즈의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케밥은 터키 음식이 아니라 독일 음식이다? 

케밥은 독일에서 두 번째로 흔한 거리 음식이다. 매일 거의 600톤이 넘는 케밥용 고기가 팔리고, 연간 판매량이 3백5십억 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 엄청난 양이다. 게다가 맥도널드나 버거킹의 햄버거와 비교하여 값도 더 저렴하고 재료도 더 나쁘지 않으니,독일내 패스트푸드점 매출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형편없는 데는 이 케밥이 큰 몫을 한다. 

독일인 동료와 독일의 음식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아시아에는 길거리 음식도 아주 다양하고, 밤늦게 클럽에서 놀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무척 많은데 독일에는 고작해야 기차역 근처나 시내에 열어있는 케밥과 감자튀김이 전부인 것 같다고 시큰둥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논쟁에 불을 붙이는 말을 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 케밥이란 것도 독일 음식이 아니라 터키 음식이지 않니~”라고 말이다. 케밥 집에 들어가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언제나 터키 사람들이었으니, 나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이 말을 듣고는 놀란 토끼 눈으로 반박을 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형태의 되너(Doener) 케밥은 터키 음식이 아니라 엄연히 독일 음식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서로가 맞다고 증명하기 위해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결국 위키피디아의 정의대로 케밥은 터키에서 처음 발명되었고 독일에서 되너로 발전, 변형되어 널리 알려졌다고 마무리 짓기로 했다. 지금도 길가는 독일인들을 붙잡고 물으면 독일에서 먹는 오늘날의 케밥은 독일에서 시작된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이런 논쟁은 처음 터키에서 개발되었다고 기록된 케밥과 독일에서 먹는 케밥에 조금 차이가 있다보니 종종 발생한다. 본래 터키 음식으로 알려진 케밥은 커다란 꼬챙이에 끼워 구워진 양고기 덩어리를 잘게 잘라 접시에 밥, 야채와 함께 담아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독일과 인근 유럽 국가에서 즐기는 되너 케밥은 먹을 수 있게 고기와 야채를 두 룸이라고 불리는 빵 사이에 가득 넣는 형태이다. 그리고 양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 소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터키 되너 생산 협회 회장은 두룸에 넣어 먹는 되너 케밥은 독일에서 처음 발명된 것이 맞다고 확언을 하여 논쟁에 불을 지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카디르 누르만이라는 20대의 터키인이 1960년 슈투트가르트로 이민을 온 뒤 처음 되너 케밥을 발명했다. 몇 년 뒤 카디르는 베를린으로 이주 뒤 인쇄업에서 일을 했는데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패스트푸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카디르는 자신의 고향 터키에서 먹는 전형적인 케밥을 보다 먹기도 좋고 들고 다니기도 편하도록 터키식 빵에 넣어 샌드위치 형식으로 변형하여 웨스트 베를린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바로 되너의 탄생이자 되너가 베를린의 대표 음식이 된 이유다. 더불어 터키계 이민자들이 독일 사회에 잘 정착하여 음식 문화를 형성하고, 또 독일 문화와 융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케밥집을 꼽으라면 단연 무스타파 야채 케밥(Mustafa’s Gemuese Kebab) 집이다. 워낙 유명하여 문을 여는 시간부터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어떤 도시의 물가를 알고 싶으면 케밥의 가격을 보면 된다고 하는데 무스타파 케밥은 베를린의 물가가 조금씩 올라감에도 불구, 여전히 굉장히 저렴한 3유로 가격에 거대하고 신선한 케밥을 제공하여 사랑받고 있다. 무스타파 케밥은 이름 그대로 고기를 넣지 않은 야채 100% 케밥으로 유명해졌다. 이 야채는 당일 들여온 신선한 야채를 큼지막하게 썰어 기름에 튀긴다. 그 위에 두꺼운 치즈와 잘게 부순 치즈를 아낌없이 얹어 넣어 주는데 양이 워낙 많아 처음 한 입을 베어 먹는 데 큰 용기와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첫 데이트 음식으로는 아주 위험하다. 아무리 깨끗이 먹으려고 해도 줄줄 쏟아져 내려오는 야채를 피할 수 없으니. 이 작은 케밥 집은 건조된 야채, 야채 모형, 그리고 우리나라의 돈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돈도 벽에 마구 달려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이 원조 집을 모방한 야채 케밥 집이 여러 곳 생겨났지만 손님들은 언제나 안다. 어느 곳이 진짜 원조인지. 


독일인의 아이스크림 사랑 

독일에서 처음 맞는 여름,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 무척 사랑했던 아이스크림 브랜드 B사가 그 어딜 가도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에는 이 아이스크림 집이 필요가 없다. 한 블록 넘어 한 블록일 정도로 많은 젤라토 아이스크림 집이 여름이 되면 어느덧 거리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젤라또 원조이지만, 독일인들도 그에 못지않게 아이스크림을 애정한다. 날씨가 조금만 따뜻하고 쾌청해지면 많은 독일인들이 거리에 나와 광합성을 하고 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줄을 선다. 참고로, 독일인들은 줄 서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 아이스크림 집 앞에서는 다들 관대 해지는 모양이다. 낮에 가면 심지어 어린아이들보다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향한 독일인의 사랑은 180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자클레띠라는 이탈리안의 한 가족이 뮌헨에 와 젤라토 스타일의 아이스크림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케밥이 독일 내 터키 이민자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면, 이 아이스크림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독일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초기 비즈니스 중 하나였다. 1900년대 이후 아이스크림 가게는 4천 개 이상으로 급격히 늘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아이스크림 집은 이태리계 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이 아이스크림을 그저 컵이나 콘에 올려 먹는 아이스크림에서 하나의 디저트 문화로 완전히 탈바꿈시켜버렸다. 다른 재료들을 사용하여 웨딩 케이크를 만들 듯 화려하게 장식한 아이스크림을 발명했다. 많은 아이스크림 중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슈파게티아이스라는 놈이다. 아이스크림을 스파게티 면발처럼 뽑아 접시에 놓고, 그 위에 생크림과 딸기잼을 가득 부어 준다. 딱 토마토 스파게티의 모습이다. 아이스크림을 씹는 맛과 크림의 맛이 잘 어우러져 입안에 넣는 순간 ‘이래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와야 하는구나!’ 저절로 깨닫게 된다. 

프랑크푸르트에 30년 동안 아이스크림 집을 운영하던 이탈리안 아저씨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토박이던 친구 어머님은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날씨가 좋은 주말마다 아버지 손을 잡고 가던 아이스크림 집이라 누구보다 이 집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처음 그분이 나를 아이스크림 집에 초대했을 때, 어찌나 열정적으로 그 아저씨가 만드는 아이스크림이 최고인지 설명해주는 바람에 나 역시 왠지 모르게 그 집에 대해 애틋함이 생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돌아가셨고, 물려받을 자식이 없어 아이스크림 가게가 문을 닫게 되었다. 여름 한 철 장사만 해도 남은 1년은 스페인의 따뜻한 섬에서 편안히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가게였지만 그 아저씨가 만들던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가게는 오래도록 문을 닫더니 결국 베이커리 체인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를 알고 친구 어머니는 섭섭함에 대화 도중 눈물을 흘렸다. 1년이 머다 하고 가게가 바뀌는 한국에서는 어려서 먹던 가게가 남아있는 곳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이 독일 아주머니는 어려서부터 늙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 아이스크림 집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희망이 무너져 더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이후에는 다른 아이스크림 집을 갈 때마다, 이 아이스크림 집은 오랫동안 그 동네의 독일 사람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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