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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pr 19. 2019

독일인의 삼시세끼

독일인들과 식사를 할 때면 자주 “한국인들은 하루 세 끼를 어떻게 먹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전통적으로는 아침, 점심, 저녁이 크게 구분 없이 밥과 서너 가지의 반찬을 먹는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도대체 그것을 매번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묻는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준비 시간이 어지간하면 15분을 넘기지 않는 독일인에게 한식이란 참으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예술과도 같다. 이 와중에 매 끼니 밥을 짓고, 반찬을 달리하여 먹는다니 비교적 끼니를 간단히 해결하는 독일인에게 한국인은 밥 먹는 것조차 대단히 부지런한 민족으로 인식될 것 같다. 최근에는 한국도 맞벌이 가정이나 1인 가정이 늘어 아침은 대게 간단히 때우고 점심은 밖에서 먹으며 나머지 한 끼, 저녁은 되도록 요리하여 따뜻하게 먹는다고 덧붙여 설명하면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독일 전통 음식이라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다양한 고기 음식은 사실 독일 가정집에서는 잘 요리하지 않는 것들이다. 슈니첼, 브라텐, 학센을 일반 주방에서 만들기에는 일이 많고 조리 시간도 너무 길다. 그래서 대게 음식은 레스토랑이나 비어가든에서 외식할 때 또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할 때 먹곤 한다. 평소에 먹는 음식 중에는 오히려 독일 음식이 아닌 것들 것 훨씬 많다. 예컨대 간단한 파스타와 샐러드, 샌드위치, 플람 쿠헨(Flammkuchen) 등이다. 자녀들의 독립이 일찍 시작되는 독일 문화 특성상,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평소에는 식사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한 번의 식사에 대게 메인 메뉴 한 가지씩만 준비하다 보니 음식 쓰레기나 설거지할 접시도 적게 나와 뒤처리도 효율적이다. 

독일인들은 아침 식사를 무척 사랑한다. 바쁜 평일에는 진하게 내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빵 하나 또는 뮤즐리로 아침 식사를 대체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 천천히 오래도록 풍부한 아침 식사를 즐긴다. 오전 일찍 가족, 친구들과 집 또는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이 독일인들이 주말을 시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에 브런치 레스토랑이 있는 것처럼 독일에는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카페가 인기가 많다. 이 아침 식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독일의 빵, 다양한 치즈와 햄이다. 아침 식사용으로 먹는 빵은 동그랗고 작은 바게트 같이 생긴 브룟쉔(Broetchen, 지역에 따라 Sammeln으로도 불림)이라는 빵이다. 오븐에 잘 구운 이 빵은 겉에는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빵 전용 칼로 반을 뚝 잘라, 부드러운 면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잼, 치즈, 햄, 야채 등 준비된 재료 중 원하는 것을 얹어 먹는다. 사실, 나는 처음에 빵 칼질을 잘 못하여 여러 차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부드러운 속 빵이 다 튀어나오거나, 절반으로 잘 자르지 못하거나 또는 자르는데 다른 사람보다 유독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버터를 직접 발라먹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한국에 사는 동안 ‘버터는 엄청나게 살이 찌는 좋지 않은 지방이다’ 인식에 이미 거부감이 잔뜩 있어서, 처음엔 빵에 버터를 바르지 않거나 아주 소량을 발랐는데 이때마다 빵을 맛있게 먹을 줄 모른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 모습이 답답했던 지, 한 번은 남자 친구가 빵에 버터를 아낌없이 마구 바른 뒤 고다 치즈를 얹어준 뒤 먹어 보라고 건넸다. 정성스럽게 만든 것을 거절할 수 없어 한 입 베어 문 순간, 아 이것이 신세계라는 것을 느꼈다. 내 사랑 버터! 이 버터는 한국에서 먹었던 서울 우유 버터나 마가린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빵에 바르는 순간 사르르 녹아 버리는 부드러움과 엄청난 고소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굳이 버터가 필요하지 않은 부드러운 빵에도 버터를 아낌없이 발라 먹고도 지방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훗!  


아침 식사에 삶은 계란도 빠질 수 없다. 독일에 가기 전엔 삶은 계란을 먹는 방법은 만국 공통인 줄 알았다. 잘 삶은 계란을 딱딱한 표면에 탁탁 쳐 껍질을 모두 벗기고 소금을 조금 찍어 입에 쏙 넣어 먹는 것이야 말로 삶은 계란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독일에서는 부드럽게 삶아진 계란을 몸이 반쯤 잠기는 작고 오목한 계란 그릇에 하나씩 쏙 담아 준다. 계란 그릇도 놀라운 마당에 계란 전용 수저와 소금을  준다. 역시 독일인들은 하나의 용도에 최적화된 도구를 만드는 데 선수다. 전용 수저로 계란 머리를 살짝 쳐 금이 가게 만든 후 계란 위 1/3 정도만 껍질을 벗기고 그 안을 우아하게 파 먹는 것이 독일인들이 삶은 계란을 먹는 정석이다. 한 수저 파먹고, 소금 통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소금을 한 첨 뿌린 뒤 또 한 수저 파 먹는다. 이런 것을 알리 없는 나는 처음에 단정하게 담겨있는 계란을 굳이 그릇에서 뺀 뒤, 테이블에 내리쳐 껍질을 다 까고, 그 껍질을 계란 그릇에 예쁘게 담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난 정말.. 그 그릇은 껍질을 담으라고 있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계란 그릇이 귀여워 탐이 나긴 해도 껍질이 다 까진 계란을 한 입에 쏙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일인들은 본래 전통적으로 점심에 따뜻한 음식을 먹고 저녁은 간소하게 먹었다. 그러나 최근 트렌드는 점심도 비교적 간단하게 먹고 저녁은 집에서 조리해 먹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직장인이나 학교에 다니는 경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선호한다. 아직 반나절이나 남아있는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고 되도록 먹는 데 소비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집에서 간단히 도시락을 싸오거나, 대형 슈퍼에 있는 샐러드바 또는 베이커리를 이용한다. 좀 규모가 큰 회사와 학교에는 뷔페식의 카페테리아가 구비된 곳이 많다. 왠지 이런 곳에서는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최대한 많이 먹어 본전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독일인들은 생각보다 많이 먹지는 않는다. 그저 본인이 먹는 샐러드 종류 하나, 주 메뉴 한 두 가지 정도를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담아 깨끗이 비워낸다. 폭식이나 과식, 많이 먹는 것을 미련하다고 여기는 데다 되도록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는 웰빙 식사 문화가 독일 전반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먹방이 유독 독일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선지 모르겠다. 독일인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오히려 본인들보다 훨씬 많이 먹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인들을 보고 도대체 왜 한국인이 더 날씬한 건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르곤 했는데 아마 식사량 자체보다는 너무 맛있어 피할 수 없는 독일의 맥주와 초콜릿, 감자튀김 같은 간식이 워낙 고칼로리라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독일인은 아플 때 어떤 음식을 먹을까?  

누구든 살면서 무척 서러워질 때는 아플 때이다. 몸이 아파 어디를 가지고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끼니라도 챙겨줄 사람이 없으면 엄청난 외톨이가 된 듯 외롭고 우울해진다. 친구나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옆에 꼭 붙어 계속 걱정해주고, 약도 사다 주고 안 먹겠다고 손사래 쳐도 죽이라도 먹으라며 상을 차려주는 한국인들과 달리 독일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본인이 아플 때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스스로 조심하기도 하고, 반대로 아플 때 성가시게 하는 사람 없이 혼자 푹 쉬고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누가 아프다고 하면 그저 ‘네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네가 부를 때까지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라고 이야기하고 조용히 기다려줄 뿐이다. 이런 독일 문화에서 나를 무척 감동시킨 친구가 있었다. 뮌헨에 살 때 함께 살던 룸메이트인데 이틀 째 몸살이 된통 걸려 침대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내게 먼저 다가와 비타민 음료를 사다 주고 따뜻한 음식도 만들어 주었다. 그 친구가 만들어 준 음식을 처음 보고 한국의 죽과 무척 비슷하게 생겨 놀랐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배려해서 쌀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 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에서도 아플 때 종종 만들어먹는 달달한 죽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공통점이 참 많다는 걸 느꼈다. 


이 죽의 이름은 바로 밀시라이스(Milchreis)이다. 쌀에 물 대신 우유를 부어 오래도록 끓인 뒤, 설탕과 계피를 넣어 간을 맞춘다. 단 맛 덕에 주식보다는 디저트 용으로 더 많이 먹는 음식이지만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어린 아이나 환자들에게 자주 제공되기도 한다. 씹는 맛이 죽과 푸딩 중간 정도 되어 목 넘김이 무척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어 복통이나 감기에 모두 좋기 때문이다. 쌀로 탄수화물 섭취를 충분히 하니 에너지 공급에도 좋고 칼슘도 풍부하여 여타 영양은 없고 달기만 한 디저트보다는 훨씬 건강한 디저트이자 회복 음식으로 손꼽힌다. 

참고로 독일인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주로 먹는 동그란 쌀은 잘 먹지 않는다. 주로 식사용으로는 바스마티처럼 가볍고 긴 동남아시아 원산지 쌀을 많이 먹는다. 독일인들이 동그란 우리 식 쌀을 이용할 때는 바로 앞서 말한 죽이나 리소토 같이 점성이 높아야 하는 음식을 만들 때이다. 독일의 마트에서 한국식 쌀이나 리소토 쌀을 사려면 값이 다른 쌀보다 비싸다. 밀시라이스를 사다가 밥을 지으면 저렴한 값에 한국식 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팁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독일 음식, 린젠 아인톱프(Linseneintopf)도 독일인들이 아플 때 먹는 음식 중 하나다. 독일식 렌틸 콩 수프이다. 냄비 한 가득 재료를 넣어 끓이는 수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독일 수프는 대게 치킨 스톡이나 야채 스톡으로 베이스 국물을 낸다. 식당엘 가도 사실 이 국물을 직접 우려내는 곳은 거의 없고 대게 슈퍼에서 파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국물에 린젠 콩, 양파, 당근, 감자를 잘게 썰어 넣은 뒤 재료가 모두 잘 읽어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끓이면 된다. 조리법도 간단하지만 한 그릇만 먹어도 콩의 단백질과 영양분을 온전히 다 섭취하는 것처럼 든든하여 왠지 없던 면역력도 다시 불끈 생길 것만 같다. 게다가 렌틸 콩은 장에도 좋아 배가 살살 아플 때에도 이 수프를 먹으면 화장실에서 아픈 뱃속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 

독일에도 육회가 있다 – 메트 (Mett)   

에센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함께 일하던 상사 중 한 명이 쾰른 출신이었다. 이 상사가 50번째 생일을 맞아 동료들과 함께 축하하기 위해 엄청난 요리를 손수 준비해 회사로 들고 온 적이 있었다. 이 날을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분이 준비한 요리의 충격적인 비주얼과 이틀이 지나도록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냄새 때문이었다. 쉬어 터진 김치가 펑하고 터져 온 방을 채웠을 때의 냄새에 맞먹을 만한 강력한 놈이었다. 이 음식은 바로, 독일의 육회 ‘메트(Mett)’이다. 

메트는 잘게 다져진 돼지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넣어 간을 하고, 마늘과 캐러웨이라는 허브, 그리고 생 양파를 잘게 썰어 고기와 섞어 만든다. 마늘과 양파가 생고기와 합쳐졌으니 그 향은 이미 맡아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메트를 일반적으로 빵이나 짭조름한 비스킷에 발라 먹는다. 남부보다는 북부에서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는 음식이다. 독일 사람들 중에서도 이 메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대게는 중년의 남성들이 파티나 뷔페 음식으로 좋아한다. 


독일이 내륙 국가이다 보니 해안이 가까운 북부지역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익히지 않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의 초밥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고작해야 몇 년 되지 않았고 그전에는 대부분 기름을 사용해 굽거나 바짝 튀기는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독일에 육회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메트의 놀라운 점은 바로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소고기는 대충 익혀 먹어도 되지고기는 아주 바짝 익혀서 먹어야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이 메트가 안전한 음식인지에 대해 어쩐지 계속 찝찝한 느낌이 들어 한 입을 베어 무는데 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심지어 동료 중 하나는 오스트리아에서 상한 메트를 먹고 23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세균 증식 위험이 커 신선한 고기로 당일 만든 것만 판매해야 하고, 반드시 2도 이하의 온도에서 보존해야 한다. 내 상사도 새벽 5시부터 만든 메트를 큰 크기의 아이스박스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귀하게 사무실로 모셔왔다. 


1950년대에는 이 메트가 파티 음식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메트를 잘 치댄 후 고슴도치 모양을 만들고, 프레첼 스틱 과자나 길게 썬 양파를 그 위에 마구 꽂아 고슴도치의 털처럼 장식한 뒤 눈과 코를 올리브로 만들어 장식하면 메티 겔(Mettigel)이라는 파티용 음식이 완성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사진이든 실물이든 이 메트 고슴도치를 처음 보면 온 몸에 소름이 쫙 돋고 식욕을 잃게 된다. 음식 플레이팅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일인이지만 메트를 손님에게 대접할 때는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추를 큰 쟁반에 펼쳐 그 위에 메티 겔을 올려놓아 잔디 위에 있는 고슴도치를 묘사한다. 날 돼지고기를 먹는 것도 외국인으로서는 큰 용기인데, 굳이 고슴도치까지 직접 헤집어 먹게 해 주시니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사실 직접 맛을 보면 양파와 마늘 향이 워낙 강해 고기의 맛이 많이 느껴지지 않고 다진 고기라 부드럽게 넘어가 냄새나 비주얼에 비해서는 훨씬 가벼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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