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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pr 26. 2019

독일인을 똑 닮은 투박한 빵

독일인 친구들에게 아주 자주 묻는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네가 독일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나처럼 산다면 어떤 독일 음식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아?”. 외국에서 살아 본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답은 언제나 하나였다. ‘빵’이다. 영국에서 살다 온 동료는 도대체 어떻게 미국 사람들이 샌드위치용 하얀 식빵이나 베이글 따위를 두고 빵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향수병에 걸려 혼났다는 우스갯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미국으로 망명을 갔던 독일의 작가 베어톨트 브레시트(Bertolt Brecht)도 자신의 일기에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빵을 구할 수가 없다.”라고 불평을 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독일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식은 빵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한국에서는 독일 빵보다 프랑스나 일본의 빵이 훨씬 유명했기 때문에 처음엔 독일 빵에 대해 시큰둥했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먹던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 빵 맛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인지 독일 빵이 더욱 대조적으로 딱딱하고, 거칠고 또 건조하게만 느껴졌다. 뮌헨에서 함께 살던 프랑스 출신 친구와 함께 독일 빵을 놀리기도 했었다. 그 친구는 일요일 아침마다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 프랑스 제빵사가 만드는 베이커리에서 크루아상을 사 오곤 했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집 앞 큰길 빵집에도 크루아상을 파는 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 거야?”라고 물었다가 “나래야, 제발 독일 빵집에서 파는 그것을 크루아상이라고 부르지 말아 줘. 그건 그냥 크루아상의 모양을 흉내 낸 빵일 뿐이야. 진정한 크루아상은 한 입을 베어 물었을 때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하고, 겹겹이 쌓인 빵 결이 느껴져야 하며 밀가루 맛보다 버터 맛이 더 구수하게 입안에 퍼져야 한다고! 내가 이 동네 모든 독일 빵집을 다 갔지만 진정한 크루아상을 파는 곳을 찾을 수는 없었어..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된 빵을 먹고 싶어.” 라며 프랑스 빵 예찬론을 펼쳐대는 통에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 어리석었던 입맛과 달리 독일 빵은 맛과 품질 모든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한 음식이다. 게다가 제과 종류만 해도 3000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다만 프랑스나 일본 빵과는 달리 삼시 세 끼를 책임지는 주식으로서의 기능이 훨씬 크다. 갓 지은 갓 지은 햅쌀밥에 그냥 간장과 참기름만 넣고 비벼 먹어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수 있는 한국인처럼, 독일인들은 갓 구운 빵에 신선한 버터 하나만 있으면 한 끼 거뜬히 해치울 수 있다. 독일의 전통적인 빵들은 따라서 단 빵보다는 짭조름한 맛, 페이스트리 형태의 부드러운 형태보다 커다란 덩어리의 통밀, 호밀 발효 빵이 많다. 독일 빵집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어두운 갈색의 커다란 덩어리 빵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것은 색만 다른 바게트 같고, 또 어떤 방은 그걸로 한 대 치면 머리가 두 조각 날것처럼 단단해 보이기도 하며 그 옆의 빵은 참으로 투박한 시골 청년처럼 별다른 장식이나 화려한 토핑이 없이 단순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큰 덩치에 말도 표정도 많지 않은 독일인을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대표 빵은 밀빵이다. 밀로 만든 하얗고 동그란 브롯셴(Broetchen)을 아침 식사용이나 샌드위치용 빵으로 가장 많이 먹기는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흰색 빵보다는 색이 짙고 포만감이 높은 통호 밀빵이나 곡물빵을 선호한다. 설탕이나 버터가 많이 들어가는 페스트리, 머핀 같은 외국 빵과는 반대로 설탕이나 기름을 거의 넣지 않고 곡물, 소금, 물이라는 기본 재료에 집중하여 재료 맛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다. 이렇다 보니 요즘은 독일 빵이 건강 빵으로 인식되어 세계적으로 조금씩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중 폴콘브롯(Vollkornbrot)은 최고의 건강 빵이다. 정제되지 않은 밀의 함유량이 90% 정도로 높고 기호에 따라 다양한 견과류나 씨앗을 추가한 뒤 발효시켜 굽는 빵이라 한 조각을 먹어도 포만감이 크고 또한 오래 지속된다. 씹는 맛이 거칠고 발효 빵 특유의 신맛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드러운 버터를 바른 뒤 신선한 치즈 한 장만 올려 먹어도 풍부한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어 간단한 점심 도시락이나 피크닉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독일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은 베이커리가 체인화 되고 있다. 예전처럼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터줏대감 제빵사가 전통적으로 선조에게 물려받은 제빵 기술로 빵을 구워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소규모 동네 빵집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냉동 상태로 아침마다 배송되는 빵을 구워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빵집과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을 덤핑 가격에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빵사의 일이 워낙 체력적으로 힘들어 이를 직업으로 선택하려는 젊은이들도 줄어들뿐더러, 대다수의 프랜차이즈 제빵의 경우 매뉴얼대로 빵을 구워 판매하는 사람만 필요한 탓에 독일 전통 빵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또 새로운 빵을 개발하는 제빵 장인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또 다른 고민으로 부각되고 있다. 독일의 우수한 빵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독일 유네스코 위원회는 2014년에 독일의 빵 문화를 무형 문화재로 등록하고 1만 2천 개의 빵집을 제빵 장인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다양한 빵집에서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전통 빵을 만드는 워크숍을 열고, 유튜브 같은 새로운 채널로 빵 굽는 기술을 공유하며 또한 제빵 장인을 양성하는 교육, 실습 과정을 강화하며 빵 지키기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내사랑 프레첼 

내가 출근길에 가장 좋아하는 빵은 버터 프레첼이었다. 프레첼은 라우겐(Laugen)이라는 빵 종류에 속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 권 국가에서 흔하게 먹는 빵이기도 하다. 라우겐은 우리말로 소다수라는 뜻으로 반죽을 소다수에 담근 뒤 꺼내 굽기 특성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거의 3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아침 식사로 매일 이 빵을 먹었는데 단 한 번도 질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짭짤한 맛에 빠져버렸다. 3년 이후에 더 먹지 못한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독일 북쪽 지방으로 이사 가면서 그 빵을 근처에서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프레첼은 바이에른 지역에서 흔하고 유명한 빵이라 어느 빵집을 가도 버터 프레첼이 없는 곳이 없었지만 에센이나 도르트문트에서는 그냥 프레첼은 있어도 버터가 잔뜩 발린 프레첼은 중앙역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가야 구할 수 있는 귀한 놈이었다. 프레첼을 살 때 유의해야 할 것은 프레첼 위에 뿌려진 소금이다. 어떤 빵집은 프레첼 위에 굵은소금이 왕창 뿌려져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소금이 거의 뿌려져 있지 않다. 어찌나 소금이 많이 뿌려져 있는지 나 같은 외국인들은 프레첼을 받자마자 소금을 손으로 떼어 내느라 열심인데 웬만한 독일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금세 다 먹어버리는 것을 보면 놀랍다. 종종 맥주 축제나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행사가 열리는 곳에서 판매되는 프레첼은 엄청난 대왕 사이즈를 자랑한다. 저렇게 큰 프레첼을 어떻게 다 먹나 싶지만 커다란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야금야금 뜯어먹다 보면 어느덧 프레첼이 없어지는 신기한 사태를 경험할 수 있다. 맥주와 프레첼은 소시지 맥주에 버금가는 환상 궁합을 자랑한다.  


버터 프레첼 이후 두 번째로 중독되어 2년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바로 라우겐에케(Laugenecke)였다. 빵집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접한 빵이었는데 한 입을 맛본 순간부터 이미 신세계였다. 마치 크루아상과 버터 프레첼이 결혼해 탄생시킨 자식처럼, 두 빵의 장점만 쏙 담아낸 맛이었다. 결에 따라 얇게 찢어지는 속 빵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했고, 갈색으로 잘 구워진 겉 부분은 씹는 맛을 주면서 고소했다. 독일에 가면 꼭 한 번 먹어보기를 추천하는 빵이다.


베를리너(Berliner) 아니면 크랍펜(Krapfen)? 내겐 그저 도넛  

베를리너는 독일인들이 즐겨먹는 디저트용 빵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한눈에 보면 딱, 미국의 도넛 체인점에서 쉽게 보는 도넛이다. 동그랗게 튀긴 빵 사이에 과일 잼을 채워 넣고 겉에 하얀 파우더 설탕을 가득 입힌 그 녀석 말이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어로 된 음식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았을 때 이 빵을 먹고 싶을 때마다 “있잖아 그 독일 도넛..”이라고 했다가 여러 차례 친구의 원성을 사곤 했었다. “도넛이라니!! 도넛은 미국 빵이고, 정말 다르다고- 네가 말하는 건 베를리너야.”라는 혼쭐과 함께. 아무리 봐도 이름만 다를 뿐 도넛인데, 독일 사람들에게 이 베를리너는 미국의 도넛과는 차원이 다른 독일 전통 페이스트리인가 보다. 그들에게 도넛은 안에 잼이 없고,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리고 겉에 설탕 시럽이 반지르르하게 발린 것이다.

베를리너라는 이름이 익숙해질 때쯤 뮌헨으로 이사를 갔다. 첫 입사 날 동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베를리너를 사러 빵 집에 갔는데 이게 웬일, 빵 이름표에 베를리너가 아니라 크랍펜(Krapfen)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중북부 지역에서는 베를리너, 남부 지역과 오스트리아 같은 인근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크랍 펜이라고 부른단다. 이름이 뭐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친구가 옥토버페스트 구경 차 뮌헨에 왔을 때 빵집에 가 “베를리너 5개 주세요”라고 주문했더니 아주머니가 “그게 뭔데?”라고 물으며 모른 척을 했다. 그제야 진열대에 쓰여있는 이름을 보고 “크랍펜이요”라고 정정하자 아주머니가 알았다는 듯, “아하, 크랍 펜 5개~”라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문을 받아 주었다. 이 친구는 빵집에서 나서자마자 베를리너가 표준 이름인데 무식한 빵집 아줌마가 알면서도 못 알아들은 척을 했다며 이래서 뮌헨 사람은 자존심만 높은 밥맛 없는 사람들이라며 잠시 역성을 냈다. 그 이후로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크랍펜이나 도넛을 먹자고 약을 올렸다. 


베를리너는 여느 베이커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때는 카니발 기간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양쪽에 설탕과 소스가 잔뜩 묻는 탓에 우습게 보여도 괜찮은 카니발에 잘 어울려서 인건 지도 모르겠다. 이 축제 기간에 거리에서 커다랗고 투명한 컨테이너를 목에 걸고 그 안에 든 베를리너를 파는 거리 상인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장사꾼들을 볼 때마다 아주 어렸을 때 큰 나무 쟁반 같은 것에 하얀 찹쌀떡을 가득 담아 목에 걸고 “찹쌀~떡”을 외치며 돌아다니던 아저씨들이 떠오른다. 가장 흔한 필링은 사과, 복숭아, 딸기 잼인데 최근에는 커스터드 크림, 크림치즈, 악마의 유혹 뉴텔라 크림 등 20가지가 넘는 다양한 베를리너를 파는 전문점도 생겨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떤 식당에서는 따뜻한 베를리너에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토핑으로 얹어낸 디저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빵에 아이스크림은 누가 만들어도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인데, 따뜻하고 폭신한 베를리너와의 궁합은 칼로리 폭탄을 무시하고 마구 흡입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단 맛을 자랑한다.


슈네발렌을 아는 한국인이 독일인보다 더 많다 

약 7-8년 전쯤 되던 해에 서울에서 잠시 크게 붐을 일으켰던 독일 전통 간식이 있었다. 당시에 ‘망치로 부셔 먹는 독일 과자’라는 이름으로 명동에서 시작되어 여러 백화점까지 입점한 슈네발렌(Schneeball)이었다. 이 과자가 가장 유행했던 때 서울의 한 백화점에 매장에서 팔린 양이 하루 3000개에 육박했단다. 당시만 해도 독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탓에 독일 로텐부르크의 크리스마스 전통 과자라는 광고 문구 하나만으로도 큰 궁금증을 유발했다. 빵 조각이 얼기설기하게 붙어 공 모양처럼 보이는 이 과자를 가게에서 주는 작은 모형 망치로 깨 부순 뒤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한다는 그 깜찍한 매뉴얼에 독일 사람들은 과자도 참 희한하게 먹는구나 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것 같다. 사실 독일인 중에 슈네발렌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남부 지역 출신 친구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손에 꼽힌다. 마치 경주꿀빵을 먹어본 한국인이 많지 않은 것처럼. 실제로 로텐부르크 방 시 맛본 값비싼 슈네발은 상상처럼 맛있지도 않았고, 먹는 방법도 조잡해 딱 한 번의 구매 후 이별을 고했다. 다른 한국 소비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국 1년 만에 그 화려한 인기를 마감하고 최근에는 어디서도 찾기 어려운 과자가 되었다. 

로텐부르크의 슈네발은 한국에서 팔던 것과 비슷하다. 다만, 좀 더 부드럽다. 그래서 물론, 과자를 깨먹으라고 망치를 주진 않는다. 이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슈네발을 판매할 때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대단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과자 맛은 어렸을 때 별 사탕이 들어 있어 많이 사 먹었던 뽀빠이 꽈배기 과자를 조금 더 눅눅하게 만들어 파우더 설탕을 입힌 그런 맛이라면 정확할 것 같다. 슈네발은 한국말로 풀이하면 눈 공으로 과자의 모양이 마치 눈싸움을 할 때 만드는 공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년 전쯤 북쪽 바덴뷔템부르크에서 알려지기 시작해 과거 결혼식 같은 성대한 파티의 디저트 종류로 즐겨 먹던 과자였지만 지금은 로텐부르크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지역 특산품으로 명을 이어가고 있다. 


여담이지만 독일 사람들에게 로텐부르크라는 이 도시는 슈네발 과자보다 식인 살인 사건으로 훨씬 유명하다. 아르민 마이베스(Armin Meiwes)라는 컴퓨터 수리 기술자가 인터넷으로 자신의 희생양이 되고 싶은 사람을 모집했는데 그가 원한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희생자의 성기를 함께 먹는 것이었다. 브란데스라는 정신 나간 신청자는 마이베스가 그의 성기를 자르도록 허락했고, 그 둘은 날 성기를 먹으려다 실패 후 성기를 기름에 튀긴 후 개에게 주었다. 이후 마이베스는 결국 브란데스를 죽인 뒤 그의 인육을 이후 10달 동안 천천히 먹었다. 이런 상상하기 어려운 살인 사건이 이 도시에서 일어난 것이 고작 17년 전인 탓에 독일 사람들은 그 도시가 왜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어쩐지 슈네발을 생각할 때면 맛있는 과자보다는 이 살인 이야기가 먼저 떠올라 식욕이 뚝 떨어졌다. 


마찌판(Marzipan)이 들어간 디저트 

독일의 디저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마찌판이다. 마찌판을 처음 먹은 것은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였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초콜릿 안에 필링으로 들어있는 것이 바로 마찌판이다. 어떤 이들은 밤을 으깬 것 같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밀가루를 설탕에 절여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마찌판의 주재료는 다름 아닌 아몬드 가루이다. 아몬드 가루에 계란 흰자, 설탕을 버무려 만든다. 초콜릿뿐 아니라 케이크, 비스킷, 전통 과자에 마찌판을 넣어 다양한 간식을 개발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마찌판으로 만든 귀여운 특산품이 있다. 베트맨셴(Bethmaennchen)이라고 불리는 이 과자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먹는다. 마찌판을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동그란 모양으로 돌돌 말아 놓고 껍질을 벗긴 통 아몬드를 세로로 반으로 자른 조각 세 개를 반죽 옆에 세워 붙여 낸 뒤 굽는다. 꼭 귀가 세 개 달린 생쥐 얼굴 같이 보인다. 과자의 이름은 베트만이라는 가족 성씨에서 유래되었다. 1838년에 시의원이자 은행가였던 바트만 가문의 지몬 모리츠(Simon Moritz)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과자였다. 당시에는 지몬 모리츠의 네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반죽 옆에 4개의 아몬드 조각을 붙였는데 1845년 막내아들이 사망한 뒤 아몬드 조각을 3개로 줄인 모양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먹을 때마다 막내아들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 같다. 마찌판이 본래 값이 비싸고, 유통기간이 길지 않아 최근에는 예전만큼 배트멘셴을 파는 콘디토라이가 많지 않지만 다행히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프라우엔 카페(Frauencafe)나 알테스 라트하우스(Altes Rathaus) 카페에서 전통 그대로의 베트맨셴을 구할 수 있어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할 때면 꼭 개점 시간에 달려가 두 상자를 사 오곤 했다. 하나, 두 개 없어지는 베트맨셴 상자를 보고 있으면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아몬드를 먹는 것일까 무서운 마음이 들다가도 쫀득한 아몬드 가루를 씹는 느낌에 매료되어 손을 멈출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럴 때면 ‘옛날에는 마찌판이 약으로 쓰였다니까 뭐..’ 라며 자기 합리화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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