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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May 17. 2019

독일의 네 가지 얼굴 1편. 서부 – 뒤셀도르프와 쾰른

독일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질문이 있다. 독일에 유명한 도시는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정도인데 이 중 어느 도시를 가야 좋을까 하는 질문이다. 나라는 크고, 왠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할 것 같고, 예쁜 마을을 가자니 또 대도시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교통이 불편하니 독일 여행 코스를 짜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여행이 아니라 어디에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어느 도시에 가야 한국인이 적을까요? 한국말 안 써서 독일 말이 빨리 늘었으면 좋겠는데..”, “어떤 곳이 집 값이 싸고 안전한가요?”, “프랑크푸르트랑 뒤셀도르프 중에 어디를 가야 할까요?”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방문 도시를 선택할 것인가는 참 어렵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이 곳에 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독일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도시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 전체에서 풍기는 고독한 회색 빛의 풍경이 발산하는 에너지 덕분에 독일 살이라는 게 무척 힘겨워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1달 여행을 오든, 단기 어학연수를 오든 아니면 몇 년 직장 생활을 하러 오든 독일에서는 내가 조금 더 밝게, 긍정적으로 에너지 넘치게 ‘으쌰 으쌰’ 살아갈 수 있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도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독일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니 말이다. 즉, 선택의 기준 질문이 ‘어디가 저렴한가’, ‘어느 도시가 안전한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이 무엇일까’,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것들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가 어디에 있을까’에 있을 때 답을 찾기가 쉽다.  


누군가는 여전히 독일에 평생 사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이 다른 것보다 중요할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것을 먹을지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 반면 좋아하는 활동을 쉽게, 저렴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조건이고 내가 맘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숙박비가 한 달에 20만 원이나 싼 지역이지만 좋아하는 수영장에 하기 위해 주말마다 더 비싼 교통비를 지출하며 1시간을 가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치안은 무척 좋지만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눈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면 결국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담소를 나누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놀 수 있는 환경이 참으로 잘 갖추어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살다 독일로 오게 된 나와 같은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 벨기에 같은 근접 유럽 국가에서 이민 온 외국인보다 독일 생활을 더 지루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에센 같은 작은 도시, 재미없는 도시 선택했다고 불평할 때 사실 동북 지역에서 온 인턴 학생은 '에센에 와서 너무 도시가 크고 예쁘고 놀 게 많아 너무 놀랐다'며 컨츄리보이의 신남을 온 얼굴에 묻히고 다니니 말이다. 


일본인의 제2의 고향,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에 최대 한인 커뮤니티가 있다면 뒤셀도르프에는 최대 일본인 커뮤니티가 있다. 이 일본인 커뮤니티가 점점 확장되어 현재는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커뮤니티 허브로 성장하고 있다. 뒤셀도르프에 등록되어 있는 일본 회사만 600곳이 넘고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 사람 중 1/4인 7,000명 정도가 이 도시에 거주 중이라고 한다. 이 수치만 봐도 뒤셀도르프와 일본인 사이의 두터운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특별한 관계의 배경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전쟁 이후 완전히 망가진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강철과 건축 자재가 가장 많이 필요했다. 이 산업이 가장 발달한 루어 지역이 일본 기업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1951년 처음 일본의 경영가가 뒤셀도르프에 다녀간 뒤 1955년 처음으로 독일에 등록한 일본 회사 ‘미츠비시(Mitsubishi)’가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아 일본과 독일의 다리 역할을 시작했다. 60년대 이후 일본 무역 협회부터 영사관, 대사관이 들어서며 일본인 클럽, 학교, 유치원, 호텔이 차례대로 들어서 오늘날 독일 최대 규모의 일본 커뮤니티가 들어서게 되었다.  


독일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특히 초밥이나 해산물, 덮밥, 라면처럼 한국에서 자주 먹을 수 있는 일본 음식은 독일에선 아주 비싼 값을 주고 먹어야 하거나 아니면 해산물보다 밥이 5배는 많이 든 것 같은 엉터리 캘리포니아 롤을 초밥이라 여기고 먹어야 해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다. 뒤셀도르프는 음식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해방구였다. 이 곳에는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며 일본 본연의 맛을 보여주는 아담한 일본 식당들이 아주 많다. 예컨대 타쿠미 라 불리는 일본식 라면 집은 점심, 저녁 시간 언제를 가든 30분은 대기해야 할 정도로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심지어 일본식 베이커리도 있다. 독일의 딱딱하고 투박한 빵에 질릴 때쯤 생각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팥 빵이나 크림빵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행복할 따름이다. 홍대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일본 멜론 빵을 이 뒤셀도르프에서 보았을 때의 감격이란! 어쩐지 그 날은 베이커리에 있는 빵을 모조리 다 사 오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났다.  


뒤셀도르프가 일반 시민들에게 아주 잘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일본의 날이라고 불리는 축제 덕이다. 독일과 일본의 특별한 관계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축제는 매년 5월, 뒤셀도르프 거리에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열린다. 이 날은 도시 거리 곳곳마다 일본 음식을 파는 거리 음식점이 꽉 들어서고 일본 만화 캐릭터로 분장한 사람들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공원과 광장에서는 일본 음악, 넌버벌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또 한 켠에서는 일본 음식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워크숍, 일본 만화책과 캐릭터 장난감을 판매하는 열린 장이 열린다. 사케를 마셔보는 기회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독일인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뒤셀도르프를 방문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날 밤 8시에는 뒤셀도르프를 가로지르는 라인 강에서 화려한 불꽃 축제가 펼쳐진다. 학창 시절 여의도 공원에서 보던 세계 불꽃 축제가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이 일본의 날이라는 축제가 질투가 났다. 하여튼 일본 사람들, 본인들의 문화를 전파하고 홍보하는 데에는 언제나 우리보다 한 발 앞장서는 기분이다.  

쾰른의 독특한 아이러니 – 보수적 얼굴 가톨릭 대성당 VS 동성 연애자의 천국  

쾰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대성당이 단연 1순위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더 비공식적으로는 동성 연애자의 천국이라는 명예도 있다. 대성당이 주는 보수적인 종교의 이미지와 동성 연애자 천국이라는 별명이 정말 상반되는 것이 모순적이기도 하고 또 이런 모순, 자유로움이야 말로 쾰른을 대표하는 가장 적절한 수식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뮌헨 사람들이 자신의 도시에 가지는 자부심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쾰른 사람들의 자부심은 엄청나다. 쾰른 출신의 사람에게 물으면 단연 쾰른이 독일 최고의 도시라고 스스럼없이 주장할 것이다. 부유하고 자유로우며 가장 멋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라며 말이다. 고작 30분 거리에 있는 뒤셀도르프 사람들은 괜히 콧대만 높고 ‘척’만 하는 꼰대들이라고 놀려대고 뮌헨 사람들은 앞뒤 꽉 막힌 보수집단, 동독 사람들은 가난한 힙스터라고 거침없이 비판을 해대며 쾰른이야말로 모든 면에서 가장 쿨한 곳이라고 자랑을 해댄다. 그런데 이 자랑이 전혀 듣기 싫지 않다. 오히려 그 당당함과 자부심에 듣는 사람이 홀딱 반해 버릴 지경이다. 카니발을 준비하느라 일 년 중 한 분기를 쏟아붓지만 또 한 편으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놀며, 보수의 가치는 지키되 다양성은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쾰른 사람들 속에 나도 소속되고 싶어 진다.  


쾰른이 동성연애자의 천국이 된 것은 크리스토퍼 스트릿 데이(Christopher Street Day)라고 불리는 콜론 프라이드(Cologne Pride) 축제의 영향이 크다. 크리스토퍼 스트릿 데이는 뉴욕에서 처음 시작해 유럽으로 넘어왔다.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게이, 레즈비언 이벤트로 약 1주일 간 진행된다. 화려한 핑크색 코스튬과 장식으로 한껏 꾸민 동성 연애자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이 행사를 후원하는 카페, 바에서 오랜 시간 파티를 벌인다.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치료를 돕는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 이성애자들과 평등하게 누리는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라인 강을 마주한 호헨쫄너브류케(Hohenzollernbruecke)에서는 나치 정권 시절 박해받은 게이와 레즈비언을 추모하는 기념식도 열린다.


2017년 독일 연방 정부가 마침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기로 공표했다. 이 해에 열린 쾰른 퍼레이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클 수밖에 없었다. 수 십만 명의 사람들이 쾰른 시내에 모여 ‘모두를 위한 결혼’, ‘국가가 Yes라고 말했다’, ‘결혼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성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이겼다’ 등 국가의 결정을 환영하는 각종 플래카드를 높이 들고 축하 행진을 벌였다. 심지어 이 해에는 독일의 법무 장관이 “더 이상의 차별은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직접 행사 개막을 알려 많은 동성연애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쾰른에 대한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이 동성 연애자 문화를 먼저 꺼내놓은 것은 이것이야 말로 쾰른의 열린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쾰른에 놀러 갈 때마다 가장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 쾰른 사람들의 태도였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쉽사리 걸지 않고 언제나 무뚝뚝하다고 느껴지는 다른 독일 지역 사람들과는 달리 쾰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에서 일하는 웨이터부터 스포츠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젊은 사람들, 카페에 앉아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할머니조차 누군가 옆자리에 앉으면 어제 본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걸어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나 느껴볼 법한 친근감이었는데 쾰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사교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걸까 궁금했다. 쾰른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 집단이 모여 살게 된 도시였다. 중세 시대 독일에서 가장 큰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며 주변 도시와 국가에서 사공, 상인, 수공가, 순례자 등이 많이 유입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쾰른 사람들이 외국인이나 타인에 대한 관용이 다른 독일 지역 사람들보다 더 높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쾰른 대성당은 언제 보아도 장엄하다. 5천 원 정도를 주고 10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면 성당 꼭대기를 방문할 수 있다. 좁고 경사가 높은 계단을 헉헉거리고 오르는 중에 맞은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오는 남자를 한 명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는 정말 미안하지만 자기가 여기서 5분만 쉬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계단이 너무 좁아 누군가 한 명 옆으로 비켜 주지 않고서는 오고 갈 수 없었지만 한쪽으로 비켜서기에도 당장은 너무 힘이 든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쾰른 대 성당에 와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자신이 36년을 산 평생 동안 오른 계단을 다 합쳐도 오늘 하루 오른 계단을 다 못 채울 거라며 오늘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 대견한지를 신이 나서 내게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게 ‘앞으로 너도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약 3번의 고비를 더 맞게 될 거야.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올라가. 꼭대기의 전망은 진짜 최고야!!’ 라며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어찌나 그 남자가 재미있던지 정말 저 남자, 쾰른과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말은 맞았다. 3번의 고비를 지나서야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보는 광경은 정말 멋있었다. 머리를 한 없이 쳐대는 강한 바람을 맞으며 독일에서 가장 높은 성당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한 것은 없지만 이제껏 잘 살아온 내가 자랑스러운 마음도 조금 들었다. 


쾰른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중앙역 근처에서부터 크고 멋있는 박물관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 외관만 봐도 박물관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루드비히 박물관은 너무도 유명한 피카소와 워홀, 리히텐슈타인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로마-독일 박물관, 발라프 리히 아르츠 박물관도 예술이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곳이다. 박물관에 가면 30분이 안되어 몸이 베베 꼬이기 시작하는 나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곳이 한 곳 있었다. 바로 초콜릿 박물관이다. 스위스의 유명 초콜릿 브랜드인 린츠 사가 만든 곳으로 커다란 선박 모양을 한 특별한 외관을 자랑한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다녀가는 박물관 중 하나라고 하는데 남녀노소 초콜릿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하면 금세 이해가 된다. 이 박물관은 입장료가 얼마가 되었든 놓칠 수 없다는 심정에 한 걸음에 달려갔다. 3층 높이의 커다란 박물관 안에는 아즈텍에서 시작해 3000년이 넘는 초콜릿의 역사는 물론 100,000가지 가까이 되는 다양한 초콜릿,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전 공정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박물관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초콜릿의 깊은 향이 코를 찔러 온 몸을 자극하는데 챙겨 온 초콜릿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터인 3미터 높이의 거대한 초콜릿 분수 초콜릿 분수를 지나가면 그 끝에 서있는 린츠 초콜릿 직원 아주머니, 아저씨가 방금 초콜릿 분수에 찍어낸 와플과 린츠 초콜릿 몇 가지를 한 손 가득 쥐어주시니 말이다. 구경을 모두 마친 뒤 박물관에 있는 그랜드 카페에서 진한 핫 초콜릿 한 잔과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 당 충전은 완벽하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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