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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May 24. 2019

독일의 네 가지 얼굴 2편. 남부 – 뮌헨과 근교 도시

싱가포르에서 4년 넘게 박사로 일하며 살고 있는 독일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뮌헨 출신이었는데 독일을 한 번 떠난 이후로는 계속 해외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1년에 3개월 정도는 꼭 뮌헨에 거주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불평을 해대곤 했다. “난 뮌헨 사람들이 정말 별로 인 것 같아! 특히 싱가포르에 살다 와 보니 더 싫어졌어. 친구를 사귀기도 너무 어렵고, 사람들이 앞뒤가 꽉꽉 막혔어.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해외에 나가 열린 자세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라며 말이다. 독일의 타 도시 사람들이 바이에른 주, 특히 뮌헨 사람들에게 가지는 인상이나 편견은 대게 이렇다. 독일에서 가장 가톨릭 성향이 짙고, 보수적이며, 옛날부터 가장 부유한 지역 중에 하나였으므로 콧대가 높다, 정치적으로도 보수파가 많고 언제나 본인들이 경제력이 다른 도시들을 먹여 살린다며 불평이 많다, 돈이 많아서 좋은 축구선수들을 다 엄청난 연봉으로 스카우트 해 놓고는 본래 축구를 잘하는 것처럼 뽐내는 바이에른 축구 클럽도 싫다, 하얀 소시지는 12시 전에 먹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만들어 놓는 데다 외국인 이민자나 난민에 대한 적대심은 또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위선적인 모습도 보인다는 등등.. 뿌리 깊은 지역감정을 늘어놓기 일쑤다. 


솔직히 나는 언제나 멋있고 깔끔하게 차려 입고,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 뮌헨 사람들이 세련되어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일요일 오전 빵 가게를 가더라도 절대 트레이닝 복에 슬리퍼를 신은 추레한 모습으로 가지 않는 주민들. 쇼핑을 갈 때는 쇼핑백을 챙겨가고, 다른 어느 도시보다 질서와 규칙, 전통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사람들. 맥주와 소시지에 대한 자부심은 높이 갖되 나치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도 잊지 않는 상식적인 시민들.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지역감정이야 어떻든 이 도시를 깊이 사랑했다. 독일에 오기 전에 상상하고 그렸던 독일의 모습과 가장 잘 일치하는 곳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동화에 나오는 산속 깊은 곳의 화려한 성, 미세먼지가 들어올 틈 하나 없을 것처럼 청량한 공기, 알프스 산맥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호수들. 이것이야 말로 꿈꾸던 독일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독일 남부 지역에 대해 수다를 떠는 건 언제나 즐겁다. 


뮌헨 시내 

뮌헨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7곳의 유명 비어가든과 그 옆을 흐르는 이자 강, 시내 중심에 우뚝 서있는 시청과 그 꼭대기에서 울리는 장난감 종, 그리고 잉글리시 가든이라는 독일 최대 규모의 공원이다. 날이 좋은 봄부터 가을까지 뮌헨의 하루 관광은 이 네 곳의 목적지로만 채워도 충분하다. 매일 오전 11시에 울리는 시청의 글로켄슈필(Glockenspiel, 장난감 종)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히 시내를 나간다. 인형극 관람을 마쳤다면 커다란 버터 브레첼과 맥주 한잔을 들고 이자 강으로 향하면 된다. 이자 강은 폭이 한강에 비하면 아주 작은 강인데 뮌헨을 세로로 쭉 가로지르고 있어 어딜 가든 한 번은 마주하게 된다. 이자 강을 따라 남쪽 끝에는 뮌헨의 대표 동물원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위를 따라가면 박물관과 전시관, 맥주 양조장, 그리고 북쪽에는 잉글리시 가든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강 옆을 천천히 달려가기만 해도 시내의 멋을 한 번에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이자 강이 특별히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누드’ 스폿이다. 독일에서는 알몸 수영장이나 사우나가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고작 10년 전까지만 해도 뮌헨에서 공원이나 강 같은 야외 열린 공간에서 알몸으로 선탠, 수영을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기껏해야 북부 해변 도시 질트섬이나 베를린에서 볼 수 있는 행위였다. 이런 뮌헨에서 2013년 나체를 허용하는 장소가 생기며 금세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자 강의 중간쯤이 되는 지점에 모래사장이 강 중반부까지 넓게 펼쳐진 곳이 있다. 이 곳에 가면 할머니부터 할아버지까지 알몸으로 선탠을 하고 수영을 하다 다시 돌아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님펜부르크 (Nymphenburg)  

그렇다. 독일 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월트 디즈니사의 배경 로고로 유명세를 탄 휘센의 노이슈반슈타인이다. 그 속에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자연 모습 그대로의 산 언저리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성과 그 성을 더 신비롭게 만드는 자욱한 안개, 성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깊은 낭떠러지를 발 밑에 두고 지어진 마리아 다리(Marienbruecke). 이 세 가지가 매년 6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독일로 불러오는 힘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 가까이 가보면 멀리서 보았던 그 모습보다는 훨씬 초라하고, 접근성도 좋지 않은 데다 입구에서부터 쏟아지는 관광객에 이리저리 치여 상상했던 감동보다는 짜증이 살짝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 안에 들어가려면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거나 당일 매표소에서 30분이 넘게 줄을 선 뒤 운이 좋아야 두 시간 뒤에 시작되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할 수 있어 기다림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인지 독일 현지 사람들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잘 방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광객이 훨씬 적지만 아름다움과 지나온 역사가 더 깊은 도시의 성들을 아이들 두 손 꼭 잡고 찾아간다. 그중 하나가 뮌헨 서쪽에 위치한 님펜부르크(Nymphenburg)이다. 


님펜부르크성은 히어 시가르 텐 공원과도 거리가 아주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도시 안에 언제 이렇게 거대한 성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주변은 언제나 고요하고 우아하다. 규모로만 보면 유럽 성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장대하여 노이슈반슈타인이 금세 하찮게 느껴질 정도다. 입구에 들어서면 굉장히 큰 호수가 있다. 그 호수를 옆에 둔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보고 잠시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멀리 성 윤곽이 보인다. 님펜부르크성 양쪽에는 490 에이커의 면적을 자랑하는 큰 숲이 있다. 숲을 따라 걷는 중에 갈래 길을 몇 번 지나고 나면 금세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를 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미로에 갇히게 된다. 연인과 함께 온다면 아슬아슬한 비밀 키스 장소로 이만한 곳은 더 없지 싶다. 잃어버린 길을 찾으려 발버둥 치지 않고 차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그냥 눈 앞에 보이는 길을 계속 쫓아가다 보면 어느덧 성의 귀퉁이가 머리 너머에 보인다. 걷는 길 마지막에 계단식 분수대에 닿으면 거대한 성의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이다. 다시 입구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덧 허기가 진다. 때마침 성 입구 오른쪽에 아름다운 카페와 비어가든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잘 내려진 커피 한 잔과 사과 케이크를 한 조각 먹고 나면 성 안을 둘러볼 에너지 재충전이 끝난다. 

가뮈시 파르트나흐트클람 (Garmisch Partnachklamm) 

뮌헨 남부에서 머무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사실 뮌헨보다는 근교 도시를 방문하기를 더 추천한다. 뮌헨은 하루나 반나절만 있어도 충분하다. 오히려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국경을 맞닿는 알프스 산맥을 뒤로한 작은 시골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 독일 남부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뮌헨에서 한 시간 내에 닿는 거리에만 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호수가 10곳이 넘고, 그 주위를 둘러싼 산맥의 등산로만 해도 수 십 가지이다. 


그중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은 가미쉬(Garmisch)이다. 봄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가도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독일에서 가장 높은 2,961미터의 쭉슈피쪠(Zugspitze)부터 남산 정도 되는 완만하고 짧은 등산길, 아입 호수(Eibsee)까지 이어지는 둘레길까지 아주 다양한 산책 코스가 있어 질릴 틈이 없다. 가미쉬의 명소는 파트나흐클람이라는 700미터 길이의 깊고 큰 협곡이다. 무서운 속도의 계곡 물이 옆을 지나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물이 위에서 공격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아주 컴컴하고 어둡고 긴 동굴도 지나가야 코스라 시작점부터 그 공간에 온 몸이 압도당하는 곳이다. 


입구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완전히 무음 처리된 듯, 계곡의 물소리와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귀를 꽉 채운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에 맞아 가방과 점퍼가 다 젖어도 어쩐지 기분이 좋다. 코스가 워낙 길어 끝까지 걷는데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동굴 코스를 지날 때는 정말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동굴 벽을 만지고 조심하며 걸어가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쿵 하고 부딪히기도 한다. 동굴 벽에 구멍이 뚫린 부분으로 밖을 쳐다보면 철철 흐르는 계곡 물과 절벽이 한눈에 그림처럼 보여 그 감동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잘 찍지도 못하는 카메라 셔터를 백 번은 누르게 된다.  

협곡도 협곡이지만 가미쉬 기차역에서 협곡까지 가는 길이 정말 예쁘다. 알프스의 소녀가 살던 마을 같다. 먼저 역을 나와 아주 작은 시가지를 걷다 보면 산에서부터 흘러온 것 같은 작은 하천을 따라 길이 나있다. 이 하천의 물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참 희한한 색이었다. 청 녹색과 밝은 회색의 딱 중간지점에 있는 그런 색깔. 독일에서 본 물 중 가장 예뻤다. 하천을 따라가다 집과 농장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 마을을 또 한 번 지나면 눈 앞에 엄청나게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다. 아마 이 초원이야 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독일의 시골 마을 풍경이 아닐까 싶다. 초원에서 야무지게 풀을 뜯어먹는 독일 소와 말을 보면 그곳에서 그냥 오래도록 떠나기 싫어진다. 넓은 초원의 끝에 커다란 스키 점프 시설이 보이는데 예전 겨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지어진 시설이다. 스키 점프 오른쪽으로 이어진 넓은 길이 본격적으로 파트나흐클람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이다. 등산로 옆에도 계속 목장이 있어 동물 구경하는 재미에 금방 30분을 걷게 된다. 협곡에 다다를 때쯤이면 작은 키오스크와 굉장히 귀여운 비어가든, 기념품 가게, 게스트하우스가 등장한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보이는 초가집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게이트를 들어가면 전에 걷던 산 길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협곡이 펼쳐진다. 


안덱스와 아머제 (Andechs & Ammersee) 

독일에 여행 오는 친구들에게 안덱스를 갈 때는 버스를 타지 말고 꼭 걸어보라고 권유한다. 짧지 않은 하이킹 코스이지만 걸어서 안덱스에 닿았을 때만 느끼는 고유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순례 교회라서 인지 편하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조금 죄책감이 드는 탓도 있다. 안덱스는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만 내려오면 닿는 아머 호수에서 시작하는 동네이다. 동네의 꼭짓점에 안덱스 수도원, 그곳의 수도사들이 운영한 역사 깊은 맥주 양조장이 있다. 바로 이 곳이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이다. 


안덱스를 가는 최고의 루트는 헤어슁(Herrshing)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마을 길을 죽 따라 걸으며 동네를 구경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독일의 대표적인 나무 골조 건축 양식이다. 이 건축 양식은 11세기에 처음 도입된 것으로 현재는 중앙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양식이기도 하다. 독일에만 백오십만 개가 넘는 건물이 이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건축 양식은 겨울의 추위에 강하고, 빠르고 유연하게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무가 잘 썩고 불에 타기 쉽다는 단점 때문에 현대 독일인들이 잘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도 적어도 미관만 보면 다른 건축물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어도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이중적 매력을 물씬 풍기니 말이다. 어떤 집은 외관에 멋진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신화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전문 화가가 그렸을 것 같은 고 품질의 그림을 보면 독일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안덱스 수도원은 바이에른 주에서 가장 오래된 순례 교회이다.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이라 불리는 곳 꼭대기에 탁 트인 광경을 자랑하는 곳에 세워진 수도원은 이 곳에 방문하는 순례자들과 안덱스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지역의 사업도 비즈니스도 관리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맥주 양조장과 비어가든이다. 안덱스 양조장은 뮌헨과 안덱스에 있는 세인트 보니파세의 베네딕트회 수도자들의 독점적인 자산이기도 하다. 이 수도원이 종교세로 걷힌 지원금을 전혀 받지 않아 더욱 이 양조장 관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덱스 양조장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복 비어(Bock beer, 흑맥 중 하나)를 생산하는 수도원 양조장으로 유명하다. 이 복비 어는 알코올 함량이 무러 7%다! 


베르히테스가덴과 쾨니그제 (Berchtesgaden & Koenigsee)  

베르히테스가덴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바로 옆, 독일의 끝자락에 붙어 있는 마을이다. 운전을 하고 이 마을을 가다가 자칫 한 순간에 출구를 놓치면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로 진입해 버리는데 문제는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의 통행권을 미리 사놓지 않으면 벌금을 무려 200유로나 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와 처음 이 곳을 가던 날 조심 또 조심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출구를 놓치는 바람에 바로 우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교통경찰에게 꼼짝없이 당한 적이 있다. 기름 값은 왕복 50유로 밖에 쓰지 않아 놓고선 200유로를 고속도로 벌금을 내는 바람에 온종일 헛헛한 마음으로 여행을 해야 했단 아픈 기억이었다. 


베르히테스가덴을 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바로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쾨니그제 호수와 히틀러의 안식처라 불리는 켈슈타인 하우스를 가기 위함이다. 나치나 히틀러에 대한 얘기를 잘 언급하지 않아서인지 이 곳을 알거나 직접 방문해 본 독일 사람이 의외로 별로 많지 않다. 굳이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산꼭대기에 위치한 그 장소의 경관이 워낙 멋있어 금세 마음에 보상이 된다. 켈슈타인 하우스의 별명은 히틀러의 독수리 둥지(Eagle’s nest)이다. 히틀러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나치 당원, 그중 리더인 마틴 보어만이 계획하여 실행한 것이었다. 알프스 줄기를 이루는 한 산의 최정상 꼭대기에 지어진 작은 이 집은 독일 제3 공화국 당시 나치 정당의 당원들이 정치, 사회, 친목 활동을 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사용하던 아지트였다. 조금 우습지만 히틀러가 고소 공포증과 폐쇄 공포증이 있어 이 아지트의 위치를 무척 싫어했다는 여담도 있다. 아지트까지 가기 위해서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화강함 사이를 지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 선물로 지어진 그 영광스러운 아지트에 총 17번밖에 방문하지 않았단다. 정말 그 높은 곳에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지대가 높다. 무려 13개월의 기간 동안 3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밤낮으로 일했다고 하니 그 고통만 생각해도 끔찍해진다. 


놀랍게도 이 아지트는 세계 2차 전쟁 동안 조금도 파괴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오늘날까지 유지하였다. 그 안의 가구와 장식품은 대부분 전쟁 이후 연합군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무솔리니가 히틀러에게 준 붉은 벽난로와 조명 기구 등 몇 가지는 보존되었다. 켈슈타인에 올라가 당시 히틀러와 나치 멤버들이 이 곳에서 어떤 파티를 열고, 어떤 휴식 시간을 가졌을 까 상상하다 보면 마음이 자꾸만 엄숙해진다. 그들이 일으킨 세계 2차 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된 베르히테스가덴과 독일의 모습과는 반대로 폭탄 한 번 맞지 않고 당시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 아지트.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켈슈타인을 나와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쾨니히 호수가 나온다. 쾨니히 호수 주차장 입구에는 켈슈타인 하우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도 재미 삼아 망원경을 통해 살짝 훔쳐볼 수 있다. 호수는 빙하기 말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호수 물 색은 정말 짙고도 청량한 푸른색을 자랑한다. 물이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해 오래도록 물속을 쳐다보게 된다. 호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호수 입구에서 운행하는 보트를 꼭 타야 한다. 이 보트를 타면 하나의 작은 소음도 들리지 않은 고요한 호수 위를 천천히 지나다가 어떤 한 지점에서 멈춘다. 이 곳은 로맨틱함의 끝을 보여준다. 골짜기가 깊게 페인 산 앞인데, 이 곳에서는 어떤 말이나 소리를 내면 3초 만에 그 소리가 깨끗한 메아리가 되어 날아온다. 보트를 운행하는 선장은 이 곳에 배를 잠시 멈추어두고 상자에 담아두었던 색소폰을 꺼내 조금 어설프지만 순수한 노래 한 곡을 최선을 다해 연주해 준다. 한 소절이 끝나고 잠시 멈추면 골짜기가 다시 그 소절을 되돌려준다. 누군가 이 곳에 데려와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그 고백에 한 번, 다시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두 번 감동을 받아 그게 누가 되었든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온천의 도시, 바덴바덴(Badenbaden)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는 서남부에 자리한 작은 시골 도시 바덴바덴은 규모는 아주 작지만 천연 암반수로 유명한 온천 덕에 해마다 많은 수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수심 1600미터 깊이의 바위 층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에 각종 미네랄과 칼슘 등 미량원소들이 풍부하다는 소문을 듣고 안 그래도 오랫동안 목욕탕을 가지 못해 찌뿌둥한 몸 이번 기회에 호강시켜주자는 마음에 바덴바덴을 향했다. 


바덴바덴에 가면 독특하게도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러시아와 관계된 특정 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러시아와 가까운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닌 이 작은 촌 동네에 왜 러시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지게 된 걸까 신기했다. 내가 이용했던 두 곳의 호텔에는 일하는 종업원이 모두 러시아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러시아와 이 도시의 특별한 관계를 가장 먼저 형성시킨 것은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황후였던 엘리자베스였다. 바덴바덴을 무척 사랑했던 그녀는 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이 곳에서 휴가를 자주 즐겼고, 친구들에게 바덴바덴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직접 편지를 써가며 손수 홍보했다고 한다. 이후 19세기부터 러시아의 왕족과 귀족, 유명 작가들이 바덴바덴을 즐겨 찾기 시작하면서 금세 러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독일 도시가 되었다. 귀족들이 이 도시를 찾은 이유 중 다른 하나는 바로 카지노였단다. 러시아 황제가 도박을 금지하면서 바덴바덴을 새로운 도박 아지트로 삼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문학가인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네프,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이반 곤차로프도 바덴바덴에 있는 카지노를 즐겨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상류층 러시안 사람들을 위한 호텔, 별장, 레스토랑과 상점이 조금씩 생겨나며 러시안 커뮤니티가 확대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러시아의 최고 부자 계층이 안전하게 자신의 재산을 투자할 수 있는 곳으로 바덴바덴을 선호하면서 이 곳에 있는 부동산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고 한다. 물론, 바덴바덴 출신 지역 주민들이 달가워할 만한 소식은 아닌 것 같다. 물가도 그 덕에 아주 많이 올랐다. 


바덴바덴의 온천은 다른 독일 온천이나 사우나 시설과 마찬가지로 수영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체로 입장하는 혼탕이다. 이를 모르고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입구에서 곧 잘 당황하기도 한다. 사우나에 옷을 입지 않는 것도 남녀가 같은 탕 안에 들어가는 것도 독일인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 당황하는 외국인이 그저 귀엽게 보이는 모양이다. 독일 사람들은 비키니를 입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위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수영복을 수건처럼 자주 세탁하지 않는 데다 사우나 안에서 흘리는 땀에서 배출되는 노폐물이 수영복으로 흡수될 테고 높은 습기와 온도 덕에 세균이 빠르게 증식할 수 있어 탕에 들어갔을 때 훨씬 더 비위생적이라 여기는 것이다. 깨끗이 샤워를 한 알 몸을 섞는 것이 수영복과 함께 들어가는 것보다 낫단 얘기다. 남녀를 구분 지어 놓는 것이 그래도 조금 더 낫지 않느냐는 내 어리석은 질문에 독일인들은 ‘알몸으로 선탠을 하는 것도 합법인 마당에 돈을 두 배로 들여가면서 남자, 여자의 공간을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데?’라고 반문한다. 그런 반문에 똑 부러지게 대답할 거리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그냥 그럼 남의 몸 훔쳐보려고 이런 데 오는 변태들이 많을 것 같은데..’라는 조금 찌질한 이유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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