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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Jun 07. 2019

독일의 네 가지 얼굴 4편. 북부

독일에 품는 가장 큰 불만은 언제나 흐리고 음산한 날씨였다. 씩씩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가도 창 밖에 또다시 추적추적 내리는 비바람을 보면 뜨거운 핫 초콜릿을 한 잔 먹지 않는 이상 이불 밖에 도저히 나갈 욕심이 나지 않았다. 이런 볼멘소리는 북부 출신 친구들 앞에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해가 화창하게 떠 있는 날이 일 년에 일주일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슬픈 투정에 이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강한 바다 바람이 불고 흐린 북쪽 사람들은 날씨와는 달리 북부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편이다. 아무래도 바다가 주는 에너지인 것 같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함부르크 사람들의 시답잖은 농담처럼 말이다. 남부 지방 사람들은 북부 지방에서 온 독일인들을 생선 머리(Fischkopf)라고 놀려대지만 그들은 ‘그게 뭐 어때서- 고작 바닷가가 가깝다고 우리에게 생선 머리라는 단순한 별명을 붙여 주지만 그들이야 말로 신선한 생선이 없어 뭐가 들었는지 알 수도 없는 흰색 소시지를 음식이라고 먹는 불쌍한 민족이 아니니?’ 라며 쿨하게 응대한다.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이라는 표준 인사법은 북부 지역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그곳에서 모든 인사는 모잉(Moin)으로 통한다. 안녕, 반가워, 오늘은 어때, 좋은 하루 보내 등과 같은 일상적인 안부 인사가 이 한 단어에 다 함축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북쪽 사람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꽤나 잘 하지만 필요한 말은 가장 효율적으로 짧게 뱉어 버리는 것 같다. 궁금하지 않은데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주저리주저리 스몰 토크를 늘어놓는 대신 모잉(Moin)과 나~(Naaa) 하는 말로 대화를 정리해 버린다.


완벽한 예술의 도시 함부르크 

함부르크를 묘사할 수 있는 특징은 무척 많다. 비틀스가 탄생한 곳, 독일에서 가장 큰 홍등가를 자랑하는 곳, 항구의 야경이 아름다운 곳,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를 소유한 곳, 독일의 부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 등.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함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한 뮤지컬의 배경 무대 같은 곳’이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항구를 걷다 보면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키가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진 사람들은 다들 배우처럼 멋있다. 배를 타고 지나는 길에 보이는 야외극장과 미디어 회사들, 옛 창고 건물들도 하나의 세트 장처럼 완벽하다. 

함부르크의 슈 파이셔 슈타트(Speicherestadt)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창고 단지로 그 규모만 260,000 평방미터에 다다른다. 거대한 빨간 벽돌 건물이 엘베 강의 한 줄기를 따라 줄지어 서있다. 17개의 건물이 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높이로 지어져서 밤 조명에 비춘 건물을 보면 완전히 다른 세계 안에 갇힌 것 같다. 이 거대한 벽돌 창고 건물들은 오크 나무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꼭 물 위에 그냥 건물들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세기 말부터 지어진 이 창고들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면세 지역으로 지정되며 세계 각국의 무역 인들을 맞이했다. 커피나 차, 초콜릿, 향신료 등 당시 수입품의 대부분이 함부르크를 통해 들어왔다. 


지금 이 창고 단지는 무역이나 화물 저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예술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건물의 어떤 공간은 아티스트들이 저렴하게 임대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워크숍을 열기도 하며 또 스타트업 기업들이 사무실로 쓰기도 한다. 몇 공간은 카페와 상점으로 채워지고 있다. 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건물 안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커피 향과 커피콩을 가는 소리에 저절로 발길이 카페를 향하기도 한다. 카페 안에는 슈 파이셔 슈타트의 커피 역사와 커피 무역, 커피의 종류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가 자세히 적혀 있다. 19세기에 사용했던 커피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기계 구경은 그 어떤 골동품 가게보다 훨씬 재미있다. 더 커피를 내려 주는 언니 오빠의 여유와 자신감을 따라갈 길이 없다. 한 사람의 주문을 받은 뒤 오래도록 천천히 커피를 직접 내려 데코를 해 주고 나서야 그 뒤 사람의 주문을 받는다. 


함부르크의 주말 저녁은 지루할 틈이 없다. 홍등가와 클럽, 뮤지컬 극장 등 파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너무 많다. 시끄러운 것 이도 저도 다 싫으면 야간 유람선을 타고 밤의 운하를 구경하면 된다. 다만 이 곳에서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낸 뒤 몰려오는 숙취를 해결하는 ‘함부르크 적’인 방법은 일요일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수산시장에 가는 것이다. 숙취에 해산물이라니 왠지 괜찮았던 속도 다시 뒤집힐 것처럼 조화가 되지 않지만 시장이 문을 여는 오전이 되면 그 전날 밤을 꼬빡 새우고 생선 샌드위치를 먹으러 온 파티 남녀들로 꽉 차는 시장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심지어 이 곳에서 해장 술도 마시니 말이다. 

이 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날 생선이 들어간 생선 샌드위치다. 소금이나 식초 양념에 절여진 생선을 독일 식 바게트 빵 사이에 끼워 양파와 상추를 조금 얹어 주는 게 전부이다. 튀긴 생선을 넣은 샌드위치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생선 고유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솔직히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을 아침부터 먹어야 하는 것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보다 더 독특한 것은 롤몹이라는 놈이었다. 롤몹은 식초와 와인 소스에 오래도록 절여진 청어 살을 돌돌 말아 이쑤시개에 끼워 주는 애피타이저 같은 메뉴이다. 어떤 곳은 청어 안에 피클 당근과 양파를 넣어 말아주기도 하고 바게트와 함께 내어 주기도 한다. 역시 내 입맛엔 해장국이 최고다. 비릿하고 시큼한 생선은 함부르크 사람들에게 모두 양보할 테다. 


나 혼자 소유한 것 같은 아름다운 해변     

독일 북해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움이다. 나만 빼고 온 세상이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한적하다. 워낙 인구가 많지 않아서 아무리 붐비는 휴가철에 가도 레스토랑에 가지 않는 이상은 사람과 가까이서 부딪힐 일이 없다. 내가 원하는 만큼, 딱 그만큼 바다와 모래사장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 날씨가 화창해 언제나 태닝을 하려는 유럽 관광객들로 붐비는 프랑스나 이태리의 남부 해변보다는 나는 독일의 북부 해변이 좋았다. 남들이 모르는 나 혼자만의 공간에 온 것 같아서였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지저분하게 무언가를 파는 장사꾼들도 없고 그저 눈 앞에 지나가는 것은 손을 꼭 잡고 걷는 은퇴한 노부부나 수건 위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젊은 커플, 개를 끌고 한없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독일 사람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서 서핑을 즐기고 있는 몸 좋은 청춘 남녀 밖에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마음껏 즐기고 올 수 있었다.  


한국의 밤바다는 조금 무서웠다. 누군가 밤에 바다 한가운데서 물아래를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으면 물의 어떤 힘에 이끌려 물속에 뛰어들게 된다고 그래서 밤에 바닷물을 바라보지 말라고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한국에서 밤에 바다를 보고 있으면 한을 품고 바다에 뛰어든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를 끌어당길 것 같아 섬뜩해지는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함부르크의 바다는 아주 오랫동안 그 물을 쳐다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부유한 곳에 누가 그렇게 한을 품겠나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독일의 바다 모래사장에는 아주 깜찍한 2인용 바구니 의자(Strandkoerb)가 햇빛을 향해 귀엽게 자리 잡고 있다. 작고 아담한 이 의자는 밑에 2개의 간이 수납장이 있어 물건을 보관할 수 있고 오색무늬의 쿠션 좋은 소파를 앞뒤로 젖혀가며 누울 수도 있으며 의자 위에 달린 천막을 움직여 받고 싶은 햇빛의 양을 조절할 수도 있다. 연인과 함께 이 좁은 의자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가시거리가 되지 않고 일정 수준의 애정행각을 벌일 수도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최소의 공간에 최대의 기능을 해내니 이거야 말로 딱 독일 스타일이다. 이 바구니 의자 정말 너무나 탐난다. 멀리서 의자들이 모여 있는 해변을 보면 꼭 모래사장에 모여 있는 조개껍데기들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짖는 개가 없는 독일 

독일 해변에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미소로 바닷물을 수영하는 큰 개들이 더 많다. 목줄에 묶이지 않고 원하는 만큼 모래사장을 뛰다가 물에 첨벙 뛰어들어 주인이 던진 공을 물어오는 독일 개들을 보면 정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삶이구나 싶다. 큰 개를 몇 마리씩이나 풀어놓고 함께 조깅을 하는 사람들. 어느새 내 머리는 도대체 독일 개들은 왜 이렇게 잘 훈련된 걸까? 하는 질문으로 가득해진다. 독일에 살면서 개가 짖는 것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온순하다. 혹자는 독일에서는 어린아이들보다 개가 더 잘 훈련되었다고 할 정도다. 인근 유럽 국가 사람들도 독일 개는 유전적으로 뭐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해댄다. 

독일은 개를 가장 사랑하고 어딜 가든 가장 환대하는 문화를 가졌다. 개를 그냥 동물이 아니라 정말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나 상점이나 슈퍼 등 개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제한적으로 있지만 대부분의 식당, 바, 그리고 건물에서는 개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 일요일 오후 카페에 가면 테이블 아래서 주인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개도 있다. 친절한 식당에서는 개가 마실 수 있는 물통도 준비해 준다. 목줄이나 입 마개에 대한 제한도 없어 공원에 가면 거의 대부분의 개들이 목줄 없이 마음껏 뛰논다. 언제나 가장 신기했던 장면은 어디에 묶여 있지도 않은데 슈퍼에 장을 보러 간 주인을 문 앞에서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개였다. 주변에 누가 지나가든 어떤 동물이 귀찮게 하든 그냥 그 개는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개가 한 둘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개가 주인의 ‘소유물’로 인정되고 그에 따라 기르는 개의 숫자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동물을 기르기 위해서 돈을 내야 한다면 아무래도 책임감이 조금 더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의 개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잘 훈련되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인 압박으로 꼽힌다. 개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개에게 관대한 문화를 가졌지만, 그에 따르는 주인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잣대는 또 가장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에 관련한 책임 보험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고 개로 인한 어떤 사고가 났을 때 주인이 부담해야 하는 법적 책임이 아주 강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위험하거나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개는 주인 역시 자발적으로 입 마개를 씌우고 되도록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과의 접촉을 하지 않도록 제한할 수밖에 없다. 길을 걷다 자신의 개가 싼 똥을 치우지 않으면 누군가가 어느덧 뒤에 따라와 ‘똥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어떤 주에서는 최근 ‘개 주인 자격증’을 도입하는 법을 검토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는 기본 개 교육 과정을 이수하여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개에게 물리는 사건 사고, 개 짖는 소리로 일어나는 이웃 간의 갈등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조금 고민해 볼 수 있는 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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