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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연 Oct 05. 2024

친구는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으면 돼

 20대 중반 온라인 커뮤니티가 한창 유행했던 시기였다. 나 역시 포털사이트 카페, 디자인전문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곳의 디자이너 동호회에서 활동을 했었다. 친목을 다지는 목적의 커뮤니티였기에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고 커뮤니티 내에서 몇몇 친해진 사람들끼리 번개모임을 자주 갖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의 정기모임보다 잦은 소규모 인원의 번개모임을 많이 가졌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동료 외 아는 사람이 없었던 나는 동호회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곳에 모임을 갖다 보니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저녁 모임을 가졌다. 운 좋게 동갑내기를 만나면 그나마 쉽게 다가갔지만 형누나 동생들과는 쉽게 친해지지는 못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기 강한 화력을 뽐냈던 커뮤니티는 2년도 못되어 커뮤니티가 문을 닫았다.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도 비일비재했다. 만약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만남이었다면 잦은 편한 만남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편한 만남이 잦은 실수를 만들고 그게 쌓여 다툼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관계가 어색해지고 점차 신선함을 잃어가는 모임은 끝나고 만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만남은 별 의미가 없는 만남이었다. 그냥 술 한잔 마시면서 각자 넋두리를 풀어내며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였다.


그 이후 디자이너 모임뿐만 아니라 음악 관련, 팬 모임, 작가모임 등 다양한 온라인 활동과 오프라인 모임활동을 이어갔다. 나의 활발했던 모임활동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기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활발히 활동했던 온라인 커뮤니티는 폐쇄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던 포털사이트가 망하거나 합병되거나 사이트를 개편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수많았던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즐거웠던 동호회 모임 이름조차도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때 한참 푸릇푸릇했던 회원들의 얼굴들은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란 생각에 가끔 궁금해질 때도 있다. 그 궁금함은 그냥 잘 살고 있겠지란 기대에 찬 의미에서의 단순한 궁금함이다.




 어느 날 업무차 광화문역에서 환승하려 내렸는데 환승통로에서 예전 동호회 모임을 이끌었던 형을 5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 형은 여전히 디자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고 광화문 근처 거래처에 가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에게 짧은 근황을 묻고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그 형과는 3년 동안 정말 많은 모임에서 술자리를 기본 3차까지 갈 정도로 수많은 추억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각자 삶이 바쁘다 보니 정말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한잔 마실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일 서로 약속 때문에 급하게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아는 업체의 디자인 업무를 연결해 주고자 통화를 한 게 그 형과의 마지막 통화다. 그 이후 3년 동안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다. 만약에 내가 술을 끊지 않았더라면 일을 연결시켜 주겠다는 핑계로 연락해서 분명 술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그 형에게 연락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형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연락이 끊어질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한정적인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 사람들의 숫자는 정말 두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정도로 소수다. 그 외에 명목상 통칭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은 카톡 단톡방에서 명절, 연말, 연초 인사말로 그들의 근황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연락하는 열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 중 한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나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 올 놈은 너하고, ㅇㅇ, ㅇㅇ, ㅇㅇ 이렇게 네놈만 오면 된다. 그 외 다른 놈들은 부를 필요는 없어."

"그래도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이 와주면 좋은 거 아녀?"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고 니들만 있으면 난 외롭지 않게 저승에 갈 수 있다. 다섯 놈 중 먼저 죽는 놈이 있으면 나머지 네 놈들이 장례 잘 치러주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 친구가 말하는 친구 놈들은 나를 포함해 고향 친구들이다. 다섯 놈 중 두 놈만 빼고 모두 학창 시절에는 일면식만 있었을 뿐이었고 성인이 되어서 친해지게 된 케이스였다. 다섯 놈은 친목계를 했던 사이였고 7년 놈이 인천에 고깃집을 오픈하고 그때 이후 한번 모임을 갖고 더 이상 다 함께 모이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친목계를 깨버리면서 그 이후로 다섯 놈이 함께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라는 끈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연락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30 시절 연결고리가 약했던 모임들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그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거의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때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던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친분을 유지하고 연락하며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지면서 그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란 걸 알았다. 끊어질 사람은 끊어지게 마련이고 연락이 될 사람은 어떻게든 연락이 되기 마련이다. 설사 연락이 안 오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


지금 친구가 많지 않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내 곁에 남아 있는 친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누군가 말했다. 원래 인생은 독고다이(혼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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