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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연 Oct 02. 2024

정리가 필요한 순간

미련 두지 말고

"나실장 책상 좀 정리하지요. 이렇게 책상이 정신이 없는데 일이 제대로 되겠어요."

예전 직장 사장님이 내 책상을 지나치며 한마디 했다.


내 책상은 키보드를 칠 수 있는 공간에만 물건이 없을 뿐 그곳을 제외한 곳엔 거래처 명함, 거래명세서, 발주서, 메모지, 영수증 쪼가리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서류꽂이 서류들 위에는 인쇄물 샘플, 시안 프린트물들이 위태위태하게 쌓여 있었다. 살짝 열려 있던 서랍에도 역시 인쇄물 샘플과 시안 프린트물이 꽉 차 삐져나와 있었다.


책상이 정신없이 너저분하다고 해서 꼭 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해서 꼭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일은 각자 스타일에 맞게 하면 된다. 하지만 쓸데없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바로 책상 정리에 들어갔다. 산만하게 널려있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필요도 없는 인쇄물 샘플과 시안을 프린트물을 휴지통에 치워버렸다.


정리하는 김에 정크파일로 가득 차 있던 컴퓨터도 정리했다. 보통 디자인작업을 하다 보면 수정을 여러 번 거치기 마련이다. 최종 디자인 파일을 제외하고 최소 3개 이상 수정된 파일들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쌓여버린 정크 파일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이 컴퓨터를 버벅거리는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최종인쇄파일을 제외한 정크파일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나서 비우기 버튼을 클릭했다.

그렇게 책상과 컴퓨터에 필요 없는 것들을 싹 치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한때 책부심으로 300여 권의 책을 책장에 장식해 놓은 적이 있었다. 처음 사서 한번 읽었을 뿐 더 이상 읽지도 보지도 않는 말 그대로 장식용에 불과한 책들이었다. 좋은 책은 여러 번 읽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은 내게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산 책들은 좋았던 책들임이 아님이 분명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내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보지도 않는 책 뭐 하러 짐스럽게 집에다 놔둬. 차라리 중고로 팔아서 돈을 만드는 게 훨씬 낫지 않아?"


아내 말맞따나 내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은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아무짝에나 쓸모가 없는 짐이었다. 차라리 중고서점 책장에 꽂혀있는 게 책들에게 백 배 천 배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책들에게 훨씬 쓸모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의 일리 있는 말에 책부심을 버리고 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8년간 쓸모없이 꽂아도 있던 책들을 책장에서 떠나보내게 되었다.


 읽지도 않은 책들로 가득 차 있던 책장처럼 옷장에도 사놓고 입지도 않는 옷들이 수두룩했다. 세월이 지나 옷 사이즈가 안 맞거나 유행이 지나버렸거나 디자인이 마음이 들지 않아서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그냥 걸어두었던 옷들이었다. 언제 가는 입을 날이 오겠지 하며 걸어 두었던 옷들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옷장 밖을 나오지 못했다. 어느 날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안 입는 옷들을 골라 의류수거함에 넣어 버렸다. 버리기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있어봐야 정크파일과 같은 것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크게 문제가 없다면 물건을 못 버리고 쌓아두는 사람이었다. 고장 나지 않은 이상, 웬만하면 물건을 버리지 못했다. 당장 사용을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꼭 물건이 필요할 날이 있을 거야' 라며 쟁여두었다. 하지만 그 쟁여놨던 물건들은 다시 사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더 이상 내게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 더 이상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그냥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이후부터 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정리하기 쉬워졌다. 현재는 버리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지금 내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연락처 목록에는 스크롤을 언제까지 내려할지 모르게 많은 수십 년 동안 쌓아둔 번호들로 꽉 차있다. '언젠가는 연락할 일이 있겠지'란 생각에 미련을 못 버리고 저장해 두었던 번호들이다. 누군가는 휴대전화 연락처를 보며 다 내 인맥이라고 뿌듯해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대부분은 그냥 별 의미 없는 숫자들에 불과하다.


살다 보면 언제가 문득 물건이든 인간관계든 정리하고 싶은 때가 오고야 만다.

그럴 땐 미련 두지 말고 내게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릴건 버리고 털어낼건 털어내고 가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자! 이제부터 내 휴대폰 속에 전화번호들을 미련 없이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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