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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연 Oct 09. 2024

묻지마 누명

결백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야기다.

어느 가을밤 9시쯤, 친구들과 학교를 나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는 3명의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점차 그들과 거리가 좁혀졌고 놈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손에 들고 있던 나무막대기를 휘둘렀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방비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 대를 맞고 나서야 몽둥이질을 방어를 할 수 있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불량배 같지 않아 보였다.


"니들 뭐야? 다짜고짜!" 나는 날아오는 각목을 잡고 물었다.

"야이새꺄. 니들이 내 동생 때리고 돈 뺐었다매?" 나보다 두어 살 정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놈이 물었다.

"뭔 소리야? 그게."

"얘네들이 독서실 앞에서 너 때리고 돈 뺐은 거 맞아?" 옆에 안경을 쓴 놈이 내 또래로 보이는 놈에게 물었다.

"어 형. 맞는 것 같은데." 그놈은 우리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야. 우리가 니돈 뺏었다고?" 그놈의 얼토당토 없는 대답에 우리는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내 동생이 너네이 맞다잖아. 어디서 거짓말을 해."

"우리는 학교에서 막 나오는 길이거든."

"새끼들 거짓말하는 거 봐."

"우리 진짜 학교에서 나왔다고. 정말."


그 놈들은 동생말만 믿고 우리가 자신의 동생을 때리고 돈을 뺐은 범인들이라고 확신했고 파출소에 가서 시시비비를 따져 보자고 했다. 파출소에 갈 만한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파출소라는 단어에 덜컥 겁이 났지만 우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는 파출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파출소에 가는 동안에도 그 독서실에 간 적도 없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놈들은 우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돈을 뺐고 때렸다고 지목한 동생 놈의 주장에 우리말이 먹히질 않았다.


파출소에 경찰들은 몽둥이를 휘두른 놈들의 말만 듣고는 정작 얻어맞은 우리들을 불량배 취급을 했다. 한 경찰은 우리에게 어린놈의 새끼들이 벌써부터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며 우리를 나무랐다. 그리고 우리 셋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자칫 이러다가 정말 우리는 금전갈취범, 폭행범으로 몰릴 판이었다. 억울하게 몽둥이에 맞은 건 우리들인데 범죄자 취급을 받으니 더욱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경찰에게 독서실에 간 적이 없으며, 조금 전에 학교 교정에서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말하고 가방에 있던 필름카메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나와 걸어가는길에 느닷없이 저 놈들이 휘두른 각목에 맞았다고 셋이 항변했지만 담당 경찰은 우리의 결백을 들어주지 않았다. 분명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밤이 늦었으니 내일 수업 마치고 파출소로 와서 조사받으라고 하고는 집으로 보내주었다. 우리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왼쪽 팔꿈치가 미세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어제 일로 학교에서 혼날 생각 하니 이런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교무실로 불려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경찰이 아직 학교로 연락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교무실에 불려가는 일은 없었다. 학교수업을 다 마치고 친구들과 만나 그 파출소로 향했다. 파출소 담당 경찰은 우리에게 너네들 혐의 없으니까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왜 무혐의가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제 우리에게 맞았다는 그놈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고 때리기까지 한 그 놈들을 불러 사과를 받아야 했지만 누명을 벗었다는 사실에 너무 기쁜 나머지 그럴 생각 조차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머리가 좀 굵었다면, 아니면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놈들에게 사과를 받든 보상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유무죄 여부를 떠나서 학교와 부모님에게 파출소에 드나들었던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파출소 문을 열고 나올 때 아침에 통증이 있었던 왼쪽 팔꿈치를 내려다보니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그들의 동생은 독서실 앞에서 돈을 빼앗겼고 폭행한 놈들은 세명이라고 했다. 때마침 우리는 그 독서실 근처를 걷고 있었고 때마침 우리 인원 역시 세 명이었다. 그 두 가지 근거만으로 그들에게 우리는 보나 마나 한 불량배였다.


우리 셋다 남학생이었고 부모의 관리에서 벗어난 자취생이었고 게다가 집에 있어할 시간 늦은 밤거리를 셋이 무리 지어 다녔다. 이 몇 가지 근거만으로 경찰에게 우리는 보나 마나 한 불량배였다.


분명 우리들은 돈을 뺐지도 남을 때리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근거만으로 우리도 모르게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금전갈취 및 폭행범이었다.




그 당시 그 동생이란 놈이 작정하고 우리가 범인이라고 몰아세웠다면 그때 상황은 그리 쉽고 간단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결백이 밝혀지게 되는 해피엔딩을 맞았을지라도.


이처럼 간혹 우리는 확증편향이 발휘되어 사실확인도 없이 단지 가능성이 높다라는 근거로 하지도 않은 어떤 행위를 했다고 확신하거나 사실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때론 그로 인해 일을 그르치거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처럼.

우리는 사람들을 평가할 때 확증편향에 빠져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알게 모르게 '걔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걔는 분명 그랬을 거야', '걔는 오늘 분명 늦을 거야'라며 쉽게 단정을 짓고 자신의 잣대로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우며 우를 범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며, 자기 판단한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은 본인의 사고방식을 의심하고 경계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것은 확증편향 사고를 더욱 공공히 쌓을 뿐이다.

때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때론 듣기 싫은 것도 한 번쯤 살펴보고 들여다볼 줄 아는 시야를 장착해야 한다.


이제는 내 잣대로 '묻지마 누명'을 쓴 채로 살아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결백을 한 번쯤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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