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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연 Oct 12. 2024

레이첼을 찾아서

 그녀는 내가 록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자 답장에서 그녀도 록음악을 좋아한다며 나에게 록밴드 '에어로스미스(AeroSmith)'를 추천해 주었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밴드였지만 정확히 그가 어떤 곡을 불렀던 밴드인지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당연히 앨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며칠 후 시내에 자주 가던 음반매장에서 에어로스미스의 최신 앨범을 구매했다. 앨범자킷은 젖소의 젖 부분을 클로즈업한 이미지에 얼룩무늬 위로 밴드로고가 새겨진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역시나 미국 스러운 파격적인 자킷디자인이었다. 그 앨범은 1993년도에 발매된 11번째 정규앨범 GET A GRIP이었다. 이미 그 밴드 이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11집까진 앨범을 낸 밴드였는지는 잘 몰랐다. 나는 그 앨범에서 락발라드곡인 Crazy와 Cryin 노래를 좋아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스터빅, 스콜피온, 본조비와 같은 락발라드곡을 발표한 록밴드가 인기가 있었다. 이 앨범에서는 몇 곡을 제외하고는 다소 하드록 스타일의 곡들로 채워져 있었고 록음악을 즐겨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곡들로 채워져 있는 앨범이었다.


그녀의 추천으로 에어로스미스 앨범 중 유일하게 구입한 앨범이었다.


*참고로 한국에서 에어로스미스의 대표적인 히트곡은 1998년 개봉한 브루스윌리스 주연의 영화 '아마겟돈'의 대표 OST 곡인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이다.




 세월이 흘러 14년 지난 2008년, 페이스북 친구 찾기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그녀의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프로필사진과 이름 중에 내가 아는 사람과 닮아 보이는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링크를 타고 넘어간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어느덧 성인 된 그녀의 모습에는 14년 전 얼굴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페이스북임을 확신하고 얼른 게시물을 쭉 훑어보았다. 최근 게시된 사진에는 그녀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아이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그녀의 부모와 형제 들고 보이는 보이는 사진도 여럿 보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녀의 10대 때 얼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우스휠을 아래로 내리다가 팔짱을 끼우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스크롤을 멈추었다. 보는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그 사진은 내 14년 전 다이어리 수첩에 꽂혀 있던 사진이었다.




 나는 20살,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때의 일이다. 나는 음악잡지 맨 뒤페이지 개제 된 해외펜팔 코너에 미국 펜팔신청을 했다. 그리고 펜팔 상대자로 레이첼의 집 주소를 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먼저 편지를 보냈다. 영어를 할 줄은 몰랐지만 영어를 잘하는 회사 선배님이 있어서 그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첫 편지는 당연하게도 나를 소개하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 편지에는 내 사진을 동봉해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그녀는 답장과 함께 그녀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하얀 피부에 금발에 가까운 밝은 갈색의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고 팔짱을 끼우고 활짝 웃고 있는 상반신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곧 고등학교 졸업이라서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이라고 편지에 설명해 주었다.


그 편지 이후 아쉽게도 편지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그녀에게 한차례 더 편지를 보내고 대학입학을 위해 퇴사를 하게되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받았던 편지는 사무실 책상서랍에 보관하고 있었다. 퇴사 전날 그 편지를 챙긴다는 것 그만 까먹고 말았다. 그녀의 주소가 써 있는 편지를 사무실 책상에 그대로 두고 퇴사를 하는 바람에 그녀와 연락을 할 수 가 없었다. 내가 퇴사한 이후에 회사로 그녀의 답장 편지가 왔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고서 곧바로 친구 신청을 했고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사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고등학교 졸업 사진 게시물에 곧바로 댓글을 쓰고 싶었지만, 내 댓글 때문에 혹시 곤란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페북 친구가 된 후 며칠 지나 페이스북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 레이첼 정말 오랜만이야.

나는 한국에 사는 나ㅇㅇ라고 해. 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펜팔했었는데 혹시 나 기억하니?

의도치 않게 내 실수로 편지가 끊기게 되어서 굉장히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늦게나마 페이스북에서 너를 찾게 될 줄이야. 너무 반가워. 네가 나한테 보내준 고등학교 졸업사진도 아직 가지고 있거든.

그리고 페이스북을 보니 니가 잘 지내는 거 같아 난 너무 기뻐.

혹시 나를 기억한다면 답장 주길 바래.



14년 전, 의도치 않게 아무런 예고 없이 답장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나였다.

메시지를 보내고 몇 날 며칠을 그녀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게 끝내 메시지 답장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페이스북 친구목록에서도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도 서운했지만, 친구 언팔까지 하다니 정말 서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첼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나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하니 그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 이상 레이철 찾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레이첼 찾기를 그만둔 후, 어느덧 16년이란 세월이 더 흘렀다.

그녀도 이제는 40대 후반의 중년의 여성이 되었을 것이고 사진 속 아이는 커서 고등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살면서 때론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것도 현명한 삶의 방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그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바랄 뿐이다.


오늘은 왠지 에어로스미스의 Crazy를 듣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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