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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연 Oct 17. 2024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서태지의 은퇴 소식을 군에 들었다. 정말 뜬끔없는 소식이었다. 그때 그의 열렬한 팬으로서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에 슬펐했던 기억이 있다.


2년 후, 서태지는 은퇴를 번복하고 앨범을 발표했다. 두 편의 애니메이션과 한 편의 과거 영상을 편집해 총세곡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그게 그 음반활동의 전부였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또한 예상치 못한 그의 행보였다.


2년 후, 새 천년 9월에 여섯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은퇴 후 4년 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는 드디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중들은 그가 돌아왔다는 것에는 열광했지만, 그의 새로운 음악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록마니아 들이나 들을 법한 강렬한 하드록 계열의 밴드음악이었다.

서태지는 이 앨범으로 대중을 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예상대로 대다수 팬이었던 대중들은 우수수 떨어져 나갔고, 그때 소수의 코어팬층이 형성되었다.


이런 행보는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행보였다.




 몇 달 전 인천에서 손님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향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 친구는 직원들한테 정말 좋은 사장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안 줘도 되는 보너스를 주었고, 안 줘도 되는 선물을 주었으며, 안 줘도 되는 휴가를 주었다. 자기는 최대한 직원들의 편의를 봐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곧, 그들이 요청하지도 않은 급여를 인상해 줄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 정도로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왜 그렇게 직원들를 챙겨주냐며 물었다.


"내가 잘 챙겨주고 베풀면 직원들이 내가 베푼 만큼 일을 열심히 잘해주지 않겠냐. 그리고 어른으로서 직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무슨 가르침? 그리고 네가 뭔데 애들한테 가르칠라고 그래. 친구야. 그런 거나 배울 한가한 친구들이면 니네 집에서 알바를 하겠냐? 그냥 돈 벌려고 온 것뿐이야."

"아니야. 내가 배려하고 잘해주면 뭔가 좀 느끼고 배우지 않겠냐?"

"너도 참 오지랖이다. 그런 거 바라지도 말고, 너무 잘해주지도 마. 나중에 걔들한테 서운하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말고. 보상을 받을 거라는 착각은 버려. 회사 다녀본 놈이 왜 그래. 걔들도 같은 마음이야. 네가 잘해주고 많이 주면 걔들은 땡큐지. 그게 다야. 수 틀리면 지금이라도 관 둘 수 있는 알바라고. 정식직원도 아니고 뭘 그렇게 많은 걸 바라냐?"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내 말 새겨 들어.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 너한테 소중한 사람한테나 잘해. 쓸데없는 오지랖 피지 말고."


그 친구는 8년 차 자영업자로서 여러 명의 알바를 채용한 경험이 많아 사람을 쓰는 데까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남에게 너무 오지랖을 피우는 것 같아 '내 사람이 아니라면' 적당히 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몇 달 후 그 친구와 전화통화에서 그 알바들이 얼마 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싫은 소리 했더니 나갔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일을 그만둔 알바들에 대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라는 말을 시작해서 서운하다느니, 이러쿵저러쿵 보나 마나 뻔한 원망을 늘어놓았다.

원망을 늘어놓은 친구에게 나 역시 보나 마나 한 쓴소리를 다시 한번 해주었다.


그 친구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게 분명했다. 분명 친구는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답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남에게만 너~~~ 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 나머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다. 특히 바로 옆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그 피해자에게속이 터질 일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나 역시 한때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산적이 있다. 책을 읽겠다며 백수를 자처했던 때에 벌이도 없는 주제에 좋은사람이 되고싶어서 꼴에 베풂을 시전 한답시고 기부단체에 정기기부를 했다. 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좋은사람이고 싶어서 싫은 소리못하고 언제가 보상이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논리에 빠져 손해가 있을지라도 감내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베풀고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정말 근거 없는 아름다운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때문일런지도 모른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근거 없는 무논리에 벗어나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 친구처럼 남이 원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고 싶어서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베풂을 준 사람으로부터 그에 합당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를 원망하고 그의 험담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분명 베풂에는 베풀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상받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에 베푸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바라고 베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분명 그 뒤에 원망과 뒷담화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있었던 일화다.

당시 업무보고를 하려고 상무실에 들어가려는데 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입사한 영업사원이 나보다 한 발 앞서 상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나는 얼른 서류를 들고 상무실에 들어갔다. 상무님이 내 업무보고를 다 받고는 좀 전에 여기서 나갔던 직원이 사직서를 냈다며, 그 사직서에 크게 동요하지 않은 듯 말했다. 나는 넌지시 그의 사직이유를 물었고, 상무님은 다음과 같은 답을 했다.

"원래 영업직 특성상 이직이 잦아요. 저 친구 6개월도 길게 다닌 거예요."

상무님은 답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붙잡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지만, 상무님은 사직을 바로 수락을 했다고 했다.

상무님은 고용자 입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떠나보내는 것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퇴사자가 생기면 대체자를 바로 충원하면 될 일이었고, 그러니 굳이 퇴사를 하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려 회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직원은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업무적으로만 직원을 대했기 때문에 사직서에도 크게 동요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말한 서태지는 그덕분에 현재 대중가수에서 한참 벗어난 가수가 되었다. 그리고 대중에게 핫하지도 않은 가수가 되었다.

만약 서태지가 대중의 입맛에 맞는 대중가요를 꾸준히 발표했다면 현재에도 인기 있는 대중가수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고 대중가수답게 대중 입맛에 맞는 대중가요를 많이 발표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이 떠나는 것이 겁이 나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발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때 잘 나갔던 그저 그런 대중가수로 잊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서태지가 비록 대중에게 많이 멀어졌지만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가수가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히트곡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을 지지해 주는 팬들을 위해 꾸준한 자신만의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태지는 과감한 선택으로 많은 대중을 잃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든 지지해주는 소중한 팬을 얻다.


이처럼 세상에는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게 소중한 사람한테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좋은 선택이 될것이다.

혹시 내가 누구한테나 잘해주는 '좋은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사는 건 아닌지 한번쯤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하지 않을까?

과거 서태지가 대중을 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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