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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동기들

반전 에피소드

by 빛나다온

​11월의 문턱 넘어 단풍빛이 짙어질수록 지인들의 결혼 소식이 꼬리를 문다. 그러고 보니 나의 결혼기념일도 11월이다.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2000년대 태국방콕으로 떠났던 신혼여행의 한 에피소드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태국 공항.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가이드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와 결혼기념일이 같은 커플이 무려 네 쌍, 총 다섯 쌍의 신혼부부가 한자리에 모였던 거다.

​10명의 신혼부부가 4박 6일(?) 동안 같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일정을 소화했다. 어색함도 잠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점점 친해졌다. 신혼여행 동기가 생긴다는 건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셋째 날 밤 다섯 커플은 한 숙소에 모여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나이도 모두 비슷한 20대) 모두들 좋은 분들 같아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남편은 선한 인상에 키가 크고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다. 그 모습이 좋아 결혼을 결심한 것도 있다. 살아보니 재미는 없어도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결혼은 참 잘했다"며 나 스스로를 칭찬하곤 한다. (나 스스로 가스라이팅 중 ㅎ)

​그 5쌍의 커플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성분이 있었다. 남자답고 리더십이 있어 보이고 누구에게나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어딜 가나 튀어 보이는 강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인상이 강해 보이는 분이 자신의 직업을 맞춰보는 게임을 제안했다. 20대의 철없던 우리는 그의 외모와 분위기를 상상하며 답을 내놓았다.

강해 보이는 그분 직업에 대한 예측 답변은?
군인
헬스트레이너
​술집 사장님
​운동선수나 감독
​체육 선생님 등등...

​다음 타자는 제 남편, 선한 인상과 단정한 이미지를 보고 동기들이 제시한 직업들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 선생님
​꽃집 사장님
은행원
​착실한 공무원
​옷가게 사장님 등등...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리더십 넘치던 강한 인상의 그분은 꽃집 사장님, 반대로 선한 이미지의 나의 남편의 직업은 술집 사장님이었으니...(지금은 술집 안 함 ㅎ)

잠시 숙소 안은 폭소로 뒤덮였다.
"두 분 직업이 바뀐 거 아니에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우리 모두가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강한 인상이어도 꽃을 팔 때는 세상 다정하시다는 그분, 술을 팔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 선한 얼굴로 손님을 맞던 내 남편, 그 반전의 밤은 작은 교훈으로 남았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건 얼마나 섣부른 일인지, 진짜 매력은 어떤 일을 하든 성실하고 선하게 해내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그 신혼여행 동기들과는 연락처를 교환하며 매년 만나자 약속했지만 세월이 흘러 연락이 끊겼다.
인연의 소중함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올 때면 낯선 태국에서 함께 웃던 신혼여행 동기들과 그날의 반전 게임이 떠오른다. 그때의 웃음이 지금의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이 우리 결혼의 꽃이 되었다.

아! 옛날이여~~ 그리운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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