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을 따라가면

바깥놀이의 기쁨이 시작되다.

by 빛나다온

늦은 오후 돌봄 교실, 하루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은 시간, 교실엔 여섯 명의 아이들만이 남아 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생기 있다.


창밖을 보니 햇살이 부드럽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깥놀이, 오늘은 잠깐이라도 운동장에 나가볼까 싶다. 교실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가끔은 흙을 밟고, 바람을 느끼며 노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얘들아, 날씨도 좋은데 운동장에 나가볼까?


네에에~~

앗싸!

신난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외친다. 화장실을 갔다 오게 한 후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 마실 물도 챙겼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살랑살랑 야외 놀이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오후였다. 운동장에 나가자 아이들은 미끄럼틀과 시소를 타고, 철봉에도 매달리며 구름처럼 흩어져 뛰어다녔다.

정글짐 위에서 손을 흔들며 날 부르던 아이의 얼굴은 작은 해처럼 반짝였다.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해

내 입에서는 자동처럼 항상 튀어나오는 말이다.

나는 조금 떨어진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한시도 눈을 뗄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흘러가는구나' 하는 안도감에 숨을 내쉰다.
15분쯤 지났을까 1학년 두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내게 달려왔다.
선생님! 이따가 선이 보이면 선 따라서 오세요.
우리가 부르면 꼭 와야 해요!
무슨 비밀이라도 꾸민 듯 두 아이의 표정이 심오하다.

그래, 그럼 선생님은 여기에서 기다리면 되지?

네에

부르면 와야 해요. 먼저 오면 안 돼요.~~

그래 알았어


두 아이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선을 그으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시소 위에서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잠시 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외친다. 그 밝은 목소리에 나도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 이제 다 됐어요!
이쪽으로 와보세요!
거기선 보이죠? 그 선 따라오면 돼요!~~

나는 아이들이 그려놓은 선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중간엔 작은 모래동산도 보이고, 그 위엔 어린 식물 하나가 꽂혀 있었다.

이건 뭐야? ㅎㅎ

풀을 뽑아서 심은듯했다.

선생님 식물 좋아하잖아요. 그래서요...


선은 계속 이어졌다. 선을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중간중간 장애물도 있었다. 아이들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모래 위에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하트와 꽃그림도 있고 여자 얼굴도 보였다.


선은 계속 있었고 마지만엔 아이들의 손글씨가 보였다.

'선생님 사랑해요. 잘하겠습니다.'


그 순간, 숨이 멎는듯한 감동에 휩싸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반짝이는 모래 위 해맑게 웃으며 바라보는 두 아이의 눈빛.


"이거, 둘이 쓴 거야?"

"네! 우리 둘이 만들었어요!"

"어머나 세상에나 선생님 너무 기분 좋은 걸 고마워 얘들아!"

"얼굴은 선생님이에요!"

나랑 닮은 거 같진 않지만 인정해 줘야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아이의 깜찍한 발상이 너무 귀여웠다. 놀아도 부족할 시간에 이건걸 생각하고 힘들게 선도 긋고 쓰고 했을걸 생각하니 뭉클하기도 했다. 나는 두 아이들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시소를 타고 놀던 아이들도 이 모습을 보곤 우르르 달려와 함께 둘러섰다. 아이들의 눈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모래 위, 사랑이 쓰인 그 자리.

이 감정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고마워를 몇 번이고 해 줬다. 그리고 속으로 속삭였다. "아휴, 이쁜 내 새끼들.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럽니."

세상에 그렇게 예쁜 고백이 또 있을까. 꽃다발보다 예뻤고, 어떤 표현보다 진심으로 다가왔다.


모래 위에 그려진 아이들의 마음은 말보다 먼저 다가온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모래 위에 쓰였지만 내 마음에는 선명히 새겨진 날이었다.



#돌봄 교실

#놀이터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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