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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OO진

오해

by 빛나다온

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분이 계셨다. 키도 크시고 단아했으며, 말수는 적어 조용했다. 일적으로 필요한 말만 나누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얼마 후 학교 안에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 학교에 미스코리아 ○○진이 근무한다더라."

(서울 진, 대전 진, 대구 진, 경북 진, 강원 진, 제주 진, 경남 진, 부산 진...)
서로가 귀 기울이며 웅성거렸고, 나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그분의 단정한 모습은 누구라도 고개 끄덕일 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이 물으셨다.
“선생님이 그 소문의 주인공이신가요?”
난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저요? 저 아닌데요. 교장선생님!”
부장 선생님도 덧붙이셨다.
“아닌가요? 우리는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묘한 감정으로 두근거렸다.

그날 진짜 주인공은 개인 사정으로 회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덕분에 짧은 착각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니요’라고 말했지만, 그 오해는 기분 좋은 추억을 남겼다. 아마도 내가 그때 일명 미스코리아 헤어스타일(사자머리)을 하고 있어서 그런 오해를 받은 것 같다.


그 오해 덕분에 한동안은 기분이 좋긴 했었다. 그해 여름 남편이 가입되어 있는 ㅇㅇㅇ클럽에서 부부동반으로 대만에 있는 회원들과 크루즈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행사 준비물로 드레스를 준비해야 했다. 드레스 대여점에서 사모님들과 드레스를 입어보며 오해받은 기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드레스 때문에 미스코리아가 된듯했다.


나중에 당사자에게 알게 된 사실은 그 선생님은 실제로 본선 무대까지 올랐다고 했다. 본선에 진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셨지만, 갑자기 사회자가 질문을 바꿔서 제대로 답을 못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회자가 좋아했던 가수였는데 그날 사회를 맡은 후 싫어졌다고 한다.) 결국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셨지만 그해 겨울 결혼을 하시면서 결혼식장에서 뵈었을 때 그 눈부심은 여전했다.

그때의 오해 덕분에 젊은 날 나는 잠시 미소 지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었다. 세월이 야속하지만 오늘보다 더 젊은 날은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감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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