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노릇은 내려놓을 수 없지
우리 딸은 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어떤 병인 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 처음 아프기 시작했을 땐 어려서 엄마가 병원에 가서 할머니랑 있어야 하는구나 이 정도만 알았는데 조금 크고 나서는 어디가 아파서 병원을 자주가냐고 묻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엄마허리 아픈 거 알지? 그거 때문에 병원 가는 거야 하면서 허리핑계를 댔다. 아무래도 암이라는 병이주는 막연한 공포가 있으니 그냥 허리가 좀 아픈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다리 꼬고 앉고 잘못된 자세로 생활해서 허리가 나간 엄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딸은 엄마 다리 꼬면 안 돼 그래서 엄마 허리 나갔잖아 하면서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다 밀었을 때 밖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꼭 비니를 쓰고 있었고 나갈 때는 딸이 보지 못하게 가발을 썼었다. 그러다 머리가 점점 길어서 가발을 벗게 됐을 무렵에는 머리를 잘못 잘라서 너무 짧고 이상하게 된 엄마로 변신했다. 그때 우리 딸은 엄마가 머리를 너무 많이 잘랐다면서 다시는 이렇게 자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그리고 가끔 주말에 병원을 가야 할 때는 아이도 데려갔는데 그때는 병원 안 가게에서 머리띠도 사고 빵집에서 좋아하는 디저트도 먹으면서 즐거운 기억을 남겨줬다. 그 덕에 병원 간다고 하면 자기도 가고 싶다며 병원 가는 걸 무섭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5살 무렵부터 아프기 시작했지만 밥도 늘 손수 해서 먹였고 항암으로 고생하면서도 영어숙제 봐주고 수학공부 시키고 한글도 가르쳤으며 자전거도 내가 데리고 나가서 직접 가르쳤다. 늘 같이 산책하고 주말이면 나들이 다니고 가끔 여행도 하면서 엄마노릇만은 절대 구멍을 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아픈 것 때문에 아이의 어린 시절 한 부분이 어둡지 않았으면 하고 아이를 대하는 것도 아프기 전과 똑같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딸이 엄마가 병원 가서 할머니집에서 잤을 때 엄마 보고 싶어서 우리 집방향을 보면서 눈물이 났는데 할머니가 섭섭해하실까 봐 몰래 울었다고 할머니한테는 비밀이라며 얘기하는데 마음이 찡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아이도 견뎌야 할 자기 몫이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 수도 있었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할머니까지 생각했다는 게 참 우리 딸이 마음이 따뜻하구나 했다.
어느 날은 허리가 아플 땐 어느 병원을 가냐고 해서 정형외과에 간다고 하니 자기는 커서 정형외과 의사가 돼서 엄마허리 아픈 거 다 치료해 주겠다고 하는데 티를 안 낸다고 애썼는데도 엄마가 아픈 게 너의 걱정으로 자리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안쓰러웠다.
그래도 요즘에는 병원 가는 횟수도 많이 줄었고 컨디션도 좋아서 아픈 사람인 티가 전혀 안 난다. 딸에게 네가 조금 더 크면 엄마가 다 나아서 병원에 안 갈 거라고 하니 얼른 자기가 크고 싶다고 하던 우리 딸.
이렇게 지금처럼 건강하게 쭉 지내서 언젠가 엄마가 병원을 다녔었다는 사실까지 우리 딸의 기억에서 다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밝고 씩씩해야겠지. 꼭 그렇게 되도록 엄마노릇을 야무지고 단단하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