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아라풀 Feb 28. 2016

지리산을 바라보다

광양 백운산에서

어둠이 더해가던 한밤 친구가 말했다.

'너, 지금 발광하는 거라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별다른 준비도 없이 무작정 가방을 꾸렸으니...

겨울산의 위험을 모르는 것도 아니거늘 어쩐지 저 산은 늘 나를 보호해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착각이 주저함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광양행 버스를 올랐다.

지도를 쳐다보며 오늘은 저 산이라고 눈을 맞추곤 출발한다. 그 뿐이다. 그저 홀로 걷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떠나다 보니 그러기엔 또 부지런하지도 못해서 종종 끼니를 거르며 걸으니 그 꼴이 좀 우습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온전히 산에 미친 것은 아닌데 이렇게 먼 길을 걷자고 새벽같이 제 곁으로 찾아오는 내 모습이 친구는 짠했나 보다.

'발광'이라는 그런 극적인 표현이라니...

그때는 그저 씨익 웃고 말았는데 그 날은 확실히 좀 미친 짓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광양터미널에서 내려 논실행 버스에 올랐다.

오후 한 시가 되어서야 시작된 산행은 청명한 하늘 탓인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조바심이 들지 않았다. 간밤 내렸다던 눈이 살짝 응달에만 흔적을 남겼을 뿐 기대했던 올 겨울 눈꽃은 나를 제대로 비켜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홀로 걷는 것에 만족하며 표지판을 따라 들머리를 잡았다. 멋대로 걷다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니 등산로가 아닌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걷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길을 놓쳤다.

내가 걸어 개척하면 그곳이 곧 길이겠으나 그러기에 나의 발걸음은 낯선 산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기엔 터무니없음을 알기에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왔다.

'어째 시작이 왜 이러지.'

평소와 다른 헤맴에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은 또 어떤 곳일지...

오늘은 몇 명의 산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온갖 잡다한 생각이 스치자 뒤죽박죽 저장해두는 내 머리가 온전하기는 어렵겠구나 싶어 졌다.

산을 오르며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알면서 자꾸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온전히 정리하기가 어렵다.

지나온 길들은 당연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쓰윽 스쳐보낼 뿐이다.

어쩌다 눈길이 가는 풍경을 만나면 그제야 생각을 내려놓고 바라보게 된다.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틈을 내어주는 것이다.

마음을 건네는 시간의 곁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것을 놓치고 그저 눈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저 능선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다가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아따, 뭔 지리산 저렇게 잘 보인다냐. 처음이다. 처음."


'아, 저게. 저 황홀한 능선이 지리산이었구나.'

난 대체 뭐하느라 그런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걷기만 했을까?

나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걷기에만 몰입한 건 아닐까? 그러는 사이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한 채 스쳐 보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백운산에 앉아 저 먼 지리산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일상에 급급해 탈출하듯 산을 허겁지겁 오르고

다시 뒤죽박죽을 반복하며 지내는 시간들이,

스치는 풍경밖에 되지 못하는 날들이 거듭될 때

지난날 멀리서 바라본 지리산의 모습을 떠올려 봐야겠다.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말아야겠다.


들머리에서 길을 잃더니 결국 하산 후에 버스를 눈 앞에서 놓치고야 말았다.

멍하니 있으니 어르신 한 분이 막차가 두어 시간 후에나 있을 거라며 나가는 차가 있으면 뭐든 잡아타고 나가는 게 좋단다. 외져서 있을 곳도 없다며 곧 어두워진다며...

'아, 깨달음이고 뭐고 일단 사는 거구나!'

갑자기 휙 정신이 든다.

무작정 히치하이킹을 했다.

머뭇거리며 멈춰 선 차에는 무려 남자가 세 분이나 타고 있었다.

'아뿔싸.'

난 무사히 터미널까지 와서 친구에게 발광이라는 잔소리를 들었으니...


이런 것도 발광의 일종이라면 뭐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홀로인 나를 차를 태워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보낸다.


살수록 묘한 것이 삶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