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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 Feb 28. 2016

ZOOTOPIA

#8. 유토피아

유토피아                          

현실적으로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  

원래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데, 동시에 이 말은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 서유럽 사상에서 유토피아의 역사는 보통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이상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정확히는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1516)를 시초로 하여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1623),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1627) 등 근세 초기, 즉 16∼17세기에 유토피아 사상이 연이어 출현한 시기를 그 탄생의 시점(時點)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하 중략)
[네이버 지식백과] 유토피아 [utopia] (두산백과)


지난 토요일 소문으로 무성하던 애니메이션 주토피아(zootopia)를 보고 왔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본다고 하여 영화관에서 본 두 번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나서야 어른들이 많이 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이 재미로 볼 수는 있지만 재미있다고 느끼기엔 내용이 어려웠다. 어른들이 많이 보는 이유는 재미도 있지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주토피아 곧 유토피아를 뜻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어느 나라던 약육강식은  존재한다. 그런데 주토피아 이곳에선 맹수도 초식동물도 모두 한 곳에서 모여사는 꿈의 도시. 여러 기후를 한 도시에 모아 둔 곳. 모든 동물들이 이 곳 주토피아로 가서 살길 희망하고 꿈꾼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어른들에게 아니 이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들 대사들이 많았기에 웃으면서도  편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로 주인공 주디 홉스가 꿈꾸는 미래를 모두가 비웃고 말린다.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안정적인 것을 택하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주디 홉스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끝까지  좇아간다. 물론 처음에는 시련과 고난들이 몰려왔지만 자신만이 가진 열정과 노력과 함께 자신이 가진 장점을 가지고 모든 것을 넘어서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꿈을 쟁취한다. 남이 봤을 때 택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일이어도 결국은 자신의 열정, 노력, 그리고 장점으로 모든 불리한 것들을  뛰어넘은 것이다. 나는 이런 주인공이 다시 한번 부러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만류를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도 한데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꿈을 향해 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나서도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였다. 그 꿈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상사가 주인공을 다른 임무로 빼버렸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임무도 상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해내겠다는 의지로 꿋꿋이 해나갔고 결국은 실종된 동물을 찾는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지원하나 못 받는 최악의 상황. 그래도 주인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그 임무를 해내고 만다. 어느 누구도 개인이 가진 꿈에 대해 비웃을 권리는 없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두 번째 서로 다른 종이 친구가 된다. 토끼와 여우. 둘은 현실에서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현실에서 토끼는 여우의 먹잇감일 뿐인 존재이다. 이 영화에서도 절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던 첫 만남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친한 친구가 된다. 또한 가수 가젤과 호랑이 백댄서와 같이 다른 종들이 모여 평화유지 운동(?)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동물 세계가 아닌 인간 세계에서는 인종차별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피부가 검다, 희다, 누렇다 등 겉의 생김새로 인해 생기는 차별 이런 차별은 인간 세계에서는 더욱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는다. 왜 단지 이런 생김새로 인해 서로를 차별하고  차별당해야 하는 것일까?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나 지구 반대 편에서 컴퓨터를 하며 놀고 있을 누군가나 어차피 같은 지구 안에 살고 있고 똑같이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선입견, 편견 이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세 번째 선입견/ 편견. 토끼는 겁이 많다. 여우는 교활하고 비겁하다. 맹수들은 난폭하다. 초식 동물들은 연약하며 난폭해지지 않는다. 보스는  힘세고 덩치 크고 인상이 험악한 놈일 것이다.  이런저런 선입견/ 편견들이 어느 나라이던 존재한다. 그것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도 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자라면 결국은 선입견/편견들이 생기고 만다. 이런 선입견/편견들이 깨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깨버리는  수밖에 없다. 주인공 또한  그것을 직접 몸으로 또 서로 교감을 하면서 그런 선입견/편견들을 깨버렸다. 물론 실수를 한 이후에 깨닫기는 했지만 그것 또한 선입견/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 같은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깰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미 깊이 박혀버린 선입견/편견을 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번 우리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요소가  여기저기 존재한다. 어떤 편견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찾으며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이다. 


네 번째 강한 놈이건 약한 놈이건 권력을 잡으면 다 똑같다. 어떤 사람이건 권력 맛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결국은 예전의 초심은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누가 순하고 약하기 때문에 악한 마음을 못 먹는다고 할 수 있는가. 권력을 쥐게 되면 자신이 예전에 당했던 일이 생각나  복수하고 싶어 지기 마련이고 문제가 터지면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은폐하기 급급하다. 모든 국민들이 알아야 할 위급한 상황이어도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숨기기 급한 것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나 세월호 사건이나 모두 기관사/선장이 제일 먼저 도망쳐 나오고 승객들이 어마 무시하게 많이 죽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전철에서 권력은 기관사가 잡고 있고 배에서 권력은 선장이 쥐고 있다. 이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피해가 올지 모르기에 승객들은 그들의 규칙을 지키지만 규칙을 따른 결과가 대참사. 이런 것들을 봐서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책임감이 없는지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아도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안이 없는 이 세상이 참으로 씁쓸하다 


이 영화는 동물로 인간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틈틈이 보여주는 풍경들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있게  표현되기도 했다. 웅장하고 서로 다른 종들이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주토피아. 인간 세상에서는 유토피아라 불리는 곳. 이런 곳은 동물 세계에서도 인간 세계에서도 이상향일 뿐 존재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이 세계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선입견/편견도 깨질 수 있고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진화를 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지.

이 말은 앞으로 우리가 아무리 진화를 해도 인간이다. 한낱 자연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한데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공감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려 한다면 언젠간 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살포시 가져 본다. 

이 영화가 언제까지 극장에서 할지는 모르겠지만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직접 극장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상도 OST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 집에서 컴퓨터로 TV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틀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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