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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리치 Mar 18. 2024

(프롤로그) 나는 왜 매 순간 진심일까

사진에세이 연재를 시작하며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파타야, 태국(2017)

'여행'과 '사진', 그리고 '삶'에 매 순간 진심인 저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앞으로 연재할 사진에세이를 조금 더 진솔하고 담담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아 떨리는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작성해 봅니다.


제겐 남들만큼이나 또는 또래들보다는 우여곡절의 경험이 많았습니다. 10살 때부터 부모님 사정으로 이모댁에서 길러졌고, 20대 때 재회한 아버지는 간암 말기셨습니다. 그러나 30대의 중턱을 지나고 있는 현재에는 결국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어 있습니다. 저와 동생의 간병으로 혹은 하늘의 계시로 아버지는 이제 건강을 되찾으셨고, 30대가 된 저는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쉴 틈이 없는 10대, 20대를 소위 'K-장녀'로 지내면서 하루하루 살궁리를 하느라 늘 머리가 아팠지만, '행복한 일은 스스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내겐 행복한 일이 생기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스스로 즐거운 일을 만드려고 노력했습니다. '숨 쉴 구멍'이라고 해야 할까요? 10살 때까지 부모님한테서 사랑으로 키워지다가 갑자기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줄줄이 생기니, 어린 저는 항상 숨 쉴 구멍을 하나씩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모댁으로 옮겨지면서 전학을 가게 된 시골 작은 초등학교 분교에는 '컴퓨터실'이 활성화되었는데, 저는 전학 온 이듬해 4학년 때부터는 컴퓨터 수업을 들으면서 미친 듯이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도피처였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자격증을 명목으로 컴퓨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저에겐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지금 직장을 갖게 된 것도 바로 그 '컴퓨터' 덕분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온 '숨 쉴 구멍'들은 언제나 제 삶의 동력이 되었고, 그것들은 결국 제가 가진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니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서 후회가 없는 날들을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은 저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또 한 가지는 '사진'이었습니다. 하루가 100분이라고 하면 제가 K-장녀로서 소비해야 하는 시간은 70분, 제게 남는 시간은 30분이었습니다. 30분은 대부분 제 취미나 즐거운 일들로 채우려고 했고, 그 순간들은 너무 소중해서 평생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같이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에도 소형 콤팩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모든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만난 예쁜 꽃도, 하늘도, 햇살도, 그냥 그 순간 아름답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들은 다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러면 정말이지 제 시간이, 그리고 삶이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로 가득해져있는 것 같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진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은 없는 20살의 저는 제 방식으로 모든 소중한 순간들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20대 중반이 되어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는 K-장녀와 N년차 직장인을 병행했습니다. 아버지가 간 이식수술을 받을 때에도 저는 휴직계를 내지 않았고, 회사와 동료들에게 내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업무에 지장을 주기 싫었고, 집안일 때문에 회사일에 신경 못쓴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동료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월급 받는 만큼 일을 해야지.'

그런 바쁘고 복잡한 시간 속에서 지친 저의 영혼을 달래준 또 하나의 '숨 쉴 구멍'은 바로 '여행'이었습니다. 동기들은 취업하고 명품백 하나씩 갖는다는데, 저는 그럴 돈으로 비행기표를 여행 가기 6개월 전부터 끊어두며, 알뜰살뜰 그리고 틈틈이 10년간 21개국 56개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내고 목요일 밤에 비행기를 타고, 월요일 새벽에 도착해서 출근하는 일도 잦을 만큼 여행을 사랑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삶에 적응하다 보니, 지금 제 앞에 온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끝을 맺고 싶었고, 그 어떤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늘어놓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 순간 진심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매년 혼자 발행하는 저의 사진엽서들도 벌써 6번째 에디션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지내오던 저에게 얼마 전, 인생 제2막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삶(육아)‘이 시작되었고, 저의 감정, 감성,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앞으로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습니다. 매 순간을 치열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인생 제1막의 사진들과 이야기를 늦기 전에 담아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진심을 담는 작업은 아이를 키우는 이 소중한 휴직 기간 중의 또 하나의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사진과 매 순간 진심이었던 저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연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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